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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미터(시네티즌)] 최초 작성일 : 2009-12-25 01:18:08  |  수정일 : 2009-12-31 01:39:02.573
[판타스틱 Mr. 폭스] 먹물루저 웨스 앤더슨의 환상적인 인형놀이

현 세대 살아있는 먹물 루저의 대가 웨스 앤더슨이 보여주는 인형극이라니. 당최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 있을까. 거기다 전세계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시켜주는 할아버지 로알드 달의 원작 <멋진 여우씨>를 기반에 세우고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좀처럼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완소무비가 될 것임은 예감상 알 만하다. 웨스 앤더슨과 로알드 달의 만남으로 탄생한 [판타스틱 Mr. 폭스]는 말 그대로 ‘판타스틱’하다.

여우시간으로 약 12년 전(인간 시간으로는 2년), 닭장 털기를 좋아하는 야생 여우 미스터 폭스(조지 클루니)와 미세스 폭스(메릴 스트립)가 시골 농장에서 신명나게 닭을 물고 나오던 찰나. 알면서도 건드려본 덫에 우스꽝스럽게 걸려든다. 타이밍도 얄궂게도 미세스 폭스는 미스터 폭스에게 임신 사실을 알린다. "이 덫을 나가기만 한다면 안정된 생활을 할 것이야" 그리고 지금은 여우시간으로 12년 후 현재, 폭스 부부와 아들 애쉬(제이슨 슈워츠먼)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 지역 신문에 인기 칼럼을 연재하면서 단출한 굴 생활을 즐기고 있지만, 폭스는 여전히 가슴 속 야생의 본능을 잊지 못한다. 결국 친구 카일리(월레스 우로다스키)와 손을 잡고 언덕 위 으리으리한 농장주 보기스, 번스, 빈의 창고를 차례로 도둑질한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농장주 3인방은 폭스 굴을 파기 시작하고 폭스 가족과 더불어 숲 속 동물들까지 땅굴 속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위험에 빠진다. 급기야 사촌 크리스(에릭 앤더슨)가 빈의 손에 잡히면서 미스터 폭스는 골머리를 앓는다. 다 함께 크리스 구출작전 마스터 플랜 B를 가동한다.

[판타스틱 Mr. 폭스]는 웨스 앤더슨이 임한 첫 번째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이미 [스티븐 지소의 해저생활]에서 선보인 바 있는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익숙하게 웨스 앤더슨표 영화로 받아들이게 된다. 사실 짧은 러닝타임과 전격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실험을 시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했지만, 영화는 그의 전작들, [러쉬 모어]부터 [다즐링 주식회사]를 잇는 전형적인 웨스 앤더슨표 루저찬양 영화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엉성하게 화합하는 가족영화다.

[로얄 테넌바움]과 [스티브 지소의 해저생활], 그리고 [다즐링 주식회사]까지 줄기차게 웨스 앤더슨의 이야기 보따리가 되는 콩가루 가족과 말도 안 되는 형제애는 이번 영화에서도 반복된다. 나름 칼럼을 통해 지역 인사로 살아가는 미스터 폭스는 가난하지만 행복하다는 아내의 말에 부족하다고 응답하는 여우다. 아들 애쉬는 아버지처럼 뛰어난 운동 선수가 되고 싶고, 잠시 들른 사촌 크리스에게는 시기와 질투로 점철된 특별할 것 없는 소년 여우다. 그나마 가장 멀쩡해 보이는 현실주의자 미세스 폭스는 이성적이지만 꿈 꾸는 남편 폭스를 위로하지 못한다. 제각기 동상이몽하는 여우 가족이 이상한 사건 사고로 화합하는 엉뚱한 행복은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

엄연한 범죄행각인 폭스의 창고 털이가 멋쩍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어린이동화다운 발상 덕분이다. 유산계급 농장주와 가진 것 없는(거기다 인간도 아닌 동물)여우의 한판 승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나 다름없다. 이 대결에서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주인공 여우가족이 이기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무산 계급의 승리라는 거창한 주제를 댈 것도 없다. 이 엉뚱한 이야기는 어린 시절 봐왔던 인형놀이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안성맞춤이다. [제임스의 거대한 복숭아]로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헨리 셀릭과 만나고, 팀 버튼의 [찰리의 초콜렛 공장]으로 기괴한 상상력을 지폈던 원작자 로알드 달은 웨스 앤더슨의 손으로 거듭난 영화에도 꽤나 만족할 것 같다.

