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초 작성일 : 2013-03-30 10:50:00  |  수정일 : 2013-03-30 10:54:07.853 기사원문보기
연륜에서 얻은 경험, 집밖 나가니 귀한 지혜…

영국에는 '노인의 말은 별로 맞지 않는 것이 없다'(An oldman's saying are seldom untrue)는 격언이 있다. '아프리카의 지성'으로 불렸던 말리 출신 작가 아마두 함파테 바(Amadou Hampate Ba)는 "노인 한 명이 숨지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명언을 남겼다. 어르신들이 가진 삶의 경험과 지혜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보여주는 표현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실버(노인) 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거리를 좁히고 소통을 복원하기 위해 기획된 '실버톡'(www.silvertalk.org) 공익 캠페인이 주목받고 있다. 어르신들의 지식과 노하우에 귀를 기울이자는 제안이다. 지역에서도 '위대한 스토리텔러'를 자임하는 어르신들이 점차 늘고 있다.



"여러분은 수목원 내 모든 식물에 대해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특히 온실에서는 관람객들이 선인장들의 가시를 만지지 않도록 수시로 주의를 주셔야 합니다. 아시겠죠?"


화려한 봄꽃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는 대구 달서구 대구수목원. 이달 26일 파란색 조끼를 입은 어르신 20여 명이 귀를 쫑긋 세운 채 강의를 듣고 있었다. 4월부터 숲 해설가로 활동할 어르신들이 교육받는 중이었다.


강사로 나선 한의웅 중구 시니어클럽 숲 해설사업단장은 11년째 활동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월남전 참전 국가유공자로서 군`기업체에서 경력을 마칠 무렵 우연히 신문에서 문화유산해설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본 게 계기가 됐다. 그가 건넨 명함 뒷면에는 그동안 취득한 각종 자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문화유산해설가`숲생태해설가`생태문화해설사`노인교육전문지도사`실천예절지도사`한자교육지도사`옛이야기교육지도사 등이다.


강의뿐 아니라 하루 4시간 정도 직접 숲 해설가로도 나서고 있는 한 씨는 "사회에 대한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하고 즐겁게 일하고 있다"며 "보수를 떠나 인생 후반부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은퇴 후 각종 해설사에 도전하고 있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교육에 참가한 이들의 열기도 뜨거웠다. 중학교 교장 선생님을 지낸 박찬서(76`대구 달서구 상인동) 씨는 "뒤늦게 알게 됐지만 노후 활동에는 최고인 것 같다"며 "나이 들어서 하는 공부가 쉽지는 않지만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상복(65 `대구 달서구 진천동) 씨는 "문화 지킴이 활동을 해오다 숲 해설가에도 도전하게 됐다"며 "잘 몰랐던 식물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다"고 말했다.


대구에는 이들처럼 숲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어르신이 200명 이상 된다. 대구수목원뿐 아니라 앞산`팔공산`두류공원`화원휴양림에서도 만날 수 있다. 자치단체가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숲 해설가의 경우 30시간 정도의 교육을 마치면 현장에 나가지만 대구수목원`대구생명의 숲`산림청에서 주는 자격증을 받으려면 140~180시간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보수도 월 20만원에서 120만원까지 차이가 난다. 한 단장은 "지자체별로 있는 시니어클럽에는 남성이, 교육 시간이 긴 수목원 강좌에는 여성의 비율이 높은 게 특징"이라며 "공직자`교사 출신이 많은 편"이라고 전했다.


숲 해설가뿐 아니라 어르신들이 '실버 스토리텔러'로 활약하고 있는 분야는 다양하다. 경로효친`학교폭력 예방`예절`한자`장구`종이접기`자연체험`민요`다도`동화구연`기 체조`신문 활용 교육 등이 진행되고 있으며 분야도 점차 넓어지는 추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문화관광해설사. 계산성당, 이상화`서상돈 고택`제일교회`약령시`경상감영 등을 둘러보는 근대문화골목 투어가 대구를 대표하는 관광상품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지원자가 점점 늘고 있다. 28일 계산성당에서 대구 대륜중학교 학생들을 인솔한 '도심 문화 탐방 가이드' 손수자 씨는 3년째 대구 골목 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전업주부였던 손 씨는 "친구들과 일본어 스터디 모임을 하다가 문화유산해설사에 대해 우연히 알게 됐다"며 "대구의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중구 골목문화해설사업에는 올해 30여 명의 어르신이 참여하고 있다.


만 65세 이상의 어르신이라면 대구시내 기초자치단체별로 지정된 시니어클럽이나 종합복지관`노인복지센터 등을 통해 봉사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20~30시간 정도의 소양교육을 받고 현장실습 투어를 통해 해당 분야를 공부한 뒤 해설사로 활동하게 된다.


운경재단 중구시니어클럽에서는 '노인상담가' 사업이 눈길을 끈다. 치매`우울증 예방 프로그램 교육과정을 이수한 노인상담가가 홀몸노인 및 심리 상담이 필요한 노인 대상자를 찾아가 동시대를 함께 산 공감과 소통을 바탕으로 사회적 소외감, 자살 충동을 예방한다. 박원희 중구시니어클럽 관장은 "중구는 인구 대비 노령인구의 비율이 16.5%로 대구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라는 점에 착안했다"며 "사회참여를 통한 자아실현의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노인들의 심리`정서적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개념의 노인 세대 일자리"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구시 노인복지대상 단체부문 대상을 차지한 대덕노인종합복지관 '金바라기 예술단'도 활발한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2006년 3월 창단한 이 예술단은 대구시 유일의 노인 문화 공연단으로 각설이`노래`무용 등으로 구성된 공연을 지금까지 160회가량 실시했다. 예술단 박정진 팀장은 "예술단의 이름은 뒷방늙은이가 아니라 금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진취적 노년이란 뜻을 담고 있다"며 "실버 세대의 재능 기부를 통해 노인의 사회활동에 대한 긍정적 시각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버 세대의 이 같은 적극적인 사회 참여 활동은 여러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노령화지수 추정치는 83.3%를 기록, 사상 처음으로 80% 선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됐다. 또 65세 이상 노령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도 12.2%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나타난 고령화는 우리 사회에 부담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7일 발표한 '2012년 법안비용 추계 사례 보고서'에 따르면 급여율 인상, 수령 인구 확대 등의 내용이 담긴 기초노령연금법 개정안이 실현되면 추가로 소요될 비용이 2013년 2조6천214억원을 시작으로 향후 5년간 28조2천38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대구시 저출산고령사회과 김문기 노인정책담당관은 "노인 일자리 숫자를 매년 늘리고 있지만 38만 명에 이르는 대구시내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에 대비해 앞으로 더 일자리를 확대해야 한다"며 "노인 인력 활용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올해 227억원의 예산을 들여 1만2천여 명의 어르신을 대상으로 노인 일자리 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노인 일자리 사업은 골목 문화, 문화유산`숲생태 해설, 실버 강사 파견 사업, 노-노(老老)케어사업, 실버 문화 공연단 등 사회 공헌형과 창업`인력파견 위주의 시장 진입형이 있다. 문의 053)803-4136.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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