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최초 작성일 : 2009-11-06 09:38:29  |  수정일 : 2009-11-06 09:38:29.857
민족문제연구소, '朴 전 대통령 만주군 혈서지원 자료 공개

















박정희 전대통령의 만주군 혈서지원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가 지난 4일 공개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최근 일본에서 입수한 혈서지원 기사가 실린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 사본을 공개하고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일인명사전 등재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만주지역에서 발행되던 일본어 신문인 ‘만주신문’기사에 의하면 박 전대통령은 문경에서 교사로 재직 중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군관으로 지원하였으나 연령 초과로 일차 탈락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지원 서류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와 채용을 간곡히 호소하는 내용의 편지를 동봉하여 1939년 재차 응모한 것으로 나타난다.

편지 내용도 일사봉공(一死奉公),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 등 확고한 신념을 담고 있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박 전대통령은 세 차례의 시도 끝에 1940년 4월 신경군관학교 예과과정에 입학하여 군사교육을 받고 1942년 3월 우등생으로 졸업하면서 만주국 황제 푸이(溥儀)가 하사하는 금장시계를 은사상(恩賜賞)으로 받았다.

1942년 10월 성적 우수자로서 일본 육군사관학교 본과 3학년에 편입했고 1944년 4월 일본육사 제57기와 함께 졸업했다. 1944년 12월 일본군 소위로 예비역으로 편입됨과 동시에 만주국군 보병소위로 임관하였으며, 보병 8단 단장의 부관실에 부임해 작전참모 역할을 하는 을종(乙種) 부관 겸 부대의 단기(團旗)를 책임지는 기수로 근무했다. 1945년 7월 만주국군 중위로 진급했다.

연구소가 자료 공개를 결정하게 된 데는 박 전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가 지난 달 28일 게재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후 ‘친일인명사전’ 발간의 본지가 흐려지고 정치쟁점화하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관련 보도가 나간 뒤 연구소에는 욕설 전화가 끊이지 않아 업무에 지장을 받을 정도였다.

연구소는 특정 정치인의 입지와 무관하게 1991년부터 편찬 작업을 해왔다. 그런데도 해방 이후 60년이 넘도록 미결 상태로 끌어왔던 친일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역사적 학문적 정리를 마치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진행하고 있는 듯이 왜곡하는 일부 의견에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근거 없는 비난을 방치할 때 민족사 정립이라는 대의의 진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박 전대통령 자신의 언행이 담긴 객관적인 원사료를 공개함으로써 불필요한 논란 확대를 막고, 이성적인 토론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편, 박지만 씨는 4일 북부지원에 게재금지 가처분신청에 배포금지를 추가하여 청구취지 및 원인 변경신청서를 제출했다.

오진영 기자 [lgoon@pol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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