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천=국제뉴스) 김정기 기자 = 지난해 기록적인 풍년을 구가했던 서천김이 올해 들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2025~2026년산 김 채묘가 10월 초 시작되었지만, 바닷물 수온이 높게 유지되며 포자 착상이 고르지 못하다는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 양식어가에서는 재분망에 나서는 사례까지 나타나면서, 풍작의 기대보다는 작황 부진에 대한 우려가 지역 어촌 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서천김은 단순한 지역 특산물이 아니다. 장항·마서·비인·서면 등 4개 지역 3,331헥타르에 이르는 양식장은 전국 김 생산면적의 5.2%를 차지하며, 연간 약 1,200만 속의 마른 김을 생산해 수백억 원대의 소득을 올리는 충남 서남해안의 핵심 산업이다. 지난해만 해도 서천군수협과 서천서부수협이 총 4만7,685톤을 수확하며 생산계획의 114%를 초과 달성했다. 풍부한 영양염과 안정된 수온, 황백화 없는 해황 조건이 만들어낸 ‘황금 작황’이었다.
그러나 올해 바다는 같은 미소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가을 들어 이어진 잦은 비로 일조일수가 부족했고 평년보다 높은 수온이 김 포자 착상에 악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해수면 온도 상승은 단순한 기후의 변덕이 아니라, 해양 생태계 전반을 흔드는 구조적 변화의 신호로 읽혀야 한다. 수온이 높아지면 포자낭의 성숙이 늦어지고, 부착률이 떨어지며, 초기 채묘 성공률이 급감한다. 이로 인해 김발이 고르게 자라지 못하고, 전체 양식 시기에도 차질이 빚어진다.
“높은 수온이 유지되며 일찍 채묘에 나선 어가들의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분석은 결코 가벼이 들을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단순히 ‘올해 작황이 나쁠 수 있다’는 단기 전망을 넘어, 기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기존 양식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는 징후로 봐야 한다.
서천김 양식뿐만 아니라 대부분 농수산업이 이상기후로 안정성이 흔들리고 있다. 바다의 온도, 영양염 농도, 강수 패턴이 달라지는 현실 속에서, 과거의 방식은 더 이상 풍년을 보장할 수 없다. 기후 위기 시대의 김 양식은 ‘운’이 아니라 ‘과학’과 ‘관리’로 전환되어야 할 때다.
이를 위해 서천군이 추진 중인 채묘 환경 모니터링, 패각사상체의 포자낭 형성과 성숙도 조사, 종자 생산 폐기물의 회수 및 처리 지도는 시의적절한 대응이지만 이러한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는 보다 근본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책이 필요하다.
특히 수온 변화에 강한 품종 개발과 보급이 시급하다. 일본, 중국 등 주요 김 생산국들은 이미 고수온 적응 품종과 질병 저항성 김 종자의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서천 역시 해양수산과학원, 충남도 수산자원연구소 등과 협력해 지역 맞춤형 품종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
아울러 양식 어가의 스마트화와 데이터 기반 경영 전환이 필요하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려면 실시간으로 수온, 염도, 영양염을 모니터링하고 이에 맞게 분망 시기와 간격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한 경험치에 의존하던 전통 어업 방식에서 벗어나, ICT 기반의 해양 정보 시스템을 통한 예측형 양식으로 발전해야 한다.
여기에 김양식 어가에 대한 정책적 지원 강화가 필수적이다. 김은 단가 변동이 큰 대표적 수출 품목으로 작황 부진이 이어질 경우, 어가의 손실은 즉각적인 생계 위기로 이어진다. 따라서 서천군과 정부는 올해 작황 불안에 대비한 긴급 경영안정 자금, 수온 피해 대응 보험 지원, 폐망·재분망 비용 보조 등 현실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지역 공동체의 연대가 필요하다. 김 산업은 어민 개인의 노동에 의존하는 산업이지만 수협과 군청, 연구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서천김 지속가능성 협의체’를 구성해 해양환경 변화에 대한 공동 연구와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야 서천김의 경쟁력이 공고해질 수 있는 것이다.
서천김은 오랜 세월 지역민의 삶과 함께 자라온 서천의 상징이다. 지난해의 풍년은 자랑스러운 결과였지만, 그 기억이 결코 자만으로 변해서는 안 된다. 바다가 보내는 미세한 경고음에 우리가 지금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풍년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지금 서천에게 필요한 것은 ‘풍년의 재현’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서천김 산업의 재설계’다.
어민의 현장 경험, 행정의 지원, 과학의 힘이 결합할 때만이 서천김은 변화하는 바다 속에서도 여전히 대한민국 최고의 김으로서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음을 당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