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감정론’을 다시 읽는 이유

[ 대구일보 ] / 기사승인 : 2021-03-03 10:17:02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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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보다 17년 앞서 ‘도덕 감정론’을 썼다. 이 책은 ‘국부론’의 기초가 됐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우주와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하고 자기 이익만 추구한다면 타인과 더불어 살며 남을 행복하게 하는 도덕적 결정 따위는 할 수가 없다. 사람들이 오로지 일신의 영달과 치부, 명예만을 추구한다면 세상은 각박하고 삭막해질 것이고, 부패와 타락이 만연하게 될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사회가 그런 상태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결정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인간이 도덕적 결정을 내릴 때는 ‘공명정대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를 염두에 둔다고 했다. 누군가가 늘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상상하며 동정심과 양심의 조언에 따를 때가 많다는 것이다.

‘도덕 감정론’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나 빌 게이츠 같은 사람들이 인생의 등불로 삼은 고전 중의 고전이다. 애덤 스미스 자신도 ‘국부론’보다는 ‘도덕 감정론’의 저자로 기억되길 원했다. 국부론의 내용 대부분은 여기 사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정부에서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려고 야심가들은 탈법적인 행위를 한다. 이들은 자신의 야심을 달성하기 위해 저지른 탈법적 행위에 대해서 나중에 해명을 요구받을 것이란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야심가들은 사기와 거짓말뿐 아니라 극악무도한 범죄까지도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야심가들은 성공하기보다는 실패할 때가 더 많으며 저지른 범죄에 상응하는 형벌을 받게 된다. 설령 야심가들이 탈법으로 부와 권세를 얻게 됐다고 해도, 그들이 원래 향유할 것으로 기대했던 행복은 누리지 못하고 실망하게 되며 매우 비참하게 된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지금 힘 있는 자들에게 기생해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이 깊이 음미해볼 말이다.

세상 많은 사람이 현재의 실력자에게 줄을 서고 그 앞에 고개를 숙인다. 실력과 자질,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요령과 편법, 때론 불법과 탈법적 방법을 써서라도 일단 어떤 자리를 차지한다.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합리화하고 망각하기 위해 엉뚱한 일들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기 능력과 한계는 자신이 안다. 그런 사람들에게 애덤 스미스는 말한다. “탈법으로 성공한 야심가는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자신과 타인의 기억에서 지우기 위해서 낭비를 하거나, 방탕한 쾌락에 탐닉하거나, 공공업무에 몰두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이 저지른 악행은 절대로 잊히지 않고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그는 건망증과 망각이란 어둡고 우울한 힘에 의존해보지만 허사이다.”

도덕적이지 않은 행동으로 성공하기도 쉽지 않지만, 설령 성공한다고 해도 파멸할까 두려워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게 애덤 스미스의 충고이다. “야심가는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부끄러움과 양심의 가책이란 복수의 여신들 추적에 계속 은밀하게 시달린다. 영예가 사방에 에워싸고 있는 동안에도 자신은 음울하고 악취 나는 불명예가 자신을 빠르게 추적하고 있으며 곧 자신을 파멸할 것이란 두려움에 떤다. 위대한 카이사르도 자신의 호위병을 물리치고 움직일 정도로 배포가 컸지만, 자신의 의구심만은 떨쳐버리지 못했다.”

부동산과 증권투자 등으로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거나 벼락거지로 전락하는 요즘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며 일상에 충실한 사람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와 함께 가치의 혼란을 겪고 있다. 애덤 스미스의 말은 그나마 우리에게 위안을 주며 착잡한 마음을 가라앉혀 준다. “중산층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길은 도덕성을 쌓는 길과 일치한다. 중산층 사람들이 종사하는 직업에서 진실하고 신중하고 올바르고 꿋꿋하고 절제된 행동을 하는 사람 중에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끔은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도 뛰어난 직업적 능력 때문에 성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습관적인 몰염치, 불의와 부정, 나약함, 방탕함을 저지르는 사람은 직업적 재능마저도 흐리게 하고 둔하게 만들어서 성공하기가 어려워진다. 중산층 사람들의 직업에서 성공은 이웃과 동료들의 호의와 호평에 달려있다. 정직이 최선의 방편이란 오랜 속담이 중산층 계급 사람들에겐 진리이다.” 200년도 넘은 애덤 스미스의 책을 다시 잡는 이유는 세상이 혼탁하지만 아직은 도덕적 인간과 정직한 삶을 신뢰하고 싶기 때문이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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