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명' 이동규, '전설' 산체스를 무너뜨리다
이날 최대 이변의 주인공은 무명의 드림투어리거 이동규였다. 이름값만 보면 모두가 산체스의 압승을 예상했고, 실제 경기도 1, 2세트를 각각 4:15, 1:15로 속수무책으로 내주며 예상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3세트, 패배 직전에 몰린 이동규의 극적인 반격이 시작됐다. 6이닝째 터진 하이런 8점을 앞세워 15:6으로 한 세트를 만회하더니, 4세트에는 산체스가 11이닝 공타라는 극심한 난조에 빠진 틈을 타 22이닝 혈투 끝에 15:9로 승리,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어진 운명의 승부치기. 선공을 잡은 이동규가 초구에 무려 5점을 몰아치는 '강심장'을 과시했고, 엄청난 부담을 느낀 산체스가 1득점에 그치며 PBA 역사에 남을 대역전극이 완성됐다.(4:15, 1:15, 15:6, 15:9, 5:1 이동규 승)

'또 다른 반란' 박광수, 챔피언 이승진에 판박이 승리
앞선 경기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판박이 같은 결과가 또 나왔다. 직전 4차 투어에서 '인간 승리' 드라마를 쓰며 챔피언에 오른 이승진이 또 다른 와일드카드 박광수에게 덜미를 잡힌 것이다. 이승진 역시 1, 2세트를 15:5, 15:7로 가볍게 따내며 손쉬운 승리를 예감했다.
그러나 3세트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승진이 갑작스러운 부진에 빠진 사이, 박광수의 큐끝이 매섭게 살아났다. 박광수는 3세트를 15:3으로 가져온 데 이어 4세트마저 15:10으로 승리, 경기를 승부치기로 끌고 갔다. 승부치기 선공에 나선 이승진의 초구가 실패로 돌아가자, 후공 박광수가 침착하게 1점을 성공시키며 또 하나의 '와일드카드 신화'를 만들어냈다.(5:15, 7:15, 15:3, 15:10, 1:0 박광수 승)
'96년생 동갑내기'가 던진 메시지, "PBA에 약체는 없다"
공교롭게도 이날 반란의 두 주역 이동규와 박광수는 1996년생 동갑내기이자, 2부 격인 드림투어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선수들이다. 이들은 0:2로 패배 직전인 똑같은 상황에서 PBA 최상위 포식자들을 상대로 똑같은 대역전 드라마를 쓰며 자신들의 이름을 똑똑히 각인시켰다.
이날의 결과는 PBA 무대에서는 그 누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으며, 드림투어를 포함한 모든 선수가 언제든 '거인'을 쓰러뜨릴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했다. 화려한 이름값보다 마지막 1점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지가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 두 젊은 피의 반란에 당구 팬들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