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캔] 최초 작성일 : 2011-09-14 20:21:44  |  수정일 : 2011-09-14 20:25:56.250 기사원문보기
최동원....그는 전설이었다
【뉴스캔】한국 프로야구가 배출한 큰 별이 졌다.
14일 최동원 전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이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53세로 영면에 든 고인은 한국프로야구사에 역대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았었다.
경남고와 연세대를 거쳐 국가대표에서 에이스를 한 최동원은 경남고 시절에 17이닝 연속 노히트노런을 기록했으며 실업야구 롯데에 입단해서도 신인왕, 다승왕, 최우수 선수 등 3관왕의 업적과 대륙간컵 국제대회에서 MVP를 수상했었다.
구속 150Km를 넘는 강속구와 폭포처럼 떨어지는 낙차 큰 커브를 뿌려대던 최동원은 모두가 인정하는 당대 한국 최고의 투수였다.

◇ 최동원

최동원은 혼자서 마운드를 책임지다 시피 한 고독한 영웅이었다.
그는 경남중, 경남고를 거쳐 연세대 시절에도 팀을 책임지고 엄청난 투구 수를 기록했다.
특히 연세대 시절 한양대와의 결승에서 선발로 나와 15회 연장까지 던지고 다음 날 1시에 열린 재경기에 또 다시 등판하여 9이닝 완봉을 했었다.
뿐만 아니라 1979년 대륙간컵에서도 11경기중 7경기를 선발 등판 했었다.

프로야구 롯데에 입단한 다음해인 1984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기록한 4승은 앞으로도 절대 깨질 수 없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당시 막강한 선수층을 바탕으로 우승이 당연시 되던 삼성은 투수가 던질 수 있는 한계를 계산해 최동원이 나오는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경기를 이기면 우승할 수 있다는 계산을 했었다.
그러나 최동원은 ‘무쇠팔’이란 별명답게 무려 5경기에 등판하여 한국시리즈 전적 4-3으로 롯데를 그 해 한국시리즈 우승팀으로 올려놨다.

◇ 선동렬과 최동원 ⓒ 삼성 라이온즈

그리고 최동원과 함께 최고의 투수로 이름을 올리는 선동렬과의 맞대결도 야구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시합이다.
두 선수의 맞대결은 1승 1무 1패로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지금도 최동원과 선동렬 중 누가 더 대단한 투수인가에 대해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도 하다.

국가대표팀과 실업팀에서 무리하게 어깨를 혹사시킨 최동원은 1981년 실업 롯데팀에서 시즌 35경기 중 23경기를 선발 등판 했었다.
아무리 무쇠팔 최동원이라도 결국 어깨가 탈이나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대회에서는 거의 출전 하지 못하고 호주전과 이태리전에서 잠시 던졌을 뿐이고 선동렬이 에이스로 활약했었다.

이후 최동원은 1983년 최고의 전성기가 지난 상태에서 프로팀 롯데에 어깨 부상을 숨기고 입단했었다.
부상의 원인은 중, 고교를 지나 연세대와 국가대표, 실업 롯데에서 너무나 엄청난 투구수로 어깨를 혹사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동원은 입단 첫해에 무려 203이닝을 던지며 9승을 챙겼고 다음해엔 한국시리즈 4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롯데를 한국시리즈 우승팀으로 이끌었다.

두 선수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한국 최고의 투수다.
이전 인터뷰에서 최동원은 한국 최고의 투수를 선동렬이라고 했고, 선동렬은 최동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두 선수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최동원이 선동렬보다 5살 많은 선배로 두 선수의 전성기 시절이 다르고 각자의 색깔과 장점이 너무나 뛰어난 훌륭한 선수들이였기 때문이다.

◇ 투병중 최동원 ⓒ 연합 뉴스

600만 관중을 돌파하며 부흥기를 맞고 있는 한국 프로야구.
최근 한국 프로야구는 얼마 전 장효조를 잃고 이제 최동원 마저 잃었다.
두 선수가 한국프로 야구에 기여한 지대한 공적은 누구도 잊지 않을 것이다.
투타의 큰 별이었던 두 사람을 잃은 야구팬들에게는 우울한 요즘이다.

신철현 기자 tmdb97@yahoo.co.kr


- copyright ⓒ 뉴스캔,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기사제공 : 뉴스캔뉴스캔 기사 목록

[광고]
loading...
야구 기사 목록위로

인기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