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문화체육관광부 전재수 위원장이 9월 24일 대한축구협회(KFA) 등에 관한 현안 질의를 마치며 한 말이다.
KFA 정몽규 회장, 이임생 기술총괄이사, 한국 축구 대표팀 홍명보 감독 등은 24일 국회 문체위 현안 질의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전 위원장의 말처럼 여·야 의원들은 ‘홍 감독 선임 과정이 불공정하게 진행된 게 아니냐’며 한목소리로 질타했다.
이날 현안 질의는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8시가 넘어서야 끝을 맺었다.
전 위원장의 마무리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증인으로 나온 이들의 각성이 변화의 조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당장 바뀌는 건 없다.
홍 감독은 이날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이 공정했느냐’를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전력강화위원회에서 나를 1순위로 올려놨기 때문에 감독직을 수락한 것”이라며 “내가 만약 2순위나 3순위였다면 감독직을 수락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이 이사로부터 내가 1순위라는 걸 들었기 때문에 감독직을 수락했다. 나는 대표팀 감독을 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이) 불공정하거나 특혜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홍 감독은 이날 현안 질의 후반부에 11차 전력강회위원회 회의의 행정 착오를 인정했지만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홍 감독은 “그동안 회의록을 보진 못했는데 여기서 회의록을 듣고 보게 됐다. 개인적으론 10차 회의까진 문제가 없었다고 본다. 다만 11차 회의에선 행정적인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전력강화위원장을 교체하면서 임명장 수여와 같은 행정적인 절차가 없었다는 걸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10차 회의까진 전력강회위원회의 역할엔 문제가 없었다고 본다”고 다시 한 번 이야기했다.
홍 감독이 자신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결정적인 회의였던 11차 전력강화위원회 회의의 행정 착오를 인정하자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됐다는 거듭된 지적이 있었다.
의원들은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가 확인될 경우 홍 감독의 사퇴 의사를 직접적으로 묻기도 했다.
홍 감독은 이에 대해 “이 문제를 가지고 감독직을 사임할 생각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어 “나도 성적이 안 좋으면 언젠가는 경질될 것이다. 남은 기간 대표팀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정 회장 역시 ‘사퇴’의 뜻은 없었다.
정 회장은 4선 연임에 관해 “거취 문제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대한민국 축구 발전을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고 심사숙고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내 미래에 대한 결정은 역사가 평가해 줄 것”이라고 했다.
문체위 위원들의 정 회장을 향한 지적과 사퇴 의사를 묻는 거듭된 질문엔 “말씀 잘 새겨듣고 고민해 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바뀔 거란 기대는 가지고 있지 않다”던 박지성의 한마디, 국회의원이 말한다고 바뀌는 것 역시 없다
박지성은 차범근, 손흥민과 한국 역대 최고 선수를 다투는 전설 중의 전설이다.
박지성은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주역이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선 한국의 원정 첫 승리,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선 원정 첫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박지성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2000년대 후반 세계 최고의 팀으로 꼽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주전급 선수로 활약했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한국의 16강 진출에 앞장섰던 김정우는 박지성에 관해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박)지성이 형은 말이 많지 않았다. 행동으로 보여줬다. 내가 공을 잡으면 눈앞에 지성이 형이 보였다. 지성이 형은 상대 진영을 향해 가장 먼저 뛰는 선수였다. 수비 시에도 그랬다. 상대 공격수에게 뚫렸을 땐 지성이 형이 내 뒤에 있었다. 지성이 형이 죽자 살자 뛰는 데 우리가 어떻게 설렁설렁하나. 지성이 형은 헌신으로 팀원들의 사기와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진짜 리더였다.”
박지성은 은퇴 후 행정가의 길을 걷고 있다. 행정가 박지성 역시 말이 많은 편은 아니다. 꼭 해야할 말이 아니면 신중을 기한다.
그런 박지성이 입을 열었다. 울산 HD FC를 맡고 있던 홍명보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급작스럽게 선임된 직후였다.
박지성은 당시 “첫 번째로 드는 감정은 슬픔”이라며 “‘우리가 이것밖에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크다. 한국 축구가 슬픈 상황을 맞이했다. 마음이 굉장히 아프다. 가장 슬픈 건 뭐하나 확실한 답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여러 축구인이 박지성의 말 중 가장 안타까워했던 건 이 발언이었다.
박지성은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바뀔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선배로서 후배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실력을 뽐낼 수 있게 해줬어야 하는데 정말 미안하다.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좋은 영향력을 보여줬다면 이 정도까진 안 되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박지성의 말처럼 바뀐 건 없다. 한쪽에선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의 절차적 문제를 지적하지만, 정 회장과 홍 감독을 비롯한 축구인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팬들이 광주 FC 이정효 감독에게 열광하는 이유
2024년을 살아가는 이들은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갈망한다.
