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HN 이종헌 인턴기자) 미국이 예고한 25% 관세폭탄 시한(오는 7월 8일)이 다가오면서, 한미 양국이 관세 철폐와 경제협력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는 ‘빅딜’ 협상에 본격 돌입했다.
정부는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 2+2 통상협의에서, 7월 8일 미 상호관세 유예 기한 이전에 '줄라이 패키지(July Package)'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철강·알루미늄, 자동차 등 한국산 주요 수출품에 25% 고율 관세를 부과했으나, 한국 등 일부 동맹국에는 90일간 관세 적용을 유예했다. 이 유예가 끝나는 7월 8일까지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한국 수출기업들은 ‘관세폭탄’을 맞게 된다.
이번 협상은 단순히 관세 문제에 그치지 않고, 미국이 꾸준히 문제 삼아온 다양한 비관세장벽까지 한꺼번에 논의하는 '줄라이 패키지'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줄라이 패키지’란? 관세→환율까지
이번 ‘줄라이 패키지’ 협상은 일부 이슈만 먼저 합의하는 방식이 아니라, 관세, 비관세장벽, 경제안보, 투자, 환율 등 모든 쟁점을 ‘일괄타결’(패키지 딜)로 묶어 한 번에 합의하는 것이 핵심이다.
즉, 자동차 관세나 철강 관세 등 일부 현안만 먼저 풀린다고 해서 전체 협상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네 가지 의제 전체에 대해 양국이 동시 타결을 봐야만 최종 합의가 이뤄진다.
안덕근 장관 역시 “이슈별로 가야겠지만, 전체 패키지가 합의돼야 하기 때문에 일부 우리나라의 이슈가 먼저 정리된다고 해서 관세 협상이 어떻게 마무리된다고 사전에 예단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 방식은 어느 한 쪽만 유리한 합의가 아니라, 양국 모두의 핵심 관심사를 맞교환하는 ‘빅딜’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협상의 4대 주요 의제
양국은 이번 협상에서 관세 및 비관세조치(자동차·철강 등), 경제안보(공급망·첨단산업 협력) , 투자 협력(특히 조선업·에너지), 통화·환율 정책 등 네 가지 핵심 의제를 테이블에 올렸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이 비관세장벽 문제를 공식 의제로 명확히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미국은 그간 연례 무역장벽 보고서 등을 통해 한국의 시장 진입 제한적 규제, 특히 디지털, 의료, 콘텐츠, 지도 반출, 약가, 스크린쿼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국 기업의 진출을 어렵게 하는 비관세장벽을 꾸준히 문제 삼아왔다.
이번 협상에서 미국 측이 비관세장벽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은 분야는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디지털 분야에서는 고정밀 지도 데이터의 해외 반출 제한, 클라우드 보안인증(CSAP) 등 미국 기업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하는 규제, 망 사용료 부과, 개인정보 보호 관련 규제 등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미국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는 지난 3월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고정밀 지도 해외 반출 금지, CSAP, 디지털시장 규제, 콘텐츠전송서비스(CDN) 콘텐츠 규제 등이 한국의 대표적 무역장벽”이라고 공식적으로 지적했다.
특히 CCIA는 “CSAP로 인해 미국 클라우드 업체들이 시장 접근에 제한을 받고 있다”고 구체적으로 밝힌 바 있다. 또한, 최근 미국 정부는 한국 국회에서 논의 중인 망 사용료 부과 의무화 법안과 데이터 현지화 규제, 온라인 플랫폼법 등도 비관세장벽으로 문제 삼고 있다.
둘째, 콘텐츠-미디어 분야에서는 스크린쿼터(국산 영화 상영 의무제)와 외국인 방송·미디어 투자 제한이 미국 측의 주요 문제 제기 대상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한국 내 외국 프로그램 방영 비율 제한, 영화·애니메이션·음악 등 콘텐츠 진출 제한, 지상파 방송에 대한 외국인 투자 불가 등도 서비스 장벽”이라고 평가했다.

셋째, 의료-제약 분야에서는 의약품-의료기기 약가 정책과 시장 접근 제한 등이 지적된다.
미국제약협회(PhRMA)는 “한국의 약가 책정·환급 정책의 투명성이 부족하고, 정책 변경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의 의견 제시 기회가 제한된다”며, 이러한 제도가 미국 혁신 의약품의 시장 진출을 어렵게 한다고 비판했다.
넷째, 농축산물 분야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가공육류, GMO 등 수입 제한이 대표적이다.
미국 전국소고기협회(NCBA)는 최근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30개월령 수입 제한을 개선해야 한다”고 공식 요청했으며, USTR 역시 연례 무역장벽보고서를 통해 이 문제를 반복적으로 지적해왔다.
이처럼 미국이 지적하는 비관세장벽은 각 분야별로 미국 내 업계와 정부, 그리고 공식 보고서에서 반복적으로 문제로 삼아온 사안들임이 확인된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역시 “비관세 문제라든가 디지털 분야의 여러 이슈는 양국이 협의를 통해 범위를 지정하자는 것”이라고 밝히며, 이들 쟁점이 실제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임을 시사했다.

한미관계, 이번 협상으로 뭐가 달라지나?
이번 협상은 관세폭탄을 피할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미국이 꾸준히 문제 삼아온 비관세장벽과 디지털 규제 등도 협상 테이블에 올라, 실질적인 한미 관계 개선의 신호탄이 되고 있다.
특히 자동차와 철강 등 한국의 대표 수출산업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만큼, 업계의 관심도 뜨겁다. 이와 함께 조선업과 에너지 분야 협력 확대,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등도 논의되고 있다.
다음 주부터 실무 협상이 본격화되고, 5월 중순에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방한해 고위급 점검이 이뤄진다. 최종 합의는 오는 6월 3일 한국 대선 이후 새 정부 출범과 맞물려 7월 8일 전후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번 협상은 한미가 관세 문제를 포함한 경제협력 전반을 한 번에 풀자는 ‘빅딜’ 협상"이라며 "일부 이슈만 먼저 합의하는 것이 아니라, 네 가지 핵심 분야 전체를 묶어야만 최종 합의가 이뤄진다. 자동차·철강 등 우리 산업의 명운이 걸린 만큼,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라고 밝혔다.
이처럼 이번 한미 협상은 단순한 관세 줄다리기가 아니라, 디지털-콘텐츠-의료-지도 등 비관세장벽까지 포함해 양국 경제관계의 미래를 좌우할 ‘빅딜’의 서막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는 7월 8일이 한미관계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지 주목된다.
사진= 연합뉴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