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건뉴스=김민영 기자] 환경과 윤리를 이유로 육류와 동물성 제품을 거부하는 전통적 비건 운동이 이제 디지털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 영국 일간지 더 가디언(The Guardian)과 학술 기반 매체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은 ‘AI 비건(AI Vegan)’이라 불리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조명했다. AI 비건은 인공지능(AI) 기술의 사용을 자발적으로 제한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데이터센터의 막대한 전력 소비와 탄소 배출, 전자폐기물 증가 등 AI 기술이 초래하는 환경적 부담을 이유로 들고 있다.
AI 비건의 기본 인식은 “디지털 소비에도 탄소발자국이 있다”는 점이다. 대규모 AI 모델의 학습 과정은 방대한 전력을 소모한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최신 AI 모델을 한 번 학습하는 데 필요한 전력은 평균 가정 500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하는 전력량에 해당하며, 데이터센터 냉각 과정에서도 상당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또한 서버와 반도체 제조에는 리튬·희토류 등 환경 부담이 큰 광물 채굴이 필수적이며, 장비 교체 주기가 짧아지면서 전자폐기물 문제도 심화되고 있다.
이 운동은 ‘불편함’을 실천의 전제로 한다. AI 비건들은 클라우드 대신 로컬 저장 장치를 사용하고, AI 검색 대신 전통적인 검색 엔진이나 서적을 활용한다. 고화질 영상 스트리밍과 대용량 데이터 전송을 줄이며, 저전력 기기나 재활용·리퍼브 제품을 사용한다. 나아가 정부와 기업에 재생에너지 기반 데이터센터 전환을 요구하고, AI 개발 및 서비스의 환경 영향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촉구한다.
철학적으로 AI 비건은 음식에서 기술로 윤리의 영역을 확장한 사례로 평가된다. 전통적 비건이 맛과 편의성을 포기하며 동물권과 환경을 지키듯, AI 비건은 즉시성과 효율성을 일부 포기함으로써 디지털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한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로우테크 챌린지’와 같은 참여형 캠페인이 확산되고 있으며, AI 없이 제작한 창작물 전시회나 토론회도 열리고 있다.
그러나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개별 이용자가 AI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미치는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또한 AI 사용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이 디지털 접근성이 높은 집단에 편중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AI를 전면적으로 배척하기보다 ‘저탄소 AI’ 개발, 재생에너지 기반 인프라 전환, 효율적 데이터 사용 정책 등 병행 전략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온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데이터센터 밀집도와 AI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논의가 국내에서도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친환경 AI 인증제 도입, 공공서비스 AI 환경영향 평가 의무화, 오프라인 창작 문화 확산 등 다양한 정책·문화적 시도가 뒤따를 수 있다. AI 비건 운동은 단순한 기술 불편주의를 넘어, 디지털 소비의 윤리적 한계를 재정의하고 기술 산업의 지속가능성 논의를 확장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