축구계라고 다르지 않다. K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지도자를 꼽으라면 광주 FC 이정효 감독이 첫손에 꼽힌다.
이 감독은 “나 같은 사람에게 패자부활전은 없다”고 말한다. 2022시즌 K리그2로 강등됐던 광주 지휘봉을 잡았을 때부터 입버릇처럼 해온 말이다.
이 감독이 프로팀 지휘봉을 잡기까진 10년 이상이 걸렸다. 이 감독은 2011년 아주대학교 축구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전남 드래곤즈, 광주, 성남 FC, 제주 유나이티드 등에서 코치 생활을 이어갔다.
지도자 자격증이 없는 상태에서 국가대표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1년도 지나지 않아 월드컵을 경험하는 특혜는 이 감독의 삶엔 존재하지 않았다. 월드컵에 이어 아시안컵, 올림픽 등을 성적과 관계 없이 두루 경험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연령별 대표팀 감독으로 첫 지휘봉을 잡아 성적과 관계 없이 4년을 보장받고, 올림픽에 도전한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이 감독은 지금도 선진 축구 철학 확립을 위해 밤낮없이 지낸다. ‘카페에서 전술 공부 중인 이 감독을 봤다’는 팬이 한둘 아니다.
이 감독은 선수들과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바라며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감독에게 여전히 내일은 없다. 이 감독은 하루하루 모든 걸 쏟아내는 지도자다.
K리그의 수많은 팬이 이 감독만큼은 노력에 걸맞은 정의로운 결과를 바란다.
선수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팬과 KFA의 간극, 당사자 간 풀어야 할 문제다
9월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 질의로 축구계의 변화는 없을 것이다. 정몽규 회장이 10월 22일 국정감사에 나선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팬들의 분노는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만으로 나오는 게 아니다.
2023년 3월 28일 한국과 우루과이의 친선경기를 앞두고 일어난 승부조작범을 포함한 징계 중인 축구인 100명 기습 사면, 독일, 미국 등에서 숱한 문제를 일으켰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선임과 실패,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이후 40년 만의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 등의 문제가 쌓이고 쌓였다. 이것이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며 폭발한 것이다.
9월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팔레스타인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1차전은 대단히 낯설었다.
팔레스타인전은 홍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이후 첫 경기였다. 홍 감독에겐 2014 브라질 월드컵 이후 국가대표팀 감독 복귀전이기도 했다.
팬들은 그런 홍 감독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정 회장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팬들은 미리 준비해 온 걸개와 함께 ‘정몽규 나가’, ‘홍명보 나가’를 외쳤다. 전광판에 홍 감독의 얼굴이 잡히면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다. 국가대표팀 감독 데뷔전에서 지도자를 향한 야유가 나온 건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세계로 나가도 사례를 찾기 어렵다.
국가대표팀 간판 수비수 김민재와 팬들의 갈등이 불거졌다. 경기 후였다. 김민재가 관중석으로 다가가 팬들을 향해 양손을 들어 올리며 ‘자제해달라’는 느낌의 동작을 취했다.
김민재는 이날 경기 후 “심각하게 생각하시는 듯한데 그건 아니”라며 “선수들을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어 “우리가 못하길 바라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서 말씀드린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팔레스타인전을 0-0으로 비긴 뒤 같은 달 10일 오만 원정에선 3-1로 이겼다. 3차 예선 첫 승리였다.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팬과 KFA의 갈등 사이에서 목소리를 내기가 매우 어렵다.
9월 A매치 2연전을 모두 소화했던 이강인의 말처럼 선수들은 홍 감독을 믿고 따라야 한다.
다만 KFA를 향한 팬들의 분노를 선수들이 앞장서 가라앉힐 필요는 없다.
9월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팔레스타인전이 매진되진 않았지만 5만 9천576명이란 적지 않은 관중이 함께했다. 그들이 정 회장과 홍 감독을 향해선 분노를 표출하면서도 시간과 비용을 들여 경기장을 찾은 이유는 명확했다. 선수들이다.
팔레스타인전을 찾았던 팬 가운데 한국 선수들에게 야유한 이는 없었다.
팬과 KFA의 견해차는 매우 크다.
팬들이 분노하는 지점을 KFA는 이해하지 못한다. 현재 팬들의 분노는 정 회장, 홍 감독이 사퇴해야 가라앉는다.
반면 2026 북중미 월드컵 3차 예선에서 조금씩 나아지는 경기력을 보이면 여론은 돌아설 것이란 게 KFA를 중심으로 뭉친 축구인들의 생각이다.
선수들도 기사와 유튜브를 챙겨본다. 24일 국회에서 있었던 일을 모를 리 없다.
아무것도 해결되지도 해소되지도 않았다.
유럽 빅리그 빅클럽에서 뛰는 선수들이 호흡을 맞추는 역대 최고의 대표팀이다. 그들의 수장이라면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존중을 강요하는 리더는 20세기에나 존재했다.
[이근승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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