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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뉴스] 최초 작성일 : 2012-06-01 14:20:44  |  수정일 : 2012-06-01 14:21:35.273
토속신앙의 건전한 육성 발전을 위한 서희예술원 박서희 원장

월간 <폴리 피플> 5월 특별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서희예술원은 단순히 신의제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굿을 가르쳐주는 학원의 개념을 초월한다. 굿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부터 한양 열두거리, 진오기 등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문화에 대한 세세한 내용들을 상세하게 지도해 주는 일종의 공간무대이다. 굳이 서희예술원을 공간무대로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잊히기 쉬운 우리의 전통문화를 열성적으로 계승시키고자 노력하는 예술가들의 보금자리로 그 상징을 서희예술원이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굿은 고대부터 지속되어 왔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기 전 인간은 거침없이 변화하는 자연환경으로부터 무방비일 수밖에 없었다. 자연에 대한 두려움은 자연을 경배하게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자연이나 영적인 세계에 의지를 하며 현세의 복을 기원하기도 하고, 그 정신을 무(巫)로 표현했다. 따라서 굿은 인간이 자연 속에서 생존하며 만들어낸 지극히 자연스러운 하나의 문화라고 보는 게 합당하다.

그런데 작금의 우리사회는 어떤가!
기성종교의 텃세로 밖에 보이지 않는 어이없는 징후가 곳곳에서 탐지된다.
우리의 상징적 조상으로 그 정신을 표방하고 있는 단군상의 훼손을 비롯해 우리민족 고유의 정신문화이자 토속신앙의 상징인 무속을 무작정 터부시 하는 경향이 있다. 그 편견과 무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상은 명분이 없다. 단지 미신이라는 이유가 그 유일한 명분을 대표한다. 불교와 기독교. 기타 모든 종교들이 태동하기 전부터 우리의 토속문화는 존재하고 계승되어 왔는데도 말이다.

올바른 제자의 길 양성을 위해 그 상징적 공간을 대표하고 있는 서희예술원

굿은 엄밀히 말해 위대한 우리민족의 문화유산이다.
민족의 정통성 재정립을 위해서도 굿은 반드시 필요하고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 민속학자들의 주장이다. 종교적 관점이 다르다고 해서 굿을 무조건 천하게 여기고, 경박하게 여기고, 뚜렷한 이유도 없이 무작정 사이비로 매도하는 것은, 그 매도하는 자체가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적어도 그 굿 그 자체만을 두고 볼 때, 굿은 우리의 옛 선조들의 얼과 혼이 담겨져 있습니다. 따라서 굿을 굿으로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굿이 고대 인류에게 익숙한 것이었다면, 굿에 대한 이해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보다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하나의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좋은 열쇠를 과거의 유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가워, 제자들을 위한, 제자들에 의한, 진정한 제자들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는 서희예술원 박서희 원장의 소신과 철학이다.

지난 5월 초, 신명나는 굿 한판을 참관하기 위해 서희예술원을 찾은 적이 있다.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음에도 선생의 내방객 맞이하는 미소는 변함이 없었다. 다소곳한 그 모습이 마치 우리 조상들의 옛 새댁을 연상케 했다. 그녀도 실상은 제자라고 했다. 그 자신 신의 딸로 제자이기 때문에, 제자들의 고통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학원을 설립했다고 한다.

“우리 제자들이 무(巫)에 담긴 진정한 참 뜻을 이해하고, 그 정신을 계승해서 우리의 문화유산인 굿을 제대로 교육을 시키기 위한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선생은 급격한 산업화를 진행하면서 전통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우리나라는 굿에 대하여 일방적인 선입견이 너무 강하다고 주장했다. 태국이나 일본에는 그들의 전통문화의 유물인 절이나 신사가 잘 보존되어 있어, 그것이 훌륭한 관광자원이 되기도 하는데, 우리는 아직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는 주장이다.

“프랑스 파리나 이탈리아 로마도 마찬가지에요. 성당이나 콜로세움 등 그들의 전통문화들이 얼마나 잘 보존되어 있습니까! 우리나라도 경복궁을 복원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팔만대장경 등을 등재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유독 우리 제자들이 펼치는 굿은 터부시되고 있는 실정이지요.”

선생은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유. 무형의 전통문화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보존하는 데 더 많은 노력과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선생이 서희예술원을 설립하게 된 계기가 있다.
그녀가 제자의 길을 걷기까지에는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닌 평범한 소녀로 선생의 나이 18세 때 선생은 자신의 몸에 신이 들어왔음을 이상증세를 통해 체험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런 자신의 운명이 싫어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고, 시름시름 앓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는 것이다.

특히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고, 주변의 따가운 눈빛도 그녀에게는 부담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신명은 냉정하리만큼 가혹했다. 몸의 이상증세는 그 강도가 너무 심해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기도 했다며, 자신의 지나온 날들은 그야말로 혹독한 가시밭길이었다고 회고한다.

“심지어는 여러 종교를 섭렵하며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방황도 많이 했지요.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더군요. 혹독한 시련의 과정을 거쳐 결국은 운명이라 받아드리고 나니, 모든 일들이 다 잘 풀리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대부분의 무녀들이 그렇듯, 그녀 또한 혹독한 시련을 통해 일종의 무녀과정을 거쳤지만,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숱한 풍파(風波)가 선생을 괴롭혔다고 한다. 가족들의 만류는 물론 그녀를 경박하게 주변의 시선이 너무나도 싫어 그녀는 한 대 무녀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녀에게는 온갖 시련과 고통이 그를 괴롭혔고, 이내 모든 것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겸허하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 들였다고 한다. 그리고는 마침내 신 내림이라는 의식을 통해 제자의 길에 들어선 것이 벌써 20년 세월이라고 했다.

