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데일리 조남준 편집국장] 국민은 자신이 사는 집이 ‘쓰레기 시멘트’로 지어졌는지 알 권리가 있다. 그러나 정작 국민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토교통부는 주택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건설업계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충북과 강원 등 시멘트 공장이 밀집한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수도권의 쓰레기 처리장이 되라는 말이냐”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시멘트 업계는 ‘자원 재활용 확대’를 명분으로 폐기물 사용을 늘려왔다. 하지만 그 결과는 공장 주변 주민들의 건강 피해와 환경오염 논란으로 이어졌고, 나아가 폐기물이 포함된 시멘트로 지어진 주택 거주자들의 안전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특히 투명성이 문제다. 시멘트 업체마다 폐기물 혼합 비율이 10% 이상 차이 나지만, 현행 '폐기물관리법'만으로는 주택 건축에 쓰인 시멘트의 실제 품질이나 혼합 비율을 확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국토부는 “정보 접근이 어렵다”는 이유로 주택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국토부는 또 “주택업자가 시멘트를 가공한 레미콘을 다수 업체로부터 납품받아 사용하기 때문에 정보 접근에 한계가 있다”며, 폐기물 사용 시멘트 역시 철근이나 단열재처럼 KS 기준 충족 제품만 사용하도록 관리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폐기물 사용 시멘트 정보공개는 이미 '폐기물관리법'으로 시행 중이라는 입장이다.
국토부 반대, 설득력 있나
그러나 현장 상황을 보면 국토부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미 건설 현장에서는 레미콘 원재료(시멘트·골재·혼화재)가 기준 미달일 경우 납품을 차단하고, 거래 문서와 품질 기록으로 관리가 가능하다. 철근·단열재처럼 KS 인증을 통한 관리 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국토부의 책임이다.
그럼에도 국토부의 이같은 입장은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업계 이해를 대변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기존 관리 체계에 폐기물 사용 시멘트 정보를 추가하는 것을 “행정부담”이라 기피하는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신축 아파트 붕괴’와 ‘순살 아파트’ 논란에서도 자재 관리 부실이 문제로 지적된 바 있다.
건축 자재는 구조적 안전뿐 아니라 거주자의 삶의 질을 좌우한다. 유해물질 방출 억제와 실내 공기질 개선이 요구되는 시대에 발암물질과 중금속이 포함된 폐기물 사용 시멘트가 기준 없이 유통된다는 사실은 심각하다. 실제 국내 시험법(KS L5221) 기준은 20mg/kg으로, 국제 기준 대비 매우 높다. 최근 조사에서도 6가 크롬이 최대 16.2mg/kg 검출됐다. 연구책임자는 “입주민이 평생 접촉하는 건축 자재인 만큼 유해물질 안전 기준을 단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환경부의 ‘쓰레기 떠넘기기’ 논란
문제는 국토부뿐만이 아니다. 환경부 역시 수도권 생활폐기물 직매립 금지를 명분으로 시멘트 공장을 처리 대안으로 활용하려 한다. 실제 전국 지자체에 시멘트 공장 입찰 안내를 보낸 사실은 주민 불안을 키웠다. 충북·강원 지역 60만 주민들은 “왜 우리가 수도권 쓰레기를 떠안아야 하느냐”고 반발한다.
더 큰 문제는 제도적 허점이다. 종량제 봉투가 중간 재활용업체를 거쳐 산업폐기물로 둔갑한 뒤 시멘트 공장으로 유입되고, 이렇게 ‘세탁된’ 폐기물에 대해 부담금 면제와 재활용률 인정까지 이뤄지는 구조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국민 안전, 후순위가 아니다
주택법 개정안은 과도한 규제가 아니다. 최소한 국민이 거주하는 주택에서 폐기물 사용 시멘트 정보를 공개하자는 취지로,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그럼에도 정부가 주택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것은 업계 입장에 치우친 것으로 국민의 안전을 후순위에 놓는 것과 다름없다.
국민은 발암물질과 중금속이 포함된 시멘트 아파트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환경과 건강은 산업 경쟁력보다 결코 후순위로 밀릴 수 없다.
그래서 강조한다. 국토부와 환경부는 이제라도 태도를 바꿔야 한다. 주택법 개정에 반대할 것이 아니라 국민 안전을 위한 기준을 강화하고, 시멘트 공장의 ‘재활용 지위’를 재검토해야 한다. 수도권 쓰레기를 충북·강원에 떠넘기는 정책은 환경 정의에도 반한다.
국민 안전과 환경권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정부가 업계 이해보다 국민 권리를 먼저 고려할 때, 비로소 신뢰 회복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