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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뉴스] 최초 작성일 : 2012-06-01 14:14:33  |  수정일 : 2012-06-01 14:15:23.567
부천 전각사 오귀녀 선생, 조마루 도당 굿 보존회장

월간 <폴리 피플> 5월 특별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그녀를 보면 문득 아득히 먼 옛날 우리네 옛 조상들의 여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직은 때가 묻지 않은 그 순수함이 그렇다. 천명을 받고 태어나 제자의 길로 들어 선지도 벌써 30년. 오탁악세에 찌들었을 법도 한데, 그 푸른 본성이 너무나도 맑고 향기로워 보는 이로 하여금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런 그녀가 펼치는 굿의 향연은 신통함을 넘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녀를 정직함이 그녀의 생명이고 철학이자 소신이라고 여긴다. 석가탄신일을 일주일여 앞둔 지난 5월 중순, 경기도 김포에서 있었던 그녀의 제수 굿 현장을 탐방했다.

그녀가 17세 되던 해였다.
어느 추운 겨울, 당시에는 거의 도든 가구들이 연탄으로 난방을 지피던 시절이다.
그녀는 불의의 사고로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사경을 해맨 적이 있다. 가족들이 가스에 중독되어 있던 그녀를 발견한 시간은 이미 그녀가 의식을 잃은 이후였다. 너무 늦었다. 급히 병원으로 이동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봤지만, 병원으로서도 별반 도리가 없었다. 이내 가족들은 포기했고 그녀의 극락왕생이나마 빌어주기 위해 그녀의 마지막 임종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녀가 의식을 잃은 지 무려 64시간, 이틀하고도 16시간이 흘렀다. 슬픔 속에 가족들이 그녀에게서 산소 호흡기를 뗄 참이었다.

하늘의 천명(天命)을 받고 신통력 겸비한 조마루 도당 굿의 명인

그녀는 의식을 잃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푸른 잔디밭이 끝없이 펼쳐진 도솔천에서 흰 도포를 입은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에 매달렸다.

그녀는 “할아버지 여기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저를 가족들 품으로 다시 데려다 주세요.” 라며 매달렸다고 한다. 그리고는 잠에서 깨어나 보니 자신의 육신에 흰 광목을 덮으려는 의사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고 한다. 불가사의 한, 그러나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기적이었다. 그리고 그 기적은 그녀가 신의 딸로 태어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녀 나이 20대 후반. 통증과 함께 갑자기 배가 부르기 시작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임신은 분명히 아닌데, 배가 자꾸만 불러 오르니 그녀는 기가 막혔다. 더욱 황당한 것은 다 큰 처녀가 임신을 한 것처럼 마냥 배가 불러오니 가족들은 그런 그녀를 불결한 처녀로 오해하기 일쑤였고, 내친 김에 빨리 신랑 될 사람이나 속히 가족들에게 인사시키라고 주문했다.

그녀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녀는 당시 애인은커녕 남자친구도 없었다고 한다. 문제는 가슴의 통증이었다. 이내 병원을 찾았다. 혹시나 해서 산부인과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담당의사는 임신은 아니라고만 확인해 줄뿐 병명도 그 원인도 도무지 알 수 없다며 의아해 했다. 급기야 이 병원 저 병원 심지어는 큰 병원에서 종합 진단까지도 받아 봤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역시나 같은 답뿐이었다. 그러기를 서너 차례 선생은 마침내 종교의 힘을 빌리기로 하고 자신이 어려서부터 줄곧 다니던 절에 가서 스님과 상담을 하고는 불공도 드렸다.

어느 날 밤 꿈이었다.
그녀의 꿈에는 언젠가 자신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기억이 있었던 푸른 잔디밭 흰 도포 할아버지였다. 그녀는 다시 또 빌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도대체 자신이 왜 이러한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라도 알고 싶다며 할아버지에게 매달렸다고 한다. 그녀의 간절한 애원은 바로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할아버지의 공수를 받고, 몸도 완치되기에 이르렀으며, 그 할아버지는 지금도 그녀의 몸(神) 주가 되어, 그녀의 점사에 신통력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지난 5월 초, 필자는 평소 안면이 있는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제보를 접했다.
부천에 전각사라는 신당이 있는데, 지역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사업 굿에 영험함이 있는 보살이 한분 계신다는 것이다. 그녀가 바로 주인공 오귀녀 선생으로 대 마침 인근의 공장에서 선생의 사업의 융성과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굿판이 펼쳐진다고 하여 그 현장을 방문했다.

종합건설사에 아파트 빔 철근 건설자재를 납품하고 있는 (주)한국모텍의 김포공장은 그 규모만큼이나 실용등록을 필한 유망 중소기업이었다. 선생의 사업융성발원 고사 굿판이 드디어 펼쳐지기 시작했다.

선생의 사업융성 소원성취 굿 자영업자들에게 입소문 자자
선생의 축원으로 사업장 부도위기에서 전화위복이 되기도...


“선생님의 축원과 지극정성 기도로 회사에 앞으로 좋은 일들만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래 전부터 선생님의 법력에 의존하며 가피를 많은 받았습니다. 오늘 이 굿도 회사의 규모를 넓히고 확장해서 이전을 하다 보니 선생님의 축원이 필요해서 겸사겸사 고사를 지내게 됐습니다. 선생님의 영험함은 적어도 이 지역에서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만큼 유명하시지요.”

