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현대차그룹이 10조원 규모의 미국 제철소 건설 투자를 검토하고 있지만, 늘어나는 현대제철의 화석연료 의존도가 현대자동차의 글로벌 경쟁력을 위협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후솔루션과 국제기후단체 액션스픽스라우더(ASL)는 23일 보고서를 통해 현대제철이 재생에너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대규모 신규 화석연료 인프라에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현대제철의 행보는 ‘지속가능한 성장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미국에 제철소 투자를 검토한다는 것과 상충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2022년과 2023년 재생에너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글로벌 철강사 비교 분석(2022년 기준)에서 현대제철은 동국제강과 함께 세계 최하위를 기록했다. 반면 스웨덴 철강사 사브(SSAB)는 같은 기간 19%의 재생에너지 사용률을 달성하며, 철강 업계의 재생에너지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미국 제철소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철강을 생산할 것이라고 밝힌 현대제철은 국내에서는 대규모 신규 가스발전소에 투자하고 있다. 2025년 4월 착공 예정인 이 발전소는 2028년부터 전력망 전기 사용 대비 연간 41만216톤(tCO2eq)의 온실가스를 추가 배출할 것으로 보고서는 분석했다. 이는 가스발전소가 배출량을 8.8% 감축할 것이라는 현대제철의 주장과 상반된다.
ASL의 로라 켈리 이사는 미국 제철소 건설에 대해 “관세 장벽 우회를 넘어 현대제철을 비롯한 현대차그룹의 탄소중립 목표를 조기에 달성하기 위한 담대한 그린철강이 돼야 한다”며, “신규 투자가 탄소배출량 감소, 재생에너지 조달 등에 획기적으로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제철의 화석연료 의존 증가는 그린워싱 논란과 현대차그룹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앞서 현대제철은 2023 탄소중립 로드맵을 통해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 12% 감축, 2050년 탄소중립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두 기후단체에 따르면, 현대제철의 2030년 탄소배출 감축 목표(12%)는 유럽과 일본 경쟁사들의 목표(30~48%)에 크게 못 미치고 2030년 감축 목표와 2050년 넷제로 달성 사이의 격차를 메울 신뢰성 있는 계획도 없는 상태다.
보고서는 이러한 상황이 심각한 브랜드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대제철의 주요 고객사인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공급망 탈탄소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리스크는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와 같은 엄격한 기후 규제 시행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 실제로 노르데아은행과 단스케은행은 이미 ESG 성과 미흡을 이유로 현대제철의 국내 경쟁사인 포스코를 투자 대상에서 제외했다.
더 심각한 우려는 이 리스크가 현대자동차그룹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가 주로 현대제철에서 철강을 조달하고 있어, 현대제철의 더딘 친환경 전환은 그룹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특히 현대차는 2030년까지 공급망 탄소배출을 2019년 대비 10% 감축하는 목표만 제시했을 뿐, 구체적인 그린철강 조달 계획은 내놓지 않고 있다.
이명주 기후솔루션 선임 연구원은 “친환경 전기로 제철사라 자부하는 현대제철의 모호한 재생에너지 사용량과 2035년, 2040년의 목표치가 부재한 탄소중립 로드맵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이는 현대자동차의 글로벌 경쟁력만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그룹 차원의 큰 리스크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ASL 그린철강선임 김기남 변호사는 “배출량 감축 주장에서의 잘못된 데이터 사용은 국제 시장에서 현대제철의 친환경 브랜드 신뢰도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화석연료 사용을 늘리고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 목표에 대한 약속도 없는 상황에서 탄소중립이나 친환경 브랜드를 내세우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