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미터(시네티즌)] 최초 작성일 : 2010-01-06 19:19:18  |  수정일 : 2010-01-06 19:26:32.443
[더 로드] 지구멸망 후,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사랑

좋은 소설은 좋은 영화로 찾아온다. 서점에서 구입한 읽을거리는 수년 안에 스크린으로 직행하는 것이 이제는 당연한 관행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책이 영화로 옮겨지면 우선 그 책을 사서 본 이들이 잠정적 관객이 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책과 영화의 한집 살이는 책을 선험적으로 접한 이들에게는 꽤나 신나는 작업이다. 영화화하기 위한 수많은 소재들이 종이 위에서 넘쳐나지만 모든 소설들이 영화화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위한 시나리오로 써간 단편이 어느 샌가 도저히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제작비가 어마어마한 대작이 되어 그냥 소설로 머물렀다는 일화를 떠올려 본다면 가늠될 만한 문제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원작을 영화화하는 일종의 한계를 넘어섰다면, 전혀 다른 지점에서 코맥 맥카시의 [더 로드] 또한 영화화를 위한 무서운 난간에 봉착했음 직한 원작이다.

가까운 미래의 지구, 어디선가 섬광처럼 도시에 불이 날아들고 모든 것이 불타오른 그 시점 이후로 이 땅은 죽은 대지가 된다. 영화는 왜, 어떻게 지구가 이렇게 황폐화됐는지 이유를 밝히지도 밝히려 하지도 않는다. SF가 아닌 이유다. [더 로드]는 길 위의 영화다. 잿더미로 덮여버린 길 위에서 한 아버지와 아들이 지옥보다 더 처절한 생을 견뎌내는 이야기다. 영화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살아간다는 것이 축복인가. 그렇다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문명, 사회, 법, 인간이 구축해온 모든 것이 한 순간에 타버리고 그 위에 지어진 재의 공화국에는 약탈과 강간, 살육이 범람한다. 이 지옥보다 못한 생에서 아들은 생을 묻는 자이고, 아버지는 답을 하기 위해 무수히 고뇌하는 자다. 이리도 등장인물은 단출하고 원색이라고는 등장하지 않는 회색 빛 대지에서 스펙타클을 기대하는 것 또한 오산이다. 비록 포스트 묵시록이라는 어마어마한 상징적 비평을 안았다 해도 이 고뇌하는 원작을 시각적 매체인 영화로 옮기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분명 원작을 경험한 이들에게 [더 로드]는 할리우드의 문법을 수용한 상업영화다. 원작은 희박한 공기 속에서 산소를 하나하나 집어내듯 등장인물이 겪는 육체적 고난을 정신적인 압박감으로 고스란히 전달했다. 이 모든 것이 영화로 오롯하게 갈아타기는 쉽지 않다. 인간이란 어디까지 잔악하고 흉포해질 수 있는가, 인간다움과 선, 악이란 무엇인가, 잿빛 세상에서 태어난 아들이 아버지에게 끊임없이 되묻는 질문 속에서 실오라기 같은 희망(진부하지만 희망)을 찾아가는 고난의 여정은 영화를 위해 사건화되고, 기승전결화됐다. 영화적 문법에 맞춰진 [더 로드]는 분명 폐부를 깊숙이 치고 들어오는 원작의 무겁고 예리한 감각을 다듬었다는 불평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읽는 이마저 고달프게 하는 날카로운 장면은 삭제했을 지 언정, 원작의 진의는 퇴색하지 않았다. 아마도 [더 로드]는 2010년 가장 강렬한 영화적 체험이 될 지도 모른다.

지구 멸망 후, 인류의 모습을 재현해온 영화들은 꽤 많다. 모두 블록버스터 효과에 기대어 멸망장면을 누가 더 스펙타클하게 영상화하는가에 골머리를 쌓았다면, [더 로드]는 애초에 눈보다는 정신에 기대어 압박감을 종용한다. 그것은 하루하루가 지옥보다 더 무서운 생을 살아가는 데 온 몸의 촉수가 세워져 있다. 이 영화의 주제는 생존, 그리고 또 생존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자 코맥 맥카시는 잿더미에 위에 옹립한 인류의 마지막 왕국에서 암전으로 가는 마지막까지 인간다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시험으로 우리를 밀어붙인다. 다행인 것은 영화 또한 마지막까지 스펙타클에 대한 강박을 갖지 않고 원작과 같은 흐름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단테의 지옥여정에 길잡이가 있었듯, 남자(이름이 없는)의 곁에는 길잡이이자 삶의 존재이유인 아들이 있다. 무심코 자다 깨어나 아들의 심장에 손을 가져다 대는 남자의 행동이 가슴 깊이 파고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영화는 인류에게 마지막 남은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하면 진부한 주제를, 시적인 원작에 기대어 강렬하게 묘사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우리는 불을 옮기는 자’라며 존재 이유를 넘겨주고, 아버지의 가슴 속 불씨는 프로메테우스의 희생처럼 아들에게 넘어간다. 인간다움을 염려하는 인류의 마지막 구원자는 어린 아들의 모습으로 선을 꺼뜨리지 않는다. 몸서리쳐지는 인간의 잔악함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던 과정 속에서 마지막에 비쳐드는 한줄기 희망은 뭉클함으로 가슴에 벅차 오른다. 우리는 [더 로드]를 통해 가장 비인간적인 묘사와 가장 인간적인 휴머니티가 버무려지는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메아리는 꽤 오랫동안 머리와 가슴 속에서 잔상을 남긴다.

Tip.
선험적으로 원작을 접한 이들은 알겠지만, 영화에서도 코카콜라는 생명수 혹은 기적 같은 선물로 등장한다. 잿더미 속에서 거짓말처럼 발견한 코카콜라 캔 하나. ‘정말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며 부자가 나눠먹는 코카 콜라는 책의 설명대로 고유명사가 사라진 이 세계에서 꽤 도드라진다. 한때 부자의 생존처럼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코맥 맥카시는 코카콜라 회사로부터 받았던 지원을 이 묵시록 속에 끼워 넣은 것이 아니냐는 재미있는 추측이 있다. 작가 코맥 맥카시에게도 생명수였다는 점을 상기시켜 본다면 재미있는 메타포다.



양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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