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최초 작성일 : 2009-05-25 11:54:23  |  수정일 : 2009-05-25 11:54:23.310 기사원문보기
"삶과 죽음이 다른 것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부쳐-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도둑이 몽둥이를 들고 주인을 때린다는 고사성어가 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자결로 종결된 노무현 죽이기 수사는 적반하장의 전형이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대통령기록물 유출 시비 이후, 도둑들의 근 1년여에 걸친 집요하고 야비한 몽둥이찜질에 결국 주인이, 시대의 양심이, 차가운 이성이 자결로 항거했다. 한국 역사상 가장 깨끗한 전직 대통령이 가장 지저분한 대통령, 검찰, 언론의 합동 몽둥이찜질에 맞아 죽었다.


고문치사 사건이다.

사실 그 동안 정몽헌 현대아산회장, 남상국 대우건설사장 등 비리 혐의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유명 인사의 자살은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노무현 전대통령의 자살은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노무현 전대통령은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질 일은 있었지만, 법적 책임을 질 일은 없었다. 포괄적 뇌물죄 구성의 핵심 요건이 되는 ‘500만 달러’ ’100만 달러’ ‘40만 달러’ 수수를 인지한 증거도 정황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노무현의 인생 역정과 성품상 그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노무현은 그에 대해 해명 하였다.

검찰은 이를 뒤집는 증거를 찾으려고 정말 샅샅이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과 언론은 노무현의 해명을 구둣발로 짓이겼다. 무죄추정의 원칙? 피의사실 공표금지의 원칙? 전직 국가원수에 대한 예우? 국가의 품격? 그런 것은 검찰과 독과점 언론의 사전에는 없었다. 그들은 노무현을 거짓말이나 일삼는 시정잡배로 낙인을 찍기 위해 검찰은 언론에 실시간 중계방송 하듯 피의사실을 흘리고, 언론은 이것을 재료로 아예 소설을 쓰곤 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깨끗한 대통령을 위선자, 거짓말쟁이, 마누라와 애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비열한 인간처럼 비치게 하였다. 사실 노무현 수사의 의도와 본질은 실체적 진실 규명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었다. 4월 30일 소환조사 후, 곧바로 결정한다던 기소 여부를 3주가 지나도록 결정하지 않고, ‘40만 달러’ 추가 수수라는 새로운(?) 피의사실을 공표하여, 증거나 기소 여부와 상관없이 인간 말종으로 낙인을 찍는 작업을 지속하려 했다.

검찰이라는 사냥개와 독과점 언론이라는 하이에나들은 몇 달간 지속되는 노무현 가족, 지인들에 대한 고문으로 인해 망가지고 피폐해져 가는 노무현의 몰골을, 사냥꾼의 심정으로 즐겼음이 분명하다. 그 쾌감을 연장해 보려고 (4월에는 더 이상 소환 계획이 없다던) 권여사를 5월 중에 재소환 한다고 천명하였다. 대통령과 가까운 수많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소환하고, 뒷조사하고, 기소 여부도, 시기도 결정하지 않고 피의사실을 하나 둘씩 내놓은 것은 명백한 고문 기법이다.

고문을 당장이라도 끝낼 것처럼 하다가 갑자기 무기한 연장하면 당하는 사람이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 법이니까. 그런 점에서 이 고문 기술자들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이근안과 함께 기억해야 한다. 이들은 단순한 고문 집행자인 이근안 보다도 훨씬 준엄하게 법적, 도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들은 기획. 연출자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잊으면 고문치사 사건은 반복된다. 단적으로 수십 년 전 고문치사 사건과 이번 사건의 가해자 중에서 동일한 존재가 있다. 검찰과 독과점 언론이 그들이다. 이들은 법원, 경찰, 안기부, 보안사 등과 달리 단 한 번도 자신의 과거사를 반성해 보지 않은 집단이다. 고해성사를 하기에는 저지른 만행이 너무 크고 많기 때문일까?


