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배한 히다 오리에와 임정숙은 천적을 잡을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히다는 마지막 5세트에서 4:2로 앞서 나갔고, 임정숙은 8:5로 매치포인트에 먼저 도달했다. 누가 봐도 승부의 추는 기운 듯했다. 그들은 기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챔피언을 넘어설 준비가 되어 있었고, 실제로 거의 해냈다.
하지만 '클래스'는 바로 그 벼랑 끝에서 발현됐다. 김가영은 히다에게 한 뼘의 희망이 보이던 순간, 단 한 번의 이닝에 뱅크샷을 포함한 하이런 7점을 몰아치며 경기에 마침표를 찍었다. 추격의 빌미조차 주지 않는, 승리를 포획해버리는 '승부사의 기질'이었다.
스롱 피아비는 더욱 경이로웠다. 단 1점만 내주면 패배하는 상황, 상대가 넘겨준 까다로운 투뱅크 샷과 이어지는 예각 3뱅크 샷을 연달아 꽂아 넣었다. 심장이 얼어붙는 압박감 속에서 가장 어려운 길을 택해 기어코 성공시키는 '강철 멘탈'과 '기술적 완성도'의 결합이었다.
결국 이날의 승부는 '관록'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준 최고의 교본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경험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패배의 공포가 목을 조여오는 순간, 오히려 더 차갑게 빛나는 정신력. 단 한 번의 기회를 승리로 직결시키는 결정력. 가장 어려운 순간에 자신의 기술을 100% 신뢰하는 담대함. 이 모든 것이 합쳐진 결과였다.


히다 오리에와 임정숙은 최고의 경기를 펼쳤고, 승리할 자격이 충분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기는 법'을 아는 챔피언의 마지막 한 수를 넘지 못했다. 두 여왕은 이날, 또 한 번의 승리 이상의 가치를 증명했다. 바로 자신들이 왜 그 자리에 있는가에 대한 가장 완벽한 대답이었다.
◆ 'SY 베리테옴므 PBA-LPBA 챔피언십'의 여자부(LPBA) 8강 제1~2경기 결과
김가영-히다 오리에(11:7, 10:11, 11:3, 3:11, 9:4 김가영 3:2 승)
임정숙-스롱 피아비(11:10, 9:11, 0:11, 11:0, 9:8 스롱 3:2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