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영향 고려하지 않는 개발은 실패”

[ 환경일보 ] / 기사승인 : 2025-07-01 17:30:00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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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국회의원회관 신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기후변화영향평가 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각계각층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이용우 tv




[국회=환경일보] 김인성 기자 = “사업계획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알리는 수준’에 머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기후위기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의무적 절차이자, 법적으로 작동하는 통제수단입니다.”



2025년 7월1일, 국회의원회관 신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기후변화영향평가 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의 첫 발제를 맡은 한민지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서두부터 한국의 현행 기후영향평가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이학영, 박정, 이용우 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기후솔루션이 주관한 자리로, 입법기관·학계·시민단체·법조계가 참여한 가운데 제도의 실질적 개선 방향이 활발히 논의됐다.



“이산화탄소만이 아니다···다양한 온실가스 반영 필요”



한민지 연구위원은 국내 기후영향평가제도가 현재 이산화탄소(CO₂) 중심으로만 작성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지구온난화지수(GWP)가 높은 다른 온실가스도 평가 항목에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위원은 “메탄(CH₄), 아산화질소(N₂O), HFCs와 같은 고위험 온실가스를 제외한 채 사업을 평가하는 건, 마치 재무제표에서 부채를 일부러 빠뜨리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평가 대상 온실가스를 국제 기준인 IPCC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확대하고, 정량적 기준과 평가모형을 제시하는 전담 기술 지침서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기후영향은 지역마다 다르다···지방정부도 평가 주체로”



이날 토론회에서는 중앙 정부 주도의 일률적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지방정부의 역할 확대와 지역 기후특성 반영 필요성도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한 연구위원은 “현재 기후영향평가는 대부분 중앙부처와 사업자가 주도하고, 지방정부는 의견 제시권조차 제한적”이라며, “지방 기후리스크와 주민 피해를 고려한 ‘지역 맞춤형 기후영향평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기후적응계획과 도시계획, 교통·에너지 인프라 정책 등과도 밀접히 연결되며, 실제 정책 설계 과정에서의 기후 중심 사고를 요구하는 부분이다.



“기후영향평가, 개발계획의 통과절차에서 벗어나야”



기후솔루션의 이근옥 변호사는 발제 후 이어진 패널토론에서 “현행 제도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보다 사업 허가를 위한 요식행위로 변질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를 들어 “연간 수천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산업시설조차 단순한 배출량 추산과 짧은 기술적 설명만으로 평가를 통과하는 실정”이라며, 탄소예산 기반의 의무 이행체계 도입을 촉구했다.





한국환경연구원(KEI) 한상운 선임연구위원은 기후영향평가가 ‘법적 책임을 지는 시스템’으로 설계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국제사례와의 비교: "법적 구속력 없이 실효성 없다"



이날 좌장을 맡은 한국환경연구원(KEI) 한상운 선임연구위원은 유럽연합(EU), 영국, 캐나다 등의 사례를 들어 기후영향평가가 ‘법적 책임을 지는 시스템’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EU는 ‘Fit for 55’ 패키지에 따라 사업평가 시 배출량 한도를 넘기면 사업 승인이 불가합니다. 한국은 단 한 번도 사업 중단이나 수정 명령이 내려진 사례가 없다”고 전했다.



한 위원은 “기후영향평가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평가 결과에 따라 법적 판단과 행정 조치가 뒤따를 수 있어야 한다”며, 평가와 이행의 연동구조가 반드시 법률화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입법조사처·환경부·시민사회, 한목소리로 “제도 전환 시점”



환경부 기후적응과 박정철 과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정부도 가이드라인 정비를 준비 중이며, 제도 개선을 위한 관계부처 협의체를 구성 중”이라고 밝혔다.



국회입법조사처 이동영 입법조사관은 “기후영향평가를 기존 환경영향평가 내부 항목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별도의 법률로 독립시켜야 한다”고 제안했으며, 특히 ‘기후위기 대응특별법’ 내 하위법령으로 제정 가능성도 함께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채혜진 법무 담당자는 “시민이 평가 과정에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구조 없이는 모든 절차가 ‘전문가 중심’의 회색 행정이 된다”며, 사전 고지·의견 수렴·정보공개를 포함한 평가 민주화 장치를 제안했다.



향후 과제: 별도 법제화·지방분권화·이행체계 3대 축



이날 토론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과제가 중점 과제로 지목됐다.




1. 기후영향평가의 별도 법제화

- 평가의 독립성, 적용대상, 법적 구속력을 보장하기 위한 독립 법률 제정 필요

2. 지방정부 중심 평가 체계 도입

- 지역 기후특성 반영, 지방 기후위험 분석 기반 확보, 권한 부여

3. 이행 점검 및 감시체계 정비

- 평가 결과와 사업 인허가, 예산 반영 간 연동 구조 마련

- 시민 참여와 정보공개 확대




“기후를 고려하지 않는 계획은 이미 실패한 것이다”



2025년 현재, 기후위기는 행정의 고려 사항이 아니라 정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오늘 국회 토론회는 그 전환점을 향한 시도이자, ‘개발’과 ‘기후’가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제도적 설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단초를 던져주었다.



기후영향평가는 보고서로 끝나는 게 아니라, 미래 위험을 줄이는 사회적 계약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그 역할이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될지, 입법과 행정의 다음 발걸음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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