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조명으로 바다거북 지킨다…멕시코 어부와 과학자의 ‘공존 실험’

[ 비건뉴스 ] / 기사승인 : 2025-10-21 11:12:34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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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뉴스=김민영 기자] 바다거북을 위협하는 것은 플라스틱 쓰레기나 해수 온도 상승만이 아니다. 인간의 식탁을 책임지는 어업 현장, 그물에 걸려 죽는 혼획이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최근 멕시코에서 진행된 한 연구는 태양광 조명이 이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주목받고 있다.



애리조나주립대(ASU) 해양미래학부 연구팀은 멕시코 캘리포니아만의 자망(刺網, gillnet) 어부들과 협력해 태양광 LED 조명을 부착한 어망을 시험했다. 그 결과, 일반 그물보다 바다거북 혼획이 6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이끈 제시 센코(Jesse Senko) 조교수는 “이 조명은 기존 배터리식보다 수명이 훨씬 길고, 혼획 방지 효과도 동일하거나 더 우수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어망에 설치된 조명이 해양 생물의 시각을 자극한다는 점이다. 바다거북은 빛을 인식해 방향을 바꾸는 특성이 있어, 그물에 조명이 있으면 접근을 피한다. 하지만 기존에 사용되던 배터리식 조명은 크기가 커서 그물에 엉키기 쉬웠고, 수명이 짧아 유지비용이 많이 들며 환경오염 우려도 제기돼 왔다.



이에 연구진은 어부들과 함께 보다 실용적이고 친환경적인 방안을 찾았다.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LED 조명은 부표 형태로 제작돼 별도의 장비 없이도 부력선에 간단히 부착할 수 있다. 햇빛이 없더라도 5일 이상 작동하며, 일정 간격으로 깜빡여 에너지를 절약한다. 조업 중에도 그물에 엉키지 않아 어부들의 불편을 줄였다.



무엇보다 이번 실험의 성공은 ‘현장 협력’에서 비롯됐다. 조명 개발의 아이디어는 연구실이 아닌 멕시코 해안의 형제 어부 후안 파블로와 펠리페 쿠에바스 아마도르로부터 나왔다. 그들은 연구의 공동저자로 참여해 조명의 형태, 밝기, 설치 방법 등에 의견을 제시했다. 후안 파블로는 “연구자들이 우리의 의견을 존중해 줬다. 서로의 지식이 결합되면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실험이 끝난 뒤에도 이들은 조명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조업 중 거북이 걸려드는 일이 줄어들어 작업 효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현재 이 형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태양광 조명을 사용해 어획하는 어부로 알려져 있다. 센코 교수는 “그들이 조명을 자발적으로 계속 사용하겠다고 했을 때, 우리는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영국의 해양기술기업 피시텍 마린(Fishtek Marine)과 협력해 이 조명의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2~3년 내 판매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며, 정부나 보전단체의 지원을 통해 어부들이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ASU 연구진은 이와 별도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해안에서도 같은 기술을 활용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해저에 고정된 대형 그물(pound nets)에 태양광 조명을 설치해 바다거북의 혼획을 줄이는 것이 목표다. 연구팀은 조명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어획량 차이를 비교하고, 수중 카메라로 바다거북의 행동을 분석하며 빛의 영향력을 세밀히 관찰하고 있다.



센코 교수는 “63%의 혼획 감소는 시작일 뿐이다. 목표는 95% 이상 줄이는 것”이라며 “바다거북 보호는 곧 건강한 해양 생태계의 복원이며, 이는 어업 공동체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슈미트 해양기술 파트너스(Schmidt Marine Technology Partners), 디즈니 보전기금(Disney Conservation Fund), 내셔널 필랜트로픽 트러스트(National Philanthropic Trust)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으며, 국제 학술지 ‘Conservation Letters’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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