비록 이 인형놀이가 전체관람가일 지 언정 어른들도 즐길만한 블랙유머가 한 보따리라는 것도 단선적인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중요한 포인트다. 악질 농장주 3인방이 굴삭기로 숲을 다 파헤치는 바람에 부인이 햇빛 구경도 못한다는 항의에 ''넌 두더지라 원래 빛을 못 보잖아''라고 일갈하질 않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만 같은 자식사랑은 온데 간데 없고 아들 애쉬보다 사촌 크리스를 끼고 다니질 않나, 아버지 폭스의 모습들은 우스꽝스럽지만 인간적인 상황들을 빚어낸다. 좀처럼 칭찬하지 않는 아버지 폭스와 그 아버지 눈에 들려고 안간힘을 쓰는 아들 애쉬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로얄 테넌 바움] 혹은 각본가로 참여한 또 한 명의 먹물 루저 노아 바움백의 [오징어와 고래]의 부자(父子)들이 애니메이션 속으로 그대로 들어온 형국이다.

영화는 털 움직임이 한눈에 보이는 아날로그 인형극을 보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살아 움직이는 CG와 3D가 대세인 현재 손맛이 듬뿍 담겨진 스톱 모션은 웨스 앤더슨에게 어울리는 선택이다. 인형들의 질감도 아날로그지만, 일류 스타들이 총 출동한 녹음 과정도 아날로그 그대로였다고 한다. 스크린에서 움직이는 이들이 모두 털복숭이 인형들일 뿐이지, 실제 녹음 과정은 극영화 찍듯이 돌아갔다고. 공장 씬에서는 공장으로, 굴을 파는 장면에서는 메릴 스트립과 조지 클루니가 삽을 들고 굴을 파면서 음성을 녹음했다니 뭐 말 다했다. 녹음 마저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만들어진 좀처럼 화합하기 힘든 웨스 앤더슨표 가족애는 이렇게 완성됐다.

빌 머레이, 오웬 윌슨, 제이슨 슈워츠먼에 동생 에릭 앤더슨까지, 웨스 앤더슨의 패밀리들이 총출동한 가운데 좀처럼 한자리에서 보기 힘든 일류스타들이 이 아기자기한 애니메이션에 힘을 보탰다. 조지 클루니와 메릴 스트립, 월렘 대포 등 일류 스타들이 모두 목소리로 등장한 것. 여러 캐릭터들이 피식피식 웃음 짓게 하지만 누구보다 아들 애쉬가 눈에 밟힌다. 아버지 폭스에게 인정 받고 싶어서 못하는 운동에 집착하는 아이 애쉬는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또래(혹은 그 이하)에게 눈높이가 맞춰져 있다. 코믹북에 심취해 망토를 두르고 양말로 만든 복면을 쓰고 다니는 애쉬는 아마도 감독의 어린 시절을 투영한 캐릭터가 아닐까. 잘난 남들과 같지는 않지만 "남들과 다르다는 건 판타스틱한 일이야"라는 궁극의 대사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유효한 인생 주제다.

어린 시절 꽤나 독특하다는 얘기를 듣고 자랐을 법한 웨스 앤더슨의 첫번째 애니메이션은 우아한 키치와 사랑스러운 이야기, 블랙유머로 버무려진 최고의 성탄 선물이 될 것 같다. 심지어 폭스 가족들로 대변되는 이 털복숭이 인형들은 어른인 나마저 가지고 놀고 싶어진다.

Tip.
악당 빈이 그런 노래 따위 절대 부르지 말라고 무안 주는 조역 중의 조역 피티는 사실 영국 밴드 ‘펄프’의 보컬 자비스 코커가 맡았다. 실제 자비스 코커를 쏙 빼 닮은 인형에게 노래가 형편없다고 나무라는 조크는 ''심슨''스러운 유머를 빚어낸다.



양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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