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상)편에서 우리는 '평균 득점(Avg)'과 '득점 성공률'이 우승의 기본 조건임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당구 팬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건 역시 시원한 '장타(High Run)'와 단숨에 2점을 따내는 '뱅크샷'입니다.
그런데 여기, 데이터가 들려주는 충격적인 반전이 있습니다. 관중을 열광시킨 화려한 기술의 소유자들이 정작 우승 트로피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정주의 PBA 분석' 두 번째 순서, 승부의 흐름을 바꾸는 '장타율'과 '뱅크샷'의 비밀을 파헤쳐 봅니다.
# 뱅크샷의 역설 "화려함인가, 실속인가"

PBA 투어의 가장 큰 매력은 2점제인 '뱅크샷'입니다. 승부처에서 터지는 뱅크샷 한 방은 경기의 흐름을 뒤집어 놓곤 합니다.
데이터를 보면 이번 시즌에 열린 1~8차 대회 동안, 임완섭(6차, 42.3%), 팔라손(4차, 39.6%), 최우진(7차, 37.5%) 선수는 전체 득점의 약 40% 안팎을 뱅크샷으로 해결한 적이 있습니다. 10 득점 중 4점은 뱅크샷으로 득점 했으니 뱅크샷 의존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냉혹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32강과 16강 문턱을 넘지 못하고 탈락했습니다.
Q. 뱅크샷을 잘 치는데 왜 우승을 못 했을까요? 뱅크샷은 '양날의 검'이기 때문입니다.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하면 공이 흩어지면서 상대에게 완벽한 '오픈 찬스'를 내줄 확률이 높습니다.

반면, 7차와 8차 투어를 연속으로 제패하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4대천왕' 스페인의 전설 다니엘 산체스의 기록을 놀라운 결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의 뱅크샷 비율은 고작 15.5%(8차)와 14.2%(7차)에 불과 했습니다. 전체 선수 평균(약 25.6%)과 산체스를 제외한 우승자 평균(27%) 보다도 훨씬 낮습니다. 산체스는 확률 낮은 뱅크샷을 시도하기보다는, 정확한 '뒤돌리기', '옆돌리기', '비껴치기' 등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선택으로 확실한 1점을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불확실한 2점보다 확실한 1점과 다음 포지션'을 선택하는 냉철한 계산. 이것이 화려한 뱅크샷 장인들을 제치고 산체스가 'PBA의 왕'이 된 비결입니다.
# 장타율 "한 방은 있지만, 그 다음이 중요하다"

한 큐에 5점 이상을 몰아치는 '장타율' 지표에서도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됩니다. 8차 대회에서 베트남의 Q.응우옌 선수는 19.3%라는 경이적인 장타율을 기록했습니다. 5번 공격 기회를 잡으면 1번은 소나기 득점을 퍼부었다는 뜻입니다. 1차 대회의 이충복 선수 역시 16.4%의 높은 장타율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32강 문턱을 넘지 못하고 상위 라운드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장타율은 1~8차 대회 종합 전체선수평균은 7.5% 였고, 우승자들의 장타율은 보통 10~15%(평균 12.1%) 선을 유지했습니다. 최고 기록은 아니었지만, 우승자들이 남들보다 뛰어난 점은 '장타 그 자체'가 아니라 '장타 이후의 수비'였습니다.

챔피언들은 5~6점을 몰아친 뒤 공격이 막혔을 때, 상대에게 가장 어려운 공을 주고 테이블에서 물러났습니다. 폭발력만 있고 수비가 안 되는 선수는 곧바로 역전을 허용하지만, '공격과 수비의 균형(Balance)'을 갖춘 챔피언은 리드를 뺏기지 않았습니다.
결국 데이터는 말합니다. "관중은 화려한 샷에 박수를 보내지만, 승리의 여신은 확률 높은 샷에 미소 짓는다"고 말입니다. 이어지는 (하)편에서는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초구 성공률'과 함께, 남은 시즌 우승 후보들의 조건을 종합적으로 전망해 보겠습니다.
<알립니다> 본 기획 연재의 데이터 분석에 인용된 '대회별 최고 기록' 및 '주요 선수 데이터'는 통계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해당 대회에서 최소 3경기 이상(32강 진출 이상)을 소화한 선수들의 기록을 기준으로 집계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