노무현 자결 사건은 언뜻 보면 과거 폭압의 시대에 할복, 분신, 투신, 혀깨물기 등을 선택했던 志士의 자살 사건과 닮았다. 하지만 더 자세히 살펴보면 오히려 과거 음습한 공안 분실에서 피의자인 자신이 아니라, 처자식과 지인들을 잡아두고 고문하는 극악한 만행을 견디다 못한 민주 투사의 자결 저항과 닮았다. 과거 민주투사들은 중앙정보부/안기부/검찰이 강요하는 대로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거짓 진술 하거나, 동지를 팔아먹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자식들이 폐인이 될 정도로 심한 고문을 받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상황에 종종 처하곤 했다. 그 때 민주 투사는 목숨만큼 소중히 여기는 가족, 지인, 동지들을 구출하기 위해 고문의 주 대상이자 뭇 사람들의 고통의 근원인 자신의 생명을 없애버리는 시도를 하곤 했다.

노무현으로서는 자기 자신으로 인해, 온 가족, 지인, 측근, 후원자들이 고문을 당하고, 자신은 법정에서 진실 공방을 벌이면서 비루하게 사는 길을 택할 것인가?(독과점 언론은 진실을 곧이곧대로 밝혀주는 것이 아니라, 악랄하게 왜곡, 편파, 거짓 보도를 해 댈 테니......) 아니면 죽음으로서 결백을 밝히고, 동시에 이 야만적인 고문에 항거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목숨 걸고 추구하던 가치와 정신을 지킬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물론 위대한 영혼 노무현은 당당히 살신성인의 길을 택했다. 유서는 이렇게 씌여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고문하는 방식, 의도와 노무현의 고결한 성품으로 보면 올 것이 온 것이다. 아마도 노무현이 처한 상황을 복기해 보면, 가족과 이웃과 동지를 뜨겁게 사랑하고, 또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해 왔던 대부분의 열혈 지사들은 노무현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확신컨대 나도 노무현과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노무현 자결 사건은 쥐새끼, 사냥개, 하이에나의 합작에 의한 고문치사 사건이다.


노무현은 격이 다른 인간이었다.

쥐새끼, 사냥개, 하이에나 이 세 짐승들이 노린 것은 노무현의 육체적 생명이 아니었다.

정치적 생명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정신을 공유하거나 공감하는 정치세력이었다. 원칙, 상식, 도덕성을 중시하고, 이념. 정책적 유연성과 진정성을 갖춘 매력 넘치는 정치세력이었다.

고문질이 왜 그렇게 모질고 야비하고 길었던가? 그것은 이들로 하여금 국민들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이야말로 짐승들의 천년왕국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사실상 유일한 정치세력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민주당과 그 울타리 안에 있는 유력 정치인이 더 위협적이었다면, 또 신자유주의를 빼놓으면 문장 구성이 안 되는 자칭 진짜 진보와 그 울타리 안에 있는 유력 정치인이 더 위협적이었다면 돈도, 조직도 없이 봉하마을에서 자숙하는 노무현(세력) 정치적 매장에 그렇게까지는 광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짐승들이 내심 바란 것은 아내, 딸, 아들, 형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비열하게 살아남은 형편없는 놈 같은 인상을 주는 노무현이었다. 교도소 아니면 봉하마을에 유폐된, 정의를 말할 자격이 없는, 위선자 노무현이었다.

자신이 한 약속을 위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또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과 지지자를 위해 목숨을 던지는 것을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해 본적이 없는 짐승들은 자신들이 아무리 몽둥이찜질을 해도 노무현은 거저 얻어맞을 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홈피를 폐쇄하고, 두문불출하고, 불면의 밤을 보내는 노무현을 보고 그들은 드디어 수구. 보수의 천년왕국의 기틀이 다져졌다고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또 자신들은 노무현 죽이기를 통해서 출세의 탄탄대로에 올라섰다고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그들과 격이 다른 인간이었다. 짐승과 인간의 차이만큼 격이 다른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비루하게 살지 않고 살신성인을 한 것이다.

