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미터(시네티즌)] 최초 작성일 : 2009-12-19 01:15:21  |  수정일 : 2009-12-31 01:39:05.573
[걸프렌즈] 아이디어만 존재하는 기획영화의 한계

한 남자가 있다. 그리고 그와 과거 혹은 현재 ‘연인’(연인이라고 착각하는)인 여자가 셋 있다. 만약 이 남자가 모르게 세 여자가 만나게 된다면? 그럴 경우 이 여자 셋은 어떤 관계가 될 것인가? [걸프렌즈]의 기획 아이디어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원작인 소설이 존재하지만, 어찌되었든 그 아이디어 하나는 기존 트렌디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종류의 그것임이 분명하다.

회식이 끝난 후 회사의 킹카로 불리는 유진호(배수빈 분)과 반 쯤 술김에 키스를 나누게 된 스물 아홉 5년 차 직장인 한송이(강혜정 분). 그저 한 번의 키스로 연인이 되는 것은 아닐 거라는 것을 아는 그녀이지만, 의외의 진호의 고백으로 둘은 연인 사이가 된다. 그러다 그에게 자신이 모르는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여자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고 만다. 섹시하고 뇌쇄적인 매력을 가진 진호의 첫사랑이자 유부녀 진(한채영)과 보이시 하면서도 어리고 순수한 매력을 가진 보라(허이재)를 만나게 된 송이는 이상하게 두 여자와의 관계 속으로 빠져 들면서 기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영화는 스물 아홉의 여자를 주인공으로 놓은 트렌디 영화답게 많은 것을 담고자 한다. 직장인 5년 차, 변변하게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여 주인공의 사회적 현실과 거기에 연애만큼은 성공하고 있다고 믿었건만 전혀 그렇지 못한 자연인으로서의 현실을 뒤섞어 낸다. 거기에 사랑하는 연인이 아니라 그 연인을 사랑하는 또 다른 여자들과의 관계를 통해 독특한 지점을 만들어 내고자 한다. 문제는 이 기획 영화가 정확하게 그 ‘아이디어’에서만 끝난다는 사실이다.

[걸프렌즈]는 세 여자가 가진 캐릭터의 매력과 한 남자를 두고 벌이는 신경전을 코믹하고 톡톡 튀는 감각으로 그려내고자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스물 아홉의 연애에 대해 성숙한(혹은 쿨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쌩뚱 맞게도 그녀들의 ‘섹스’적 측면에 집중한다. 거기다 20대 직장 여성에 대한 고민을 담고자 하는 욕심에 어설프게 진지함을 끼워 넣고 만다. 코믹과 진중한 고민 사이를 오가는 가운데, 영화는 길을 잃어버린다. 거기다가 세 여자의 질투심과 우정이 섞인 기묘한 관계는 각 캐릭터들이 피상적으로 그려지면서 관객을 향한 설득력을 잃고 만다. 각각 나이대와 여성으로서의 캐릭터를 대변하는 셋은 복잡한 고민을 갖고 있는 듯 하면서도, 결국 그려지는 건 ''섹시-순수-평범''으로 보이는 표면적인 이미지일 뿐이다.

문제는 이 영화가 기획 단계에서 보여준 아이디어에서 이야기를 조금도 발전시켜나가기 못했기 때문이다. 세 여자가 만났을 때 벌어지는 헤프닝은 있으되 긴밀하게 연결되는 이야기는 없고, 캐릭터의 색깔은 있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표면적이다. 그런데다 이야기의 구조나 담고 싶은 메시지 또한 산만하기 그지 없어, 도무지 영화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시작된 건지 혼란이 온다. 결말 조차도 도대체 저 인물들이 어째서 저러한 선택을 해야 하는지 설득력이 전혀 없다. 기획만 있고 생각이 없는 영화의 전형적 약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겨울에 보기 편한 트렌디 영화 한 편으로도 사실 [걸프렌즈]는 허점이 많다. 기분 좋게 그저 생각 없이 즐길 수만 있어도 후한 점수를 주련만, 그마저도 달성하지 못했다는 게 못내 안타까울 뿐이다.



조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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