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미터(시네티즌)] 최초 작성일 : 2009-12-29 01:12:54  |  수정일 : 2009-12-31 01:37:59.990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바이 바이 히스 레저

70년대 [몬티 파이톤의 성배], 80년대 [브라질], 90년대 [피셔 킹]과 [12 몽키즈]. 감독 테리 길리엄은 영화계에 다시 없을 괴짜 스타일리스트라는 수식이 가장 잘 어울린다. 안타깝게도 영화광들을 경배케했던 옛 시절이 무색하게 그의 근작들은 큰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판타스틱한 영상만은 여전히 남아 있어 혹시나 하고 최근작들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것도 아직까지 그가 가진 힘이다. 하지만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감독 테리 길리엄의 놀랄 만한 상상력보다는 지난해 우리 곁을 떠난 히스 레저의 추억을 곱씹게 하는 유작이라는 사실을 내내 상기시키면서 보게 된다.

단돈 5센트면 별천지를 볼 수 있는 파르나서스 박사의 유랑극단은 오늘도 런던 변두리를 헤맨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손님은 파리가 날린다. 이동극장의 무대를 닫고 돌아서는 뒷켠에서는 반갑지 않은 손님 미스터 닉(톰 웨이츠)이 박사를 기다리고 있다. 아름다운 딸 발렌티나(릴리 콜)는 16세가 되면 악마 닉에게 바쳐질 운명이다. 닉은 딸의 생일까지 5명의 영혼을 구하면 자신과의 오래된 약속을 파기하겠다고 또다시 내기를 건다. 마침 다리를 지나던 이들 앞에 목 매단 청년 토니(히스 레저)가 나타나고, 기억 상실증에 걸린 남자 토니와 딸을 구하기 위한 유랑극단의 공연이 시작된다.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우선 용두사미같은 완성도를 가진 괴작이라는 점을 밝혀둬야겠다. 그 이유는 최근 힘을 못쓰고 있는 감독의 연출력 탓도 제작비 부진 탓도 아닌 히스 레저의 부재 탓이다. 2008년 1월 22일, 느닷없이 우리 곁을 떠나면서 전세계가 당황했던 것처럼 한창 진행 중이던 테리 길리엄의 프로젝트는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테리 길리엄은 포기하기보다는 판타지 장르의 특성을 살려 완성하기를 원했다. 마법의 거울 속으로 들어간 순간 조니 뎁과 주드 로, 콜린 파렐이 히스 레저의 또 다른 페르소나가 되면서 이 상상극장이 무사히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히스 레저의 마지막 캐릭터 토니는 단순한 악역보다는 더 큰 의미가 있었을 듯하지만, 그의 부재와 함께 기괴한 캐릭터로 퇴장하게 된다. 이 이상한 완성도마저도 그의 부재로 인해 빚어진 해프닝이라고 생각하면 이 영화가 작품성과 별개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만한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세상과 느닷없이 고한 작별로 인해 영화의 완성도마저도 뒤틀려버린 히스 레저의 진짜 마지막 유작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부직포로 만든 것 같은 판타지와 아날로그적인 마법세계, 그리고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는 ''파우스트''적인 익숙한 설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인들의 참을성 없는 감각을 나무라듯 영화는 그 옛날의 상상력을 부추기면서 잊혀진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그 중심에서 죽은 히스 레저가 다시 살아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다. 목을 매달면서 영화에 발을 들여놓는 등장부터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판타지와 죽음이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영화와 기괴한 영상이 변화무쌍했던 그의 짧은 영화인생을 떠올리게 한 달까.

영화의 완성을 위해 손을 내민 조니 뎁과 주드 로, 콜린 파렐은 정면에 들어선 포스터에 비하면 카메오 수준으로 출연하지만, 먼저 떠난 동료의 작업을 끝마치기 위해 얼굴을 빌려줬다는 사실이 훈훈하게 다가온다.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가까이 되는 지금에서야 진짜 마지막 유작을 만나게 된 것도 드라마틱하다. 불의의 사고로 영화는 그만 뭐라 평가하기 힘든 괴작이 됐지만, 故 히스 레저의 진짜 마지막 유작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그가 살아 움직이면서 화내고 웃음짓는 장면들이 말 그대로 판타스틱하게 와 닿는다.



양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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