[매일신문] 최초 작성일 : 2013-04-03 12:11:00  |  수정일 : 2013-04-03 12:15:08.123 기사원문보기
[버스로 그리는 경북 스케치] <15>청송 송소고택에서 주왕산 대전사까지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에서 안동시 길안면을 거쳐 청송읍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숨 가쁜 환승이 시작됐다. 윤암리 입구에서 점곡면사무소로 간 뒤 길안면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탄다. 점곡에서 길안까지는 하루 4회 버스가 오간다. 오전 11시 점곡면사무소 앞에서 버스에 올랐다. 길안면 버스정류장까지 요금은 1천900원, 시간은 20분 정도 걸린다.


길안면에서 안동 28번 버스로 갈아타면 청송군 파천면 지경리까지 간다. 행선지가 '비석거리'인 버스를 타면 된다. 오후 1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달려 지경리에서 내린 뒤 다시 오후 1시 55분 청송읍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탄다.


버스 안에서 목격한 재미있는 풍경 하나. 지팡이를 짚은 꼬부랑 할머니가 버스에서 내리는 방법. 버스가 완전히 멈추고 하차문이 열리면 천천히 문 앞으로 다가선다. 문 밖으로 지팡이를 휙 집어던진다. 기둥을 잡고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린 뒤 함께 내린 사람들이 지팡이를 주워줄 때까지 기다린다.


◆청송 심씨의 본향, 덕천마을


지경리에서 10분 정도 달리면 송소고택으로 유명한 덕천마을이다. 버스에서 내려 작은 다리를 건너고 노거수가 줄지어 선 마을 안길로 100여m 들어가면 된다. 마을 앞을 흐르는 신흥천을 따라 걷는 길이 꽤 운치가 있다. 덕천마을은 고려가 망하자 은둔의 길로 들어선 악은 심원부의 후손들이 600여 년간 뿌리내린 청송 심씨의 본향이다.


그중에서도 송소고택(중요민속자료 제250호)은 가장 너른 터에 자리 잡았다. 청송 호박골 심부잣집으로 불렸던 이 집은 조선 영조 때인 1880년 송소 심호택이 지었다. 집 전체가 'ㅁ'자 형태로 전형적인 조선 후기 한옥구조다. 남자들이 머무는 사랑채에서 여자들이 드나드는 안채를 볼 수 없도록 바깥마당에 헛담을 쌓았다. 반면 안채에서는 사랑채에 누가 오가는지 볼 수 있도록 담에 사선 형태로 구멍을 냈다.


송소고택 바로 옆에 송정고택이 맞닿아 있고, 찰방공종택과 초전댁, 창실고택 등도 손쉽게 둘러볼 수 있다. 마을 바깥쪽에 있는 경의재와 요동제사, 학산정, 소류정 등을 둘러봐도 1시간이면 넉넉하다. 황토 포장길이 잘 닦여 있고 마을 한복판의 밭에는 통나무로 된 작은 원두막도 있다.


마을에는 심원부의 24세 주손인 심영섭(77) 할아버지와 종부인 조치연(75) 할머니가 산다. 스물셋에 시집왔다는 할머니는 결코 큰소리를 내는 법이 없었다. "종부가 되는 줄도 모르고 그저 시집을 오니 모든 게 조심스럽고 그랬죠." 평생 몸에 밴 습관일까. 조근조근한 말투에 대답은 느리다. "시어머니는 '니 하는 대로 해라, 나는 놀러간다' 그러셨어요. 잔소리도 전혀 없으셨고. 쌀도 한번 곳간에서 내주시더니 그다음부터는 마음대로 퍼서 밥을 하라고 하시고…." 요즘 말로 '쿨'한 시어머니였던 셈이다. 그렇다고 종부의 삶이 편했을 리 없다. 1년에 기제사만 16번. 명절 차례는 한 집에서 큰집과 작은집 제사를 나눠 지냈다. 첫닭 우는 오전 4시면 일어나 아궁이에 불을 때 시아버지의 식사를 차려 드리고 다시 쌀을 안쳐 식구들 먹을 밥을 했다. 새참 때는 감자를 삶아서 밭에 가고, 베를 짜고 방아를 찧고 옷을 짓고, 밤에는 호롱불빛에 구멍 난 양말을 기웠다. 10년에 걸친 노력 끝에 시조인 심원부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경의재를 지었을 때는 평생을 두고 기뻤던 날이다. "요즘이야 대구에 사는 아들이 손주들하고 올 때가 가장 즐겁죠. 그래도 몸이 건강했던 예전이 좋았던 듯싶어요."


◆기암절벽 어우러진 절골계곡


부동면 신점리 '법수마을' 청송백자전수장에 들렀다가 주왕산 절골계곡을 둘러보기로 했다. 신점리로 가는 버스는 하루 두 번밖에 없다. 오전 8시 30분 청송버스터미널에서 신점`이전행 버스를 탔다. 30분 정도 달려 법수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이곳에서 2㎞가량을 걸어가야 한다. 30분간 걸어 도착했는데, 인기척이 없다. 춘천 남이섬에서 열리는 전시회 일정 때문에 모두 자리를 비웠던 것. 허탈한 마음을 애써 달래며 되돌아 나와 부동면사무소까지 3.8㎞를 그냥 걸었다.


