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일 방송되는 KBS 1TV '한국인의 밥상'은 “땅의 기운을 품다” - 황토의 맛 편으로 꾸며진다.
살아 숨 쉬는 붉은 생명의 흙, 황토! 부드러웠다가 단단해지고, 물과 바람에 깎이며 우리의 삶을 지탱해 준 황토는 수많은 생명들을 품어 키우는 넉넉한 자연의 품이고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최고의 조력자다. 세월을 빚어 깊은 맛을 품은 황토, 그 속에 담긴 오랜 삶의 이야기를 만난다.
■ 통영 수도(水島) 황토 구들 놓는 날, 토수(土手)와 섬 사람들의 밥상
경상남도 통영의 작은 섬, 수도(水島). 물이 마르지 않는다 해서 이름 붙여진 수도는 주민이 20여 명이 전부인 작은 섬마을. 백 년 된 옛집에 새 구들을 놓는 날. 굴뚝에 연기가 오르자 조용한 섬이 모처럼 사람들로 북적인다. 전통 구들 장인 안진근(76) 명장과 이상호(70) 명장 등 평생 흙을 만지면서 살아온 토수(土手)들이 며칠째 황토와 씨름 중이다. 열과 연기가 지나는 고래길을 놓고 구들장을 얹고, 황토와 볏짚을 섞어 발로 밟아가며 알매흙을 다진다. 한번 뜨거워지면 쉽게 식지 않는 황토구들처럼 고집스럽게 전통을 지키는 안진근 명장. 아궁이에 불을 넣을 때면 통삼겹살을 황토로 감싸 아궁이불에 굽는다. 황토의 열과 기운으로 속까지 촉촉하게 익은 ‘황토통삼겹구이’는 토수들만이 맛볼 수 있는 별미 중에 별미!
싱싱한 꽃게와 감성돔을 들고 찾아온 빈한도(74) 이장과 조은숙(61) 부녀회장은 맛있는 음식들로 손님맞이에 나선다. 갓 잡아온 제철 꽃게는 그대로 찌기만 해도 맛있고, 쫄깃하고 담백한 감성돔회와 뽀얗게 국물이 우러나 보양식이 따로 없는 ‘감성돔맑은탕’, 말린 개조개살을 꼬치에 끼워 찌는 섬의 옛 추억이 담긴 ‘개조개찜’까지 잔칫날 부럽지 않은 ‘물의 섬’ 구들 놓는 날의 만찬을 차린다.
■ 무안, 황토가 고향이고 삶의 터전이다
전라남도 무안군은 해안을 따라 붉은 황토밭이 이어지는 황토의 고장. 땅도 바다도 황토가 주인이다. 황토 갯벌에 낙지가 들기 시작하면 황토밭에선 고구마를 수확하느라 바빠진다. 미네랄 등 좋은 성분을 품은 황토는 뿌리작물인 고구마를 키우는 데 최고란다. 유기농으로 20년째 고구마 농사를 지어온 강행원(52) 씨. 미생물로 흙을 살리고 비료 대신 바닷물을 뿌리는 해수농법을 고집한다. “땀 흘려 힘써 일하면 편안해진다”는 무안(務安)의 이름처럼 몸은 고생이지만 덕분에 건강하고 맛있는 황토고구마를 얻었다.
혼자 시작한 고구마 농사는 형님 부부와 장인·장모, 처가 식구들까지 힘을 보태고 있다. 고구마를 수확하며 장작불에 구우면 밤보다 더 맛있다는 군고구마와 낙지를 꼬치에 돌돌 말아 숯불에 구운 낙지호롱구이는 고향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겨있다.
포슬포슬하게 고구마를 찌면 고구마줄기를 데친 다음 양념에 버무려 김치를 담근다. 찐 고구마는 고구마줄기 김치를 얹어 먹어야 제맛. 집집마다 고구마를 저장하는 토굴이 있을 정도로 고구마 농사를 많이 짓던 시절 고구마를 캐면 만들어 먹던 게 ‘고구마단술’ 이다. 고구마를 쪄서 으깬 다음 누룩을 섞어 숙성시킨 단술은 한잔 두 잔 먹다 보면 일은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고. 고구마단술로 달콤한 추억을 마시고 고구마로 단맛을 더한 닭볶음탕까지, 황토에 뿌리를 내리고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고구마 농부들의 황토가 내어준 가을 밥상을 만난다.
■ 황토가 키우면 건강하고 맛있다 - 의성 황토메기
경상북도 의성 외정리. 산으로 둘러싸인 황토 양어장에서 메기가 분수 물살을 헤치며 몰려든다. 이곳을 일군 주인공은 김동수(76) 씨와 아들 김명섭(49) 씨다. 아버지가 일군 자리를 아들이 이어받아 9만 마리의 메기를 키우고 있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부자의 손길에 황토가 힘을 더한다. 황톳물 덕에 메기는 흙내가 덜하고 살은 쫄깃하다는데, “물맛이 다르니 고기 맛도 다르더라”던 아버지의 생각은 결국 틀리지 않았더랬다. 아버지의 꿈을 잇고 더 크게 키워낸 아들의 도전. 하지만 물가의 삶은 늘 고단하다. 어머니 박화숙(74) 씨는 가업을 잇는 아들이 대견하면서도 양어장을 지키느라 가족과 떨어져 사는 모습이 늘 안쓰럽기만 하다. 아들만 안쓰러우랴. 대구에서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며느리 심윤지(47) 씨를 떠올릴 때면 화숙 씨의 가슴 한편이 짠하게 저려온다. 첫 손주를 품에 안겨준 며느리에게 정성껏 끓여주었던 메기어탕은 지금도 가족의 밥상에 오르며 애틋한 추억을 되살린다.
한쪽에 그물을 치고 장대로 물을 두드리면, 9만 마리 메기가 출렁이며 몰려든다. 겨울을 앞두고 기름기와 단백질을 가득 채운 제철 메기는 얼큰한 어탕으로, 구수한 불고기로, 담백한 구이로 변신한다. 쇠비름나물과 곁들인 황토메기 덮밥은 새로운 별미로 밥상을 풍성하게 만든다. 세월을 견뎌온 아버지의 노하우와 새로운 길을 찾는 아들의 아이디어. 황토는 두 세대를 잇는 매개가 되어 오늘도 의성의 밥상을 든든히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