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만 반려동물 시대. 네 가구 중 한 곳(28.6%)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런 사회 변화에 발맞춰 정부가 내년부터 음식점에 반려동물 동반 출입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환영하는 목소리도 크지만, 자칫 안전사고와 위생 문제를 야기하고 사회적 갈등만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12일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현재 식품위생법상으로는 반려동물과 식당에 함께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동물이 머무는 공간과 영업장은 명확히 분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약처는 이런 규제를 풀어 2026년 4월부터는 일정한 시설 기준과 위생 수칙을 지키는 조건으로 음식점, 카페, 제과점 등에 반려동물이 출입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법 개정에 앞서 2023년 4월부터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일부 음식점(2025년 2월 기준 228곳)에서 반려동물 동반 출입을 시범적으로 허용해왔다. 시범사업 결과, 위생관리는 대체로 양호했고 영업주와 반려동물 양육가구의 만족도도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범사업 중 목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개 물림 사고가 1건 발생했고, 동물의 털 날림이나 알레르기 유발을 걱정한 일부 손님들이 이용을 기피하는 사례도 확인됐다. 이는 반려동물 동반 출입이 본격화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미리 보여준 '경고등'과 같다.
실제로 작년 4월 한국소비자원이 반려동물 동반을 임의로 허용하는 식당 19곳을 조사한 결과, 식재료가 있는 조리장 문이 열려있거나 환기가 미흡한 곳, 반려동물의 내부 이동을 방치하는 등 위생 및 안전 관리가 부실한 사례들이 다수 발견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부작용이 확인됐음에도 정부의 후속 대책이 아직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만약 식당에서 개 물림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반려동물 주인, 식당 주인, 아니면 정부 중 누가 져야 할까?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법적, 제도적 검토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반려동물 출입을 허용하는 식당의 위생·안전 기준을 현장에서 누가, 어떻게 점검하고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체계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반려인과 비반려인 사이의 갈등을 예방하고 조정할 소비자 보호 대책 역시 불투명한 상황이다. 미국이나 호주 등 일부 국가는 식당 '실내' 출입은 금지하고 야외 공간만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등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이런 해외 사례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졌는지도 의문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더 많은 공간을 누리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이다. 하지만 모두가 안심하고 공존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성급한 제도 시행보다는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꼼꼼히 점검하고 구체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사람과 동물 모두가 행복한 공간을 만들기 위한 세심한 정책 설계와 사회적 합의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