회사의 변재용 대표와 김우용 부사장이 전하는 선생님에 대한 이구동성의 평가였다.
잠시 후 펼쳐진 선생의 굿 한판은 그녀가 사업을 하는 자영업자들에게 왜 그렇게 유명한지, 실제 범부가 보기에도 선생의 굿에는 그 옛날 우리조상들이 지극정성으로 치성을 드렸던 소원성취의 축원이 함축되어 있었다.

“저희 선생님은 기도 외에는 한 눈을 팔지 않으셔요. 아마도 일주일에 나흘은 전국의 기도터를 찾아 기도를 하러 가십니다. 기도의 생활화로 정말이지 제자다운 제자의 길을 걷고 계시는 분이에요.”

서울 방화동에서 만사형통이라는 신당에 신령님을 모시고 있다는 제자 윤화영 보살의 선생에 대한 스승예찬이었다. 이내 선생과 제자가 함께 펼치는 소원성취 굿 한판은 그 의식이 범부가 보기에도 그 상대가 누구든 선생의 축원에 가피가 있을 듯 했다.

선생은 기도를 자신의 생명력으로 여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운 겨울이나 한여름의 무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국의 기도터를 찾아 신도들을 위해 소원성취 축원기도를 해준다. 기도를 하지 않으면 자신이 이유 없이 배가 부르고 통증이 심했던 과거의 고통들이 되살아나 기도를 하지 않고는 단 하루도 버틸 수 없다는 것이 그녀를 곁에서 늘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부군의 전언이기도 했다.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275번지.
그녀가 주석하고 전각사 신당은 그 기운이 범부가 보기에도 신령함으로 가득했다. 평소 기도를 생활화 하고 있는 그녀의 맑고 순수한 이미지와도 묘하리만큼 흡사했다. 천년고찰에서 품어져 나오는 부처님 가피의 향연이 향과 촛불의 결정체로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오듯, 신당의 기운이 그녀가 진정한 신의 딸로서 한 세월을 풍미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 성스러움이 극락의 도솔천을 배어 닮은 듯, 신당의 중앙에는 그녀의 생명을 그토록 담보했던 할아버지가 모셔져 있다.

일주일에 나흘은 기도... 맑고 순수한 영혼으로 영검한 점사
두타산 산신제와 조마루 도당굿 보존 위해 헌신적인 노력 펼치기도


그녀는 신도들에게 자신의 점사에 대해 30% 만 믿으라고 한다.
자신은 단지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공수를 그대로 신도들에게 전해 줄뿐이라고 했다. 한 점 부끄러움 없는 마음으로 신도들을 위해 할아버지께 지극정성으로 발원기도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점사에 그녀 스스로도 만족하지만, 늘 마음한 구석에는 죄를 짓는 마음이라고 한다. 자신의 점사가 신도들에게 미칠 영향을 항상 마음속에 새긴다는 것이다.

“기도를 게을리 하고 삿된 마음을 먹으면 점사가 잘 안 나오겠지요. 신령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발원하는 마음으로 치성을 드리면 점사 또한 분명히 잘 나올 것이라 믿습니다.”

선생은 필자와의 담소 중간에 불가(佛家)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강조하기도 했다.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는 불교의 화엄경 사상을 자신의 소신과 철학에 비유하며, 슬프고 짜증나는 일도, 한 생각 돌이키면 편안해 지는 법이니, 세상사 지극정성으로 매사에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제자의 지극히 당연한 도리라고 했다.

강원도 동해가 고향인 선생은 지금은 비록 고향을 떠나 왔지만, 가끔은 고향 향수에 젖곤 한다. 그래서 해마다 고향 동해를 찾아 인근의 두타산 산신제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자신의 제 2의 고향인 부천 조마루 도당 굿 보존을 위해서도 적극적인 노력으로 헌신하고 있다.

특히 조마루 도당 굿의 조마루는 본래 경기 부천지방을 중심으로 조씨[曺氏]성이 주종을 이루고 살았다고 해서 조마루라고 하였는데 일제강점기에 조[曺]를 조[朝]로 고쳐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조종리[朝宗里]로 표기했다고 한다. 1973년 부천시가 되면서 조종리는 원미동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1979년 10월 시청이 청사를 건립하여 이곳에 이전해 오면서 다시 중앙동으로 개칭하였다가 1985년 11월 원미동을 원미1동 원미2동으로 분동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바로 이곳의 전통문화인 조마루 도당 굿을 선생이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있다.

혹자는 무녀에 대해 가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길이라고 표현했다.
누구도 이해해 주지 않는 막막한 길, 그리고 끝없이 노력하고, 끝없이 기도하고, 공들이며 베풀고 살아야하는 고독한 길이라고 했다.

잘되면 자기들이 잘해서 된 거고, 빌어주고, 정성들여서 도와주고나면 무당소리나 듣고, 언제 그랬냐는 듯, 무속을 터부시하고 무시하는 사람들로 인해 속으로는 울고, 앞에서는 웃어야 하는 광대의 길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선생은 지나온 옛일을 생각하며 힘들고, 막막해 하는 제자들을 위해 자기가 배운 모든 것을 나누어 줄 때, 진정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능력은 신이 주는 것이지만 재주는 제자가 부려야 한다고 했던가.!

선생은 각자의 위치에서 인정을 받으며 커가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지나온 날들을 거울삼는다고 했다. 그리고는 제자들이 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전각사 인근에 공간을 따로 만들어 제자들을 위한 교육의 장을 만들어 놓고 있기도 하다.

팔순의 노모를 모시고 효녀로서, 신의 제자로서, 또한 우리민족의 위대한 문화유산이자 그 민속의 상징인 도당 굿의 보존을 위해서도 헌신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는 선생과 제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하태곤 기자 [tkha715@pol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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