짐승들은 노무현의 자결 소식을 듣는 순간, 자신들의 목에 올가미가 걸리고, 상식의 총구 수백만정이 자신들을 포위하고, 자신들의 머리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달아날 곳은 광장 한 가운데 놓인 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노무현은 자결로서 책임 정치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노무현은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 승리 이후 끊임없이 배신을 당해왔다. 성품이 고결한 인간들이 그렇듯이 아래 사람을 너무 믿은 탓이다. 2007년 벽두부터 이어진 열린우리당 탈당, 노무현과 차별화 쇼, 열린우리당 해체 과정에서 열린우리당 주요 대권 주자들은 노무현을 배신했다. 정확히는 원칙과 상식을 배신했다. 물론 이는 배신이랄 것 까지 없는 작은 일탈이었다.

노무현은 검찰에게서도 배신당했다. 노무현은 검찰의 오랜 숙원인 정치적 중립화를 지원하기 위해 자신의 제왕적 권능을 스스로 포기한 첫 번째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자신들의 숙원을 들어준, 위대한 결단을 한 노무현을, 정권과 독과점 언론의 사냥개가 되어 집요하게 그것도 야비하게 물어뜯었다. 이 때문에 노무현은 진짜 바보-이전의 바보 소리는 신뢰와 애정이 깃든 소리였다- 소리를 들었다. 나부터 앞장서서 제왕적 권력을 꼭 필요한 곳에 써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노무현은 박연차에게서도 배신을 당했다. 그러나 기업과 자기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 여당, 야당, 경찰, 검찰, 지자체, 청와대 등에 가리지 않고 돈을 뿌려댔으니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는 원래 노무현이 추구하는 대의에 깊이 공감할 수 없는 인간이었으니……

그러나 노건평 형, 정상문 비서관의 배신은 엄청나게 아픈 것이었다. 이들은 노무현이 목숨처럼 소중히 여긴 대의를 잘 알고, 노무현이라는 인간 됨됨이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는 부인과 아들, 딸로부터 배신을 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 역시 남편이자 아버지의 정치적 처지와 도덕적 결벽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배신이라는 말은 심한 말 일수 있다. 믿음을 저버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어쨌든 이들은 항시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가는 듯 한 긴장이 몸에 배인 정치인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오랜 후원자이자, 집안의 아저씨 같은 박연차 회장이 내미는 돈을 단호히 거절하지 못하였다. 물론 나는 이것이 범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일반 국민들도 비슷한 판단을 하지 않을까 한다. 선진국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2003년 10월 최도술 총무비서관의 비리를 용납하지 못하여 대통령 재신임을 거론하던 사람이다. 아무리 상대가 박연차라 하더라도 부인, 아들, 딸의 사려 깊지 않은 행동을 노무현이 사전에 알았다면 결코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치보복이 몸에 배여 있는 극악스러운 수구. 보수 세력이 퇴임 이후에 자신을 호시탐탐 노릴 것이 불을 보듯 뻔 한 상황에서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박연차와 부인, 아들, 딸의 금품 수수 행위는 노무현이 볼 때 너무나 실망스러운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검찰과 언론의 야비한 행태와 이를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하는 법. 제도의 미비는 말할 것도 없고, 박연차, 가족, 측근, 지인들의 그 모든 배신과 고통(정치보복)에 대해 노무현은 책임을 졌다. 동시에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노무현을 지지하고 후원하고 함께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실망을 준데 대해서도 책임을 졌다. 짐승 3종 세트를 앞세운 수구보수 세력과 일부 진보세력까지 가세하여, 실체적 진실 규명이 아닌 정치적 매장을 목표로 한 물어뜯기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정신(범민주.진보.개혁 세력의 위신과 가치)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결 외에는 다른 수단을 찾기 어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진적 정치 문화가 낳은 비극이지만, 노무현은 정치적 책임, 사랑, 진정성, 자존심에 관한 한 별처럼 빛나는 존재가 되었다.


역사의 수레바퀴의 방향이 바뀌었다.

