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HN스포츠 박다운 인턴기자) 발표 직후부터 지금까지 논란을 빚어온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이 87억원에 달하는 값에 낙찰됐다.
20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규모의 경매회사 '소더비'는 카텔란의 '코미디언'이 620만 달러(한화 약 86억 7천만원)에 낙찰됐다고 밝혔다.
작품은 덕트 테이프(강력 접착 테이프)를 사용해 바나나를 벽에 붙여놓은 것이 전부로, 단순해 보이는 이 작품이 86억원을 훌쩍 넘겨 세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카텔란의 '코미디언'은 손을 쓸 수 있는 누구든 한 치의 노력조차 필요 없이 10초 내에 완성 가능한 작품이다. "장인정신을 가진 예술가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완성해낸 작품"이라는, 통상적인 예술품의 정의를 완전히 거스르는 작품이다.
이미 이 작품은 2019년 아트페어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에서 12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1억 4천만원)에 거래돼 큰 화젯거리가 된 바 있다. 각종 소셜 미디어에서 패러디 밈과 게시물이 쏟아졌음은 물론 이 작품을 활용해 버거킹에서 자사를 홍보하는 광고를 제작했을 정도였다. 심지어 위 아트페어에서 행위 예술가 데이비드 다투나가 전시돼 있는 '코미디언'을 떼어내 먹어버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작품의 유명세는 일파만파 커졌다.
미술계를 벗어나 일반 대중들 또한 '코미디언'을 익히 알고 있다. 작년 한국 최대 사립미술관인 삼성미술관 리움에서도 카텔란의 개인전 'WE'가 열렸고, 상술한 다투나의 퍼포먼스를 전시장에서 그대로 따라한 서울대 미학과 재학생 또한 각종 언론사의 보도와 소셜 미디어에서의 많은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작품을 두고 "나도 현대미술이나 해 볼까", "이건 예술이 아니다" 등, 누리꾼들의 냉소적인 반응들이 주를 이뤘다. "작가의 명성에 의해 모든 것이 설명되는 예술"이라며, 예술계 자체를 비관하는 주장도 있었다.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보다 작품을 이루는 '아이디어'가 더 중요한 개념미술 작품이지만, 바나나와 테이프 한 조각에 수십 억이 오가는 예술계 자체가 '투기의 장'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한편, 소더비 경매 직후 보도된 미국 미술전문 매체 아트넷 뉴스 기사에서는 "소더비의 전문가가 '코미디언'을 두고 "21세기의 그 어떤 작품도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처럼 스캔들을 일으키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동시대 미술의 표상을 갈아엎었던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코미디언'이 불러온 전세계적인 관심과 폭발하는 논쟁들은 대중의 관심을 크게 받지 못하는 미술계에서 전례 없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작품 제작에 있어서 '공'을 들여야 한다는 일반적인 생각에서 벗어난 사례는 미술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예컨대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일상적인 용도로 쓰이는 기성품을 미술관이라는 낯선 장소에 배치해 작가의 '선택'으로 미술품이 된 사물이다. 이는 기존의 "붓과 물감으로, 수공적인 작업에 의해 미술품을 창조한다"는 기존의 예술가에 대한 통념을 거부한 것이다. 한정돼있던 예술가의 주체성을 극대화한 뒤샹의 발상은 미술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꿔놓았으며, 그로부터 지금 논란의 중심인 '코미디언'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코미디언'이 가져온 관심과는 별개로, 예술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이가 많다. 일례로 작년 5월 15일 한겨례의 보도에서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최종철 교수는 "뒤샹의 변기는 미술관에 대한 공격을 통해 예술과 예술제도를 혁신하기 위해서지, 카텔란처럼 미술관과 결탁하고 그 제도적 수혜 속에서 자신의 명성과 작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말했다. '코미디언'은 미술계를 대중의 관심까지 끌어올린 정도에서만 큰 가치를 지니는 것이지, 그 자체로는 대단한 예술적 가치를 갖는다기보단 자신의 명성과 제도의 권위에 편승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과연 620만 달러의 가치를 갖는 예술작품인지, '코미디언'을 향한 논쟁들은 이번 경매를 계기로 다시 뜨거워질 전망이다.
사진=버거킹, 소더비 공식 홈페이지, 테이트 미술관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