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초 작성일 : 2011-05-31 11:42:00  |  수정일 : 2011-06-01 11:42:40.143 기사원문보기
[르포] '수십년째 소음 고통' 대구 캠프 워커 인근 주민들

30일 오후 3시쯤 대구 남구 대명5동 캠프 워커 헬기장 활주로 옆 주택가. 회색빛으로 바랜 단층 건물 40여 채가 2m 남짓한 통행로를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다.


벽면은 아무렇게나 갈라져 있고, 길바닥에는 잡초가 콘크리트를 뚫고 어지러이 자라있다. 빈집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주인이 떠난 지 오래된 듯한 빈집 마당에는 잎이 무성한 감나무만이 자리를 지켰고 각종 자재와 무너진 건물 잔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폭격을 맞은 듯 지붕이 무너져 내린 집도 서너 채 보였다. 집 밖으로 난 작은 창문의 녹슨 창살과 미군 부대 담장 위의 원형철조망은 서로 마주하고 경계하듯 대치 중이었다.


캠프 워커 헬기장 옆 비행안전구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피해가 30여 년째 계속되면서 이곳은 더 이상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으로 변해 있었다. 미군부대 내 헬기장과 동편 활주로는 지난 2009년 한국에 반환하기로 결정됐지만 그 시기에 대해서는 기약이 없는 탓이다.


기다림에 지친 주민들은 하나둘씩 마을을 뜨기 시작했고, 그들이 떠난 뒤 주인 잃은 집들만 이곳을 지키고 있다.


이 마을에서 60년째 살고 있다는 미군헬기 소음피해 대책위원장 차태봉(71`남구 대명5동) 씨는 “1982년 전두환 전 대통령 때부터 피해보상 민원 소송을 50여 건이나 냈지만 여전히 기다리라는 말 뿐”이라며, “며칠 전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에서 받은 민원 회신 공문에도 반환 시기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고 한숨만 쉬었다.


다른 한 주민은 “소음 피해를 견디다가 보상받지 못하고 세상을 뜬 마을 주민들도 여럿이다. 이 일대 40여 호 가운데 11가옥이 이미 폐허로 변해 버렸다”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빈집이 느는 탓에 밤이 되면 유령마을처럼 변하는 동네는 주민 모두에게 상처가 됐다.


한 주민은 “해만 떨어지면 철조망이 둘러쳐진 마을과 빈집들 때문에 공포영화 촬영장에 온 것처럼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다. 내가 수십 년간 산 동네가 이놈의 헬기장 때문에 사람들이 떠나고 있다”며 “미군부대를 철수하지 못할 거면 빈집이라도 정비해줬으면 좋겠다”고 한숨지었다.


헬기 소음 때문에 무너진 것은 지붕만이 아니었다. 주민들의 몸과 마음도 함께 무너졌다. 신경안정제가 없으면 잠을 이룰 수 없는 주민들이 대부분이며 심장약을 달고 사는 이들도 적잖았다.


차영순(69`여`남구 대명5동) 씨는 “이곳에서 20년 넘게 살았지만 헬기가 뜨고 내릴 때면 여전히 고통스럽다”며 “주민 대부분이 심장약과 신경안정제를 달고 산다. 청력이 약해진 주민들도 많아 언성을 높이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될 정도”라고 했다.


주민들은 희생만 강요하고 어떠한 보상도 해주지 않는 미군을 불신했다. 이곳 주민 이모(67) 씨는 “예전에 손자 손녀들이랑 우리 동네에서 같이 살고 싶어도 헬기 소리 때문에 아이들이 자꾸 울어서 함께 있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미군 기지가 언제 이전하는지 속시원히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피해 보상은커녕 여전히 귀를 닫고 있는 우리 행정 당국을 향한 불만의 목소리도 높았다.


이순이(70`여`남구 대명5동) 씨는 “헬기가 뜨고 내릴 때 진동으로 벽면 곳곳에 수시로 금이 간다. 이젠 시멘트와 실리콘을 사서 직접 보수한다”며 “함께 심장병을 앓던 남편이 10년 전 세상을 떠나고 (나도) 약 없인 살지 못한다. 한 달에 8만원 나오는 약값은커녕 한 푼도 지원받은 적 없다”고 푸념했다.


차태봉 씨는 “고도제한으로 마을 개발도 힘들고 주민들의 원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는데 행정 당국은 이렇다 할 대책을 못 내놓고 있다”며 “하루빨리 확실한 대책을 제시해 주민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캠프 워커 헬기장 인근 주민들은 떠나면 그뿐이지만 수십 년간 삶을 일궈온 터전을 버릴 수 없어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 속에서 고통만 더해가고 있다.


백경열기자 b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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