“솔직히 지금은 너무나도 행복해요. 저를 극진히도 챙겨주시는 부군의 격려가 저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습니다. 덕분에 모든 하는 일들도 문안하게 잘 되고 있어 신당의 신령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선생은 기사화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자신이 제자의 길을 걸으면서 겪었던, 남편과의 아름다운 사연을 들려주기도 했다. 선생의 든든한 후원자로 늘 곁에서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고 있다는 남편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이 모든 것이 신령님의 가피라고 그녀는 주장했다.

타고난 감각으로 각종 굿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제자 육성에 주력

서울시 도봉구 방학1동 685 번지.
한국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우리의 유. 무형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주는 서희예술원이 주택가 아담한 골목길에 자리하고 있다. 학원의 내부는 어느 누가보기에도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고, 선생의 다소곳한 이미지가 그대로 묻어 있다. 개인이나 단체 등 굳이 무녀가 아니라도 우리민족 고유의 굿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선생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선생의 수업 방식 또한 제자와 스승간의 격식이 없다.
모두가 친자매와 같은 제자들로 선생은 한양 열두거리, 진오기, 바리공주, 앉은 거리, 조상 경, 회심곡, 숫자로 보는 비법, 한양장구, 제금, 경기민요, 중상타령, 신장, 대감타령 등을 가르쳐준다. 1:1 속성반과 단체 반으로 나눠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그 과정이 여느 무속학원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 특징이다.

“해외에서 교포들이 소문을 듣고 문의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굿을 단순히 무속신앙이라는 하류문화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연구해서 계승해야 할 전통예술의 한 분야로 봐 주시어 그럴 때가 저는 정말 행복하고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무녀는 노래와 춤을 추며 무아의 경지에서 탈혼(脫魂)이라는 과정을 거쳐 신과 접촉을 시도한다. 신과 접촉한 무녀는 신탁(神託)을 통해 흉조를 멀리가게 하고 길조가 깃들기를 신에게 부탁한다. 따라서 무녀는 인간과 신을 잇는 일종의 영매자이다. 인간의 바람을 신에게 전달하고, 신의 생각을 인간에게 전달해주며, 둘 사이의 관계를 이어준다. 신과 인간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굿은 주로 집안이나 동네에서 하지만 굿의 성격에 따라서 산에서 하기도 한다. 무당이 신을 만나는 장소와 시간을 신의 영역에서 신에게 맞추기 때문이다. 무당이 길일을 택해 굿을 주재하면, 창부 무와 후전 무 등이 가무와 례(禮)를 실행하고, 기무가 장구로 장단을 맞춘다. 악수는 징을 치고, 전악은 퉁소나 해금을 연주해 굿의 분위기를 살린다. 굿의 제물로는 백병, 과물, 당과, 유과, 술, 포 등이 사용된다.

선생은 인간이 굿을 하는 이유로 질병의 퇴치, 초복(招福), 초혼(招魂), 안택(安宅), 기우(祈雨), 진령(鎭靈), 제재(除災), 천신(薦神), 축귀(逐鬼) 등이 목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굿은 일반적으로 굿이 행해지는 과정이 12개로 나눠져 있다고 해서 열두거리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 열두거리의 내용을 선생은 하나하나 차분하게 순서대로 가르친다고 했다.

“지역별로 다양한 굿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요. 꽃노래 굿, 넋 건지기 굿, 대감굿, 뒷전 굿, 별신굿, 용왕굿, 제석 굿, 조상굿, 칠성굿 등이 있지요.”

우선 꽃노래 굿은 강릉 단오제나 동해안 별신굿에서 행해지는 제차의 하나로 송신제(送神祭)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리고 넋 건지기 굿은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넋을 물속에서 건져서 저승으로 보내주는 굿이다. 저승 천도(薦度)굿이라고 할 수 있다. 넋 건지기 굿, 혼 건지기 굿, 수망(水亡)굿, 넋 굿 등으로 불리며, 지역에 상관없이 전국방방곳곳에서 행해진다.

한편 넋 건지기 굿의 내용은 용왕에게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넋을 뭍으로 보내 달라고 비는 것으로 시작한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넋을 건진 다음에는 넋 식기와 혼대를 죽은 이의 집으로 옮겨 놓는다. 무당이 배를 타지 않은 채 바닷가, 강가, 저수지 부근에서 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감굿은 집터를 관장하는 대감 신을 모시는 굿으로 대감놀이, 대감거리, 터줏대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감굿에서 모시는 대감신에는 상산대감, 논향대감, 별상대감, 군웅대감, 몸주대감, 도깨비대감, 안산대감, 밖산대감, 터주대감 등이 있다. 특히 대감신은 집안의 재운을 주관해 재물을 불려주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감굿은 노는 것을 좋아하는 대감 신을 위해서 대감신이 먹고 마시고 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이렇듯 굿은 굿 저마다의 특징과 상징을 지니고 있다.
굿의 공통점은 무녀가 신과의 소통을 통해 인간의 소망을 비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신을 만날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은 현실계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의에 따르는 특수한 준비와 절차가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굿이란 가무(歌舞)가 수반되는 큰 규모의 제의로서 신과 인간의 상봉, 대화를 의미하고 이것으로부터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노력을 전제로 한다.
자고로 무속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비한 영역이라고 했다.
그 영역의 고유한 틀에서 벗어나면 그것이 곧 무속의 변질이라고 했다. 그 틀을 깨지 않고 무속을 있는 그대로의 무속으로 표현하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서희예술원 박서희 원장의 노력이 그래서 더욱 헌신적으로 보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제자들의 안식을 도모하고 그들의 표현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무(巫)의 진정한 무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하태곤 기자 [tkha715@pol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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