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투데이] 최초 작성일 : 2013-03-07 09:00:00  |  수정일 : 2013-03-07 09:23:19.690 기사원문보기
‘가족의 나라’ 양영희 감독 “풍화되는 역사, 망각할 수 없어”(인터뷰)

[경제투데이 장병호 기자] 지난 2006년 국내에도 개봉한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은 조금 특별한 가족의 이야기였다. 고향은 제주도지만 북한을 조국으로 선택해 고향을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된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사상에 따라 ‘지상 낙원’이라는 북한으로 보내진 세 명의 오빠, 이들의 기구한 이야기를 가족의 막내인 양영희 감독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카메라에 담은 작품이었다. 양영희 감독은 이 작품으로 제22회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하며 주목 받았으나, 북한에서의 촬영을 문제로 더 이상 오빠들을 만나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3년 뒤 조카 선화에 초점을 맞춰 ‘디어 평양’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굿바이, 평양’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선보였던 양영희 감독은 지난해 마침내 첫 극영화 ‘가족의 나라’(수입·배급 미로비젼)를 완성시켰다. 지난해 제6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국제예술영화관연맹상을 수상한 영화는 일본 영화 전문지 키네마준포 선정 2012년 최고의 영화 1위에 오르며 명실상부한 지난해 최고의 일본영화로 인정받았다.


국내 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양영희 감독은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을 만드는 동안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극영화에 대한 기획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카메라 앞에서는 말하지 않던 가족들의 이야기, 양영희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입으로 카메라를 집어넣어 배 안에 들이대서 찍어낸 심정들”을 극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을 작업하며 15년을 보낸 양영희 감독은 과거 병 치료를 위해 북한의 허가를 받아 일본에 왔던 오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가족의 나라’의 시나리오를 썼다.

처음부터 제작이 수월하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민감한 정치적 이슈를 담았다는 점, 그리고 이야기가 너무 심플하다는 이유 등으로 제작사들은 영화화를 거절하기 일쑤였다. 대신 배우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1차 후보로 생각한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보냈지만 대답은 모두 오케이였다. 국내에는 ‘원더풀 라이프’ ‘핑퐁’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미남 배우 이우라 아라타와 주로 조연으로 일본영화에서 종횡무진 활약 중인 안도 사쿠라 등이 캐스팅됐고, ‘똥파리’로 일본에도 잘 알려진 양익준이 가세하면서 영화 제작은 순조로이 진행됐다. 저예산에 2주 동안의 촬영은 “다시 하라면 못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배우, 스태프들의 협조 속에서 첫 극영화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영화는 1960년대 북한과 일본 정부가 함께 추진한 북송사업으로 북한에 보내진 오빠 성호(이우라 아라타)를 25년 만에 다시 만난 리애(안도 사쿠라)의 며칠 동안의 이야기를 그린다. 자전적인 이야기인 만큼 다큐멘터리 속에서 만났던 양영희 감독의 가족이 스크린에 고스란히 재현된 느낌이다. 25년이라는 세월을 북한이라는 폐쇄적인 사회에서 보내온 성호는 북한을 ‘지상 낙원’이라고 믿고 있던 가족들의 마음에 작은 균열을 낸다. 그 균열 속에서 “북한이 싫다”고 투정을 부리던 리애가 자신의 삶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양영희 감독은 롱테이크와 핸드 헬드 등의 다큐멘터리적인 연출로 담았다.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는 제가 카메라맨이었잖아요. 그때는 1시간짜리 테이프가 끝날 때까지 계속 촬영을 했어요. 그런 스타일 밖에 몰라서 이번 영화도 그렇게 촬영했죠. 배우들에게도 캐릭터의 마음의 움직임만 자세히 설명해주고 카메라가 알아서 따라갈 테니까 자연스럽게 연기하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표정으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들이 필요했죠.”

영화에서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성호는 리애에게 단 한 번 속마음을 드러낸다. 많은 것을 생각하고 해보라는 성호의 대사는 실제 양영희 감독의 오빠들이 하던 말이기도 하다. “성호는 제 오빠들을 믹스(mix)한 캐릭터에요. 실제 일본에 온 건 막내 오빠였지만 제게 재밌게 살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라는 말을 많이 한 건 둘째 오빠였죠.” 오빠를 마냥 기다리던 리애가 며칠 뒤 가방을 끌고 어디론가 가는 모습은 ‘가족의 나라’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장면이다. “평양에 갈 때 만난 오빠들과의 시간은 제게 자극이고 촉매였어요. 불만만 말하거나 변명만 하지 말고 계속 도전하고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을 리애와 성호의 관계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동안 양영희 감독은 자신의 영화 속에서 지극히 사적인 가족의 이야기를 해왔다.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감독의 이야기가 역사적 상황과 맞물려 있는 특수한 이야기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양영희 감독은 “정치적 이유로 가족이 헤어지는 경우는 한반도에도 있지 않냐”며 자신의 가족 이야기가 특별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고’와 ‘박치기’처럼 재일교포의 이야기를 다룬 일본영화들에 대해서는 “대중영화로서 재일교포 문제를 알리는 작품이라 고마웠다”면서도 과거의 이슈를 다룬 이들 영화와 달리 현재진행형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60년대 북송사업으로 9만4000여 명의 사람들이 가족 곁을 떠나 북한으로 갔어요. 그리고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있죠.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을 포함하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겠어요. 하지만 북한에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이야기를 선뜻 꺼내지 않아요.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이죠. 그들의 이야기가 풍화돼 사라지는 게 싫어요. 유대인이 나치들에게 학살당하는 내용의 영화들이 역사를 설명하는 자막이 필요 없는 이유는 비슷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기 때문이에요. 그만큼 우리들의 이야기도 계속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디어 평양’으로 인해 북한 정부로부터 입국 금지를 당한 양영희 감독은 편지를 통해 평양에 있는 오빠, 조카들과 소식을 주고받고 있다. 이에 대해 양영희 감독은 “가족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가족이 멀어지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오빠들이 자신들이 위험할 수 있음에도 영화를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며 그 말이 큰 힘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오빠, 조카들과 함께 자신의 영화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랐다. “북한에 입국하려면 사죄문을 쓰라고 하는데 사죄문 쓴 고모라고 어떻게 조카를 만나겠어요. 영화를 만든 동생이자 고모로 만나고 싶죠(웃음).”

양영희 감독은 ‘가족의 나라’가 북송사업이라는 망각되는 역사를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영화가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의식이나 마음에 작은 돌 정도는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관에 가는 재미는 자신도 상상 못한 삶이 있음을 공유하는 거잖아요.”

일본에서도 오히려 북송사업에 대한 지식이 없는 관객들이 영화를 더 잘 봐줬다며 보편적인 가족 영화로 봐달라는 주문도 빼놓지 않았다. 다음 작품은 자신의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오빠들이 만경봉호를 타고 북한으로 떠나던 순간을 스크린에 재현하고 싶다. “한 평생 마실 술도 다 마시고 울 것도 다 울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른 것 같아요. 이제는 영화 생각만 하고 싶어요. 영화는 제 유언이자 아빠와 오빠에게 드리는 작품이기도 하니까요.”


장병호 기자 solanin@
사진 / 김유근 기자 kim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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