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경제신문=서아론 기자] “사는 게 너무 피곤합니다. 나를 설득시켜도 이해받지 못하는 것도 싫고 내가 사랑하는 일을 마음껏 사랑만 할 수 없는 게 싫어요”
지난 2024년 9월 MBC 기상캐스터로 프리랜서 근무 중이던 고(故) 오요안나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세간을 충격에 빠뜨렸다. 20대 후반의 젊은 방송인이자 기상정보 전달의 최전선에 있었던 그는, 동료 기상캐스터들로부터 반복적인 배제와 따돌림을 당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언론을 통해 고인의 휴대전화에서 원고지 17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으며, 유서에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MBC는 이와 관련해 직장 내 괴롭힘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를 올해 1월 말에 구성했으나, 현재까지 조사 결과와 구체적인 진행 상황에 대한 추가적인 공식 발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동료 기상캐스터들은 계속 뉴스에 출연하는 등 업무에서 배제되지 않아 비판을 받고 있다.
고인의 사망이 더욱 큰 파장을 낳는 이유는, 이번 사건이 특정인의 불행을 넘어 한국 직장문화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특히 ‘소속감 없는 노동자’, 즉 프리랜서, 계약직, 파견직들이 겪는 비공식적 위계 구조와 권력 남용은 여전히 제도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공식적인 신고 창구조차 없었고, ‘정식 직원이 아니다’는 이유로 인사권 보호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 유족 측의 주장이다. 실질적인 상명하복 구조 속에서, 오 씨는 무리한 업무 교대, 집단 채팅방에서의 고립, 대면 배제 등이 반복됐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변호사 A씨는 이번 사건에 대해 그저 ‘사내 갈등’이나 ‘감정 문제’로 축소할 사안이 아니라며 “명백한 불법 행위이자, 법적 책임자와 기관 모두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괴롭힘의 구조가 고용형태와 위계질서에서 비롯된 만큼, 향후 비정규직 보호 제도나 차별금지법 입법 논의로 확장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외는 더 강력하게 움직였다
지난 2월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사건 접수는 1만2253건에 달했다. 5년 전 제정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신고 건수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정착 사용자에 대한 처벌이나 피해자 보호 조치는 여전히 미미하다.
법상 직장 내 괴롭힘은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충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규정돼 있다. 여기서 ‘근무 환경 악화 행위’로 규정할 수 있는 범위가 모호하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뿐만 아니라 오 씨와 같은 프리랜서 노동자들은 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변호사 A씨는 “지금의 법은 명확한 ‘근로자’만 보호한다. 하지만 실제 괴롭힘은 고용 불안정한 사람들, 말 못하는 약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며 “오요안나 사건은 이 허점을 드러낸 사례다. 이제는 괴롭힘의 실질, 고용 구조의 현실을 반영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해외 법제의 경우 사업주에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책임을 더 강하게 묻는다.
프랑스는 직장 내 괴롭힘을 놓고 경영진에 책임을 지운다. 노동법전에 금지 규정뿐 아니라 사용자의 예방 및 가해노동자 징계 의무, 형사처벌도 명시했다. 정신적 괴롭힘에는 금고와 벌금 규정도 뒀다.
노르웨이는 개인 간 괴롭힘뿐 아니라 노동자가 업무상 괴로움을 겪는 상황을 방치하는 것을 사용자의 위법행위로 본다. 괴롭힘 사실이 인정되면 사용자도 최대 2년 징역 또는 벌금을 처할 수 있다.
호주는 직장 내 괴롭힘을 형법상 범죄로 분류했다. 불쾌한 언어, 자해 등 신체피해, 자살 충동 등을 야기한 가해자에게 최대 징역 10년형까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이 법은 사업주가 직접고용한 노동자뿐 아니라 외부 하청업체와 계약직, 자원봉사자 등에도 적용된다.
스웨덴은 1990년대 초 세계 최초로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조례를 제정하고 형법으로 금지했다.

명확한 증거 확보가 우선
현행 ‘근로기준법’ 제 76조의2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3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첫 째는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조직 내 지위나 업무상 권한 면에서 우위에 있어야 한다. 직급, 고용형태, 나이, 경력 등이 포함되며 정규직-비정규직, 선배-후배 관계도 이에 해당된다.
둘째, 업무상 적정 범위를 벗어난 행위에 해당해야 한다. 지시나 지적이 아닌 비난, 험담, 따돌림, 고립, 반복적인 언어폭력 등은 적정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감정적 언행이라도 지속적이고 반복이면 괴롭힘으로 판단될 수 있다.
셋째, 신체적⦁정신적으로 고통 또는 근무환경 악화 초래할 경우이다. 피해자가 괴롭힘으로 인해 우울, 불안, 수치심, 불면 등 정신적 고통을 겪었거나 업무 능률 저하, 휴직, 퇴직 유도, 극단적 선택 시도 등이 발생하면 요건 충족된다.
변호사 A 씨는 “직장 내 괴롭힘은 증거 싸움이다. 피해를 입었다면 감정적 대응보다 먼저 객관적 증거 확보를 해야 한다”며 “법률적으로 보호받기 위해서는 정황이 아닌 사실이 필요하다. 특히 고용형태(정규직, 프리랜서 등)에 관계없이 괴롭힘 피해자는 누구나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고용형태나 직책을 떠나,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방치해왔는지는 되묻는다. 괴롭힘은 조직 문화라는 이름 아래 용인돼선 안 되며, 침묵과 외면은 결국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가는 극단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는 모두가 안전하게 숨 쉴 수 있는 일터를 위해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