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프레스센터=환경일보] 탄소중립의 10년, 숫자는 쌓였지만 시장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배출권거래제가 온실가스 감축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았지만, 낮은 가격과 비탄력적 구조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제4차 계획 시행을 앞둔 지금, 전문가들은 “이제는 감축의 속도보다 시장의 신뢰를 복원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환경한림원(회장 허탁)이 주최한 제26차 환경정책심포지엄이 지난 28일 한국프레스센터 프레스클럽에서 열렸다.
이번 심포지엄은 ‘탄소중립, 과연 순항인가? : 제4차 배출권거래제의 실현과 도전’을 주제로, 제4차 배출권거래제 시행을 앞두고 제도의 실효성과 산업계 대응 전략, 정책 개선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배출권거래제의 ‘정상화’를 향한 정책·산업·시장 간 균형점을 모색하는 자리가 됐다.

허탁 한국환경한림원 회장은 개회사에서 “우리나라 배출권거래제는 제도 시행 10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실효성과 신뢰라는 두 과제를 안고 있다”며 “시장 기능을 제대로 작동시켜야만 기업이 자발적으로 감축 유인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허 회장은 “감축 의무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탄소중립이 완성되지 않는다”며 “배출권 총량, 가격, 산업 경쟁력 간 균형을 유지하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이번 심포지엄이 제4차 계획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시장 안정화 방안을 구체화하는 실질적 논의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4차 계획의 핵심, 총량 감축의 ‘구조적 전환’

권동혁 BNZ 파트너스 부대표는 ‘제4차 배출권거래제의 주요 내용과 기업 영향’을 주제로, 제도의 핵심 변화를 집중 분석했다.
그는 제4차 계획이 발전 부문과 비발전 부문을 구분하고 감축 목표를 매년 일정 비율로 줄이는 선형 감축경로를 채택해 구조적 전환을 시도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 방식은 예측 가능성은 높이지만 산업계의 실질적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재 국내 배출권 가격이 톤당 1만원대로 유럽 배출권거래제(ETS) 대비 현저히 낮아, 감축 유인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시장 신호 기능 역시 크게 저하돼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계획에 포함된 시장안정화제도(MSR)는 가격 급락 시 정책적 개입이 가능해지는 구조로, 가격 변동성을 완화하고 배출권 시장의 회복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권 부대표는 “벤치마크(BM) 할당 확대는 감축 효율이 높은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며 “다만 업종 간 격차가 큰 현실을 고려할 때, 초기 기준 설정의 투명성과 세밀함이 제도의 신뢰성을 좌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4차 계획은 단순히 새로운 규제가 아니라, 우리 산업의 탄소 효율성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기점이 될 것”이라며 “시장 안정화와 국제 경쟁력 확보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도 설계 정교화 없이 시장 기능 회복 어려워

윤여창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국내 배출권거래제의 현황을 짚고, 향후 보완 과제를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윤 연구위원은 배출권거래제를 감축 수단이 아닌 시장정책의 일환으로 바라봐야 하며, 현재는 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수급 곡선이 지나치게 비탄력적이어서 외부 요인에 쉽게 흔들리고, 이는 기업의 중장기 투자 결정에 장애가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유상·무상할당 체계가 업종 특성과 경쟁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감축 유인을 왜곡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업종별로 배출 강도와 탄소노출 위험도를 고려한 정교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연구위원은 시장운영 개선 방향으로 배출허용총량 설정의 투명성 확보, 시장지배력 감시체계 강화, 명시적 가격안정 장치 도입, 이월 제한 기준의 조정 등을 제안했다. 그는 “이 제도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정부의 세밀한 정책 신호와 시장의 자율적 대응이 조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기능 강화와 산업 경쟁력의 병행이 해법

김용건 연세대학교 교수를 좌장으로 한 토론에는 오일영 기후에너지환경부 기후변화정책관, 이재윤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조영준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장, 최창민 플랜1.5 변호사 겸 정책활동가가 참여했다.
이재윤 연구위원은 산업계의 현실적 어려움을 언급하며 “기업들이 제4차 계획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배출권거래제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 수단으로 작동하려면 기술혁신과 감축 수단 확보가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외 생산 확대에 따른 탄소누출 위험이 커지는 만큼, 산업 부담을 완화할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영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은 “배출허용총량의 급격한 축소와 유상할당 확대는 산업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시장안정화장치의 가격 상·하한제 도입, 무상할당 기준의 합리화, 조기감축 기업에 대한 명확한 보상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제4차 계획은 NDC 목표에 부합하도록 보다 강력한 감축 로드맵으로 개편돼야 한다”고 강조한 최창민 정책활동가는 “발전 부문 유상할당을 100%로 상향하고, 상쇄배출권 제도는 단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속가능한 탄소시장은 명확한 감축 총량과 강력한 가격 신호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일영 정책관은 “이번 제4차 계획은 단순한 제도 개편이 아니라 ‘정상화’의 과정”이라며 “배출권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낮았던 기존 시장을 바로잡기 위해 합리적 선형감축경로를 도입했고, 한국형 시장안정화제도(K-MSR)를 통해 가격 상·하한선을 동시에 관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유상할당 비율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BM 할당을 강화해 탄소 효율이 높은 기업에는 인센티브를, 고배출 업종에는 구조 전환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좌장을 맡은 김용건 교수는 토론을 마무리하며 “이번 논의는 학계·산업계·정부·시민사회가 한자리에 모여 배출권거래제의 현실과 한계를 짚은 의미 있는 자리였다”며 “각 주체의 제안이 조율되고 제도 설계에 반영된다면, 제4차 계획은 단순한 행정 조치가 아닌 ‘탄소중립 이행의 실질적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