노무현은 한국 역사상 퇴임 이후를 가장 철저히 준비했고, 가장 떳떳했고, 가장 학습능력이 뛰어났고, 할 일을 너무나 많이 계획한 전직 대통령이었다. 퇴임 대통령의 모범이 될 자격과 능력이 넘치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매력남이었다. 또한 사회디자인연구소가 생산한 글들을 눈여겨보고, 후한 평가를 내린 유일한 전직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노무현은 그 엄청난 경륜을 펼쳐보이지도 못하고 홀연히 가버렸다. 유연한 진보 내지 새로운 진보 이념과 정책을 만드는 대장정을 단 한 번도 지도해 주지 않고 가버렸다. 그런 점에서 우리 연구소는 미래의 동지를 잃었다. 어쩌면 재임 시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국가적 자산을 한국 사회는 잃었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을 보다가, TV를 보다가, 길을 걷다가, 차에서 라디오를 듣다가 불쑥불쑥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몇 번이고 한다. 동시에 분노와 증오가 불쑥불쑥 치솟는 경험을 몇 번이고 한다. 태어나서 이런 적은 없었다.

노무현은 향후 수십 년 동안 태울 에너지를 단 몇 초 만에 태우고 산화해 버렸다. 부엉이 바위와 거인의 대충돌로 인해 생긴 엄청난 에너지가 만든 진도 9.5의 대지진은 한국 정치. 사회적 지각을 흔들고 있다. 분노와 투지의 쓰나미가 일어나고 있다. 동시에 희망이 살아나고 있다. 반대로 돌던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가 멈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실로 엄청난 대업을 이루었다. 하지만 노무현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에 비하면 이는 작은 일이다. 그래서 안타까운 것이다.


한국 사회가 어디쯤 있는 지를 잘 보여주었다.

노무현의 자결은 한국 사회가 어디쯤 있는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초현대식 건물, 아시아를 휩쓰는 한류, 세계 5위권의 자동차 생산국, 세계 1위의 휴대폰, 반도체, 선박 생산국 등에 눈이 팔려서 미처 보지 못한 후진성을 잘 보여주었다. 특히 정치와 사법과 주류 언론이 얼마나 후진적인 리더십과 문화(마인드)와 제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역사상 가장 깨끗한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스스로 포기한 유일한 대통령이 죽음으로서 진실을 말하고, 주변을 방어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극악한 보수가 검찰과 언론을 지배하고 있는 후진적인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처 갚지 못한 민주주의의 외상값이 얼마나 큰지 확인시켜주었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정의, 상식, 원칙을 말하고, 주류 기득권 세력과 맞짱 뜨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노무현은 자신을 버림으로서 모든 것을 얻었다.

노무현은 바보 소리를 들으면서도 돈과 권력과 매체를 동원한 수구보수세력의 폭력에 굴하지 않고 대의를 쫓아서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탄핵도 당시 한나라당과 구민주당의 쪽수를 앞세운 몰상식한 요구에 굴하지 않아서 일어난 것이다. 그 결과는 거대한 분노의 쓰나미가 일어났다. 이번 부엉이 바위를 진앙으로 한 대지진도 그와 유사하다. 짐승들이 노무현에게 죽음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도록 내몰았고, 노무현은 최고위급 정치지도자로서는 상식적인 선택을 했고, 그로 인해 거대한 쓰나미가 일어났다. 하지만 슬픈 일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므로 서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다 이룬'(요한복음 19장 30절) 예수처럼, 노무현도 자결로서 너무나 크고 고귀한 것을 이루었다. 무엇보다도 사정기관을 활용한 치졸한 정치보복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증거하였다. 언론이 특정 정치인(세력)을 매장시키기 위해 온갖 편파, 왜곡, 거짓 보도를 하는 흉기로 쓰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증거하였다. 사법개혁, 언론개혁, 정치개혁의 중단 없는 전진을 증거하였다.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치보복성 먼지 털기 수사를 고발했다. 자신의 결백을 입증했다. 정의, 양심, 원칙, 상식을 부르짖어온 사람들의 정치적, 도덕적 위신이 짓뭉개지는 것을 막아냈다. 한마디로 향후 10~20년 간 수구보수 방향으로만 거침없이 돌아 갈 것 같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추게 하였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렸지만 열두제자와 바울을 통해서 자신의 사명을 다 이루었다. 부엉이 바위라는 십자가에 매달린 노무현은 누구를 통해서 그 크고 고귀한 뜻을 이룰 것인가? 그는 노무현의 서거에 땅과 가슴을 치며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 아니겠는가?