김치찌개로 브런치(?)를 해결하고 절골계곡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적한 도로 옆으로 사과밭이 지천이다. 봄이면 새하얀 사과꽃이 팝콘처럼 피어날 터다. 절골삼거리를 지나 10분 정도 더 걸으면 절골탐방지원센터다. 절골계곡은 계곡 안에 절이 있어 붙은 이름이지만 지금은 지명만 남았다.


탐방안내소를 지나자마자 병풍처럼 들어선 기암절벽이 눈 안에 들어온다. 깎아지른 절벽의 품 안에서 흘러나온 계곡물이 바위를 휘감고 돌아간다. 절벽 아래로 이어진 데크를 따라 돌면 굽이굽이 보이는 새로운 절경에 탄성이 절로 난다. 탐방안내소에서 1㎞ 구간이 절골계곡의 비경이 가장 아름답게 펼쳐지는 구간이다.


나무데크를 지나면 본격적인 계곡 트레킹 구간이다. 제법 넓고 깊어진 계곡의 물길을 따라 걷는다. 인위적인 사람의 손길은 찾아볼 수 없다. 아슬아슬한 바위를 징검다리 삼고, 절벽을 손으로 잡아 건너는 계곡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틀 전 내린 비로 계곡물은 꽤 불어 있었다. 건널 엄두가 안 나는 물길이 자꾸 발목을 잡았다. 통나무를 걸쳐놓고 물을 건너다 한쪽 발이 푹 빠지기도 했다. 둔한 몸뚱이와 씨름하며 걷기를 1시간. 얕지만 너른 물줄기에 가로막혔다. 개천 건너 숲길이 이어진다.


트레킹을 중단하고 되돌아가기로 했다. 한번 건너온 덕분인지 돌아가는 길은 꽤 속도가 난다. 탐방안내소를 나오는데 주왕산국립공원사무소 직원이 가로막았다. 4월 30일까지 산불 위험으로 출입이 통제된다는 안내판을 무심코 지나쳤던 것이다.


◆주왕산과 사슴 할아버지


부동면사무소로 돌아오니 낮 12시 45분이다. 이곳에서 청송읍이나 진보면으로 바로 가려면 오후 2시 45분까지 기다려야 했다. 차라리 가까운 주왕산 입구로 간 뒤 청송읍으로 가는 게 낫다. 오후 1시 10분 '주왕산-이전' 버스를 타고 주왕산 입구 도착, 잠시 대전사를 둘러보기로 했다. 보물인 보광전 뒤로 우뚝 솟은 주왕산의 기암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범상치않은 외모의 할아버지에게 눈길이 쏠렸다. 길게 자란 흰 수염과 하얀색 경차. 붉은 '산불감시' 깃발이 묘하게 어울린다. '사슴 할아버지' 권영도(78) 씨다. '사슴 할아버지'는 산을 사슴처럼 잘 타고 항상 산에 있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배우 강신성일 씨의 어머니인 시인 김연주 씨가 붙여줬다고 했다. 그는 산 밑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사진을 찍고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도자기 실력도 수준급이어서 여주와 경주 등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사슴 할아버지의 고향은 의성이다. 고향 세무서에서 일하다가 부산으로 갔다. 1960년대 후반 신진 코로나 택시를 시작했다. 당시 코로나 택시 한 대가 105만원 할 때였다. 하지만 부품은 값이 너무 비쌌고, 기대만큼 손님도 없었다. "아내와 사별하고 택시로 빚을 졌어요, 그래서 중이나 되겠다고 대전사로 들어왔죠." 그의 나이 45세 때였다. "고교생 시절에 아랫집에 살던 군용차량 운전사 아저씨와 함께 주왕산에 놀러왔는데 정말 좋더라고. 그 기억이 오랫동안 남아서 주왕산으로 왔어요."


행자승으로 허드렛일을 하면서 수행을 했지만 중이 되진 못했다. 하산한 그는 주왕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주왕산의 기암에 로프를 치고 암벽 등반도 배웠다. 그렇게 산에서 10년을 살았다. "주왕산 자락은 손바닥 보듯 훤해요. 몇 시에 올라갔다는 말만 들어도 어디쯤 있는지 알 정도니까." 안내자로 남은 그는 동료들과 함께 구조대를 꾸려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겨울철이면 매일 8시간씩 산불감시원으로 일한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빠짐없이 나온다. 다른 계절에는 아들이 운영하는 펜션 일을 돕거나 대전사 입구에 있는 슈퍼마켓을 운영한다. 슈퍼마켓에는 직접 인두로 그린 그림과 서예 작품, 공예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도 한다.


"산에 사는 걸 후회한 적은 없어요.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아요. 산에 오르기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데려가서 정상에 올라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참 좋지요." 그는 "요즘 사람들은 산에 와서도 시간에 쫓긴다"고 했다. "산의 내력에 대해 설명해줘도 안 들어요. 그저 바쁘게 올랐다가 가버려요. 그런 모습을 보면 안타깝죠."


글`사진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매일영상뉴스]
ⓒ 매일신문 & www.imaeil.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loading...
사회일반 기사 목록위로

인기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