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방송되는 KBS 1TV ‘추적 60분’에서는 '사학 제국, 그들은 어떻게 왕이 되었나' 편으로 꾸며진다.
교비로 개인 채무를 갚고 펜션을 구입하는가 하면, 가족을 총장, 부총장, 교수 자리에 앉히고 지인을 채용하기 위해 교직원까지 동원한다. 학교 직원에게 사적인 심부름을 시키고, 심지어 마사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모두 사립대학들에서 벌어진 일이다. 우리나라 전체 대학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사립대학. 고등교육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일부 사학재단은 학교를 사유화한 채 ‘가문의 사업체’처럼 운영해 왔다. 그 결과 교비 횡령, 부실 운영, 학생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
'추적 60분'은 족벌 사학의 지배 구조가 어떻게 공공성을 훼손하고, 교육 현장을 망가뜨리고 있는지 집중 취재했다.
■ 학생을 고소한 교수
경기도 의정부시에 위치한 한 사립대학. 교수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을 고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발단은 온라인 대학 커뮤니티에 게시된 익명의 글이었다. 공연예술학과의 전공수업 수강생들이 작성한 글로, A교수의 강의 내용과 교수의 근태에 불만을 토로하는 내용이었다.
학생 자치회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실태조사를 실시한 뒤, 학교 측에 개선을 요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명예훼손’ 고소장이었다. 해당 학과의 선후배가 모인 SNS 단체 대화방에서 문제를 논의하며 A교수의 실명을 거론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피소 학생은 이미 경찰에 출두해 조사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을 대표해 학습권 보장을 위해 정당한 요구를 했을 뿐인데, 교수가 학생을 고소한다는 게 무섭고 충격적입니다.” - 해당 학과 학부생 인터뷰 중
■ 총장실 직원이 신임 교수로? 채용비리 의혹까지
같은 시기, A교수를 둘러싼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됐다. A교수가 총장과 가까운 사이라는 의혹이다. A교수는 교수 임용 전까지 같은 대학 총장실에서 비서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적 60분' 취재에 응한 일부 교수들은 A교수 채용 부정에 깊이 관여했음을 인정하며,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당초 해당 학과에 전임교수 충원 계획이 없었음에도 학교 측 요구로 채용이 추진됐으며, 임용 조건 또한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유리하게 변경됐다”고 주장했다. 또한 “학교 측의 사전 요구에 따라 A교수에게 높은 점수를 줬다”고도 털어놓았다. 시범 강의로 진행된 2차 심사 심사위원에게도 “A교수에게 고득점을 부여하라는 학교측 지시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최종 당락을 가르는 3차 심사에는 이례적으로 총장이 직접 참석했다. 결국 이 과정을 거쳐 임용된 A교수. 하지만 첫 학기부터 부실 강의 논란이 불거졌고, 결국 해당 교수는 학생을 고소하는 사태까지 이어졌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어떤 보복이 있을지 몰라서 두려웠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진실을 밝히는 이유는 학생들 때문입니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 ‘앞으로 세상을 이렇게 살아야 하겠구나’라고 생각하면 안 되잖아요.” - A교수 채용 과정에 참여한 심사위원들 인터뷰 중
■ ‘나의 남편’ 총장을 고발합니다
한 여성이 양심고백을 선언하며 카메라 앞에 섰다. 그녀는 다름 아닌 총장의 아내였다. 지난 2009년 두 사람의 결혼 소식은 현역 국회의원과 전직 아나운서의 만남이라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내가 직접 남편을 고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내막을 '추적 60분'이 취재했다.
그녀는 “고백에 따른 처벌을 감수하고서라도 총장이자 남편인 그의 부정행위를 알리겠다”며, 수년에 걸친 교비 횡령 정황을 털어놓았다. 총장은 지난 2012년 횡령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 받은 바 있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또다시 사적 유용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그녀는 지난 2016년까지 교내 비서실장으로 근무했다. 남편인 총장의 요구로 일을 그만두고 퇴직금까지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퇴직 후 근무하지 않은 기간에도 월급을 받아왔다고 밝혔다. 현재 그녀는 학내 봉사단의 부단장 직책을 맡고 있다. 업무는 간혹 있는 행사에 참석하는 것에 그쳤지만, 월급은 지속적으로 지급됐다. 총장이 수행비서를 사적으로 부려왔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비서를 관사로 불러 마사지를 지시하기까지 했다는 것.
“남편이 종교인이자 정치인으로서 대외적 이미지가 견고하여 그의 본모습을 외부에 알리기 쉽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그가 학생과 학부모를 속이는 것을 멈추길 바랍니다.” - 강OO 총장의 아내 이하나 씨 인터뷰 中
■ 사립학교의 고질병, 뿌리 깊은 족벌 운영
사립대학의 족벌 경영 문제는 이 대학에서만 일어나고 있는게 아니었다. 파주시에 위치한 한 사립대학의 교수는 대학의 비리를 폭로한 이후 파면과 복직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이 대학의 설립자는 교비 횡령 등의 혐의로 두 번의 유죄를 판결받았다. 설립자 아내 또한 같은 시기 업무상 배임 혐의로 집행유예가 확정 되었다. 설립자 부부의 학교 운영 논란이 불거지자 이사회에서는 교육부의 임시 이사 파견 가능성을 의식했다. 아내를 총장으로 예정하는 한편, 두 아들도 부총장으로 세우기로 했다. 그는 현재 부총장이자,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어머니 대신 총장 대리를 겸하고 있다. 사실상 외부의 견제 장치 하나 없이 가족들이 돌아가며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경상북도 경주시의 한 사립대학 사정도 비슷했다. 지난 2008년, 당시 총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 되었다. 총장직을 이은 사람은 그의 아내였다. 이후 교육부는 감사를 통해 파행적 운영을 적발하고 관선 이사를 파견했다. 그러나 구재단이 교육부를 상대로 낸 임시이사 파견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관선 이사가 철수했다. 악화된 재정 상태로 교수들은 70개월 가까이 임금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담당 교수가 세 차례나 바뀌는 등 혼란 속에 놓여 있다.
전문가들은 견고한 족벌 체제가 학교 법인의 투명한 운영을 가로막고 있다고 진단한다. 지난 2005년 이사진 임명 조건을 엄격히 제한하려는 사립학교법 개정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사립학교의 자율성과 교육의 공공성을 둘러싼 정치권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실질적인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학교를 장악하는 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법인 이사회의 과반 이상을 측근으로 채우는 거예요. 인사권, 재정권 등 핵심적인 의사결정권을 가지는 이사회를 지배하면
학교를 뜻대로 경영할 수 있게 됩니다.” - 학교 관계자 인터뷰 중
“판례로 말하자면, 사립학교의 법적 위치는 애매합니다. 그렇다보니 정부지원을 받을 때는 공적 성격을 제재를 받을 때는 사적 성격을 강조하는 겁니다. 명확한 법을 만들어서 대학의 체계와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 유원준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장 인터뷰 중
교육 현장을 군림하는 사학의 왕들과, 족벌 경영의 민낯을 추적하는 '추적 60분' 1427회 「사학 제국, 그들은 어떻게 왕이 되었나」 편은 이날 밤 10시, KBS 1TV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