예수를 고발하고, 십자가형에 처하고, 조롱하고, 때리고, 십자가에 못 박고, 옆구리를 찌른 존재들; 가롯 유다, 유대교 대제사장, 율법학자, 빌라도 총독, 로마 병사, 분별없는 군중들은 예수의 사명을 이루는 소품들이었다. 하지만 2천 년간 유럽에서 멸시 천대의 대상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치 검찰, 독과점 언론도 노무현의 사명을 이루는 소품처럼 되어 버렸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상식과 원칙이 통하고, 관용과 포용이 넘치는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에 될 때까지, 잠깐만 멸시 천대 하자.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므로 서 부활했듯이 노무현도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날리면서 부활했다. 실체적 진실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경쟁 세력 매장을 극악스럽게 도모하는 수구보수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한, 가족. 측근들의 부적절한 행위의 증거가 명확한 한 노무현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 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과 검찰을 잡을 수 있고, 산 노무현은 산송장일 가능성이 높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부여잡고 진정으로 씨름한 사람은 죽을지언정 산송장이 되지는 않는다. 유언은 말한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민족의 십자가가 또 하나 섰다.

짐승 3종 세트가 저지른 교묘하지만 야만적인 고문을 보자 원시적 보복 충동이 불끈불끈 치솟는다. 역사 책에서나 봤던 온갖 엽기적인 보복장면이 떠오른다. 이심전심인지 온 오프라인 공간에는 복수를 호소하는 글들이 홍수처럼 흐른다. 우려스러운 일이다. 사실 노무현과 그 주변 인사들에 대한 정치보복을 우려했던 이유가 바로 이 같은 보복의 악순환 가능성 때문이었다. 중국, 일본, 러시아, 대만, 베트남 등 대부분의 나라들이 내적 갈등을 치유하고, 열심히 미래를 향해 뛰고 있는데, 한민족은 남북 간의 소모적인 갈등에 더하여, 진보와 보수 간에 절치부심하여 복수를 주고받는 일이 생긴다면 누가 승자가 되더라고 대한민국과 한민족 전체가 망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노무현은 복수를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보복의 비극을 증거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린 것이다. 부엉이 바위 아래 충돌 지점은 38선과 휴전선처럼, 1980년 광주처럼, 이 시대의 민족의 십자가가 선 자리다.


하이에나들의 호도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하이에나들은 노무현 자결사건을 대통령 권능이 너무 커서 문제라고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대통령 권능이 커 보이는 것은 한국은 기본적으로 국가(행정부처, 검찰, 법원 등)의 권능(재정, 촉진권, 처벌권 등)이 너무 크고, 이 통제력의 정점에 대통령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직능단체 등 이익집단들이 너무 강하고 몰염치한데 반해 이들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할 수 있는 존재가 대통령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권능이 너무 크다고 문제 삼는 것은 자신들에 대한 유일한 민주적 통제 장치를 무력화시켜 하이에나들과 사냥개들과 강력한 이익집단들의 세상을 만들고자 함이다.


물론 대통령 권능은 축소되어야 한다. 대통령제 자체도 언젠가는 의회책임제로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하늘이 두 쪽 나도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하이에나들과 사냥개들이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을 쪼개고, 민주적 통제 안에서 집어넣는 것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대통령에게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먼저 해당되는 말이다.

한국은 이젠 5년짜리 대통령이 문제가 아니라, 세습 영주나 다름없는 존재들이 문제다. 한마디로 검찰공화국과 조중동 공화국을 먼저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해 보자.

노무현의 고통과 정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합심해서 이런 일을 해 보자.


1. 검찰개혁 운동에 나서자.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검찰은 이명박의 지시대로만 노는 사냥개가 아니다. 그들은 독자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이익집단이다. 향후 있을지 모르는 검찰 권력 약화 시도, 예컨대 검경 수사권 분리, 공수처 신설, 검찰 인사제도 개선 등에 대비하여 유력 정치인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카드)를 주도면밀하게 만드는 집단이다. 이명박 퇴임 이후에는 새로운 권력의 신임을 받기 위해 사전 준비까지 하는 한국 최강의 이익집단이다.

특권 집단들이 그렇듯이 이들은 비주류, 변방 출신들, 반칙. 특권 타파 세력을 생래적으로 싫어한다. 2003년 초에 검사와의 대화 사태를 만든 검사들의 망동은 그냥 터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는 그냥 조용한 것이 아니다. 무수불위의 검찰 권력을 그대로 두고 분권과 자율을 얘기하고, 대통령 권력을 문제 삼는 것은 바보 짓이거나 사기다.


2. 언론 개혁 운동에 나서자.

너무나 진부한 주제지만, 100년이 걸려도 해야 하는 일이다. 물방울이 댓돌을 뚫는 법이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이들 하이에나들이 방송사를 소유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 신문이라는 흉기를 가지고도 죄 없는 노무현을 살해했는데 방송이라는 흉기까지 움켜쥐면 어떤 흉포한 짓을 할 지 모른다.


3. 정치자금법과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보수를 합리화 하자.

대폭 인상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들 계약직(정무직) 공무원이 20~30년간 직업 공무원 생활한, 연금도 좋고, 퇴임 후 갈 자리도 많은 사람들과 보수가 비슷한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것을 개혁하지 않으면 한국은 박연차 같은 재계 서열이 가늠이 안 되는 작은 부자 하나가 수많은 정치인의 명줄을 쥐고 흔드는 사태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4. 노무현의 합리적 핵심을 계승하고 노무현의 약점을 뛰어넘는 시대가 요구하는 정당과 정치세력을 만들자.

2010, 2012년 진보개혁의 대약진 운동을 펼치자. 노무현의 살신성인은 2012년 대회전의 전망을 한층 밝게 하고 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기회 포착에는 능하나 노무현 정신을 계승할 자격이 없는 양아치들의 준동을 막아야 한다.

2004년 총선은 노무현의 살신성인으로 인해 진보개혁 세력이 엄청난 기회를 잡은 선거였다. 하지만 그 이후 몇 년간 진보개혁 세력은 한국 사회와 한국 민주주의가 갚아야 할 엄청난 외상값을 망각하고, 섣부른 보혁(이념)투쟁을 벌이고, 국정 과제의 우선순위를 잘못잡고, 무엇보다도 (진보 우위로 역사적 변곡점이 지났다고 착각하고) 소모적인 당권투쟁에 몰입하면서 그 기회를 다 날려버렸다. 노무현의 죽음으로 만들어 준 소중한 기회를 사리사욕을 위해 탕진한다면 노무현을 두 번 죽이는 짓이 될 것이다. 길 닦아 놓으면 먼저 지나간다는 거지떼를 막아야 한다.


5. 반역의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는 정치 일선에 나서자.

출마만이 정치가 아니다. 반역의 역사와 씨름하려면 목숨을 걸자. 정의와 상식를 지키려는 자 목숨을 걸자.

정치를 하려거든 노무현처럼 하자.

역사의 진보를 위해서 대통령직을 걸어야 할 때는 천신만고 끝에 쟁취한 대통령직이라도 걸고, 역사가 목숨을 요구하면 기꺼이 목숨을 던지자.

사랑하는 동지, 삶에 대한 질긴 미련과의 싸움에서 조차도 이긴 위대한 승부사 노무현과 함께한 시간이 즐거웠다.

노무현이 미치도록 그립다. -끝-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김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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