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대표팀은 9월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B조 1차전 팔레스타인과의 맞대결에서 0-0으로 비겼다.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치른 첫 경기였다. 홍 감독이 소개될 때부터 엄청난 야유가 나왔다. 팬들이 준비한 걸개도 내걸렸다. 걸개엔 ‘피노키홍’, ‘한국 축구의 암흑시대’ 등이 적혀 있었다. ‘홍명보 나가’, ‘정몽규 나가’란 외침도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국가대표팀 사령탑 데뷔전에서 야유가 나온 건 세계적으로도 사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경기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홍 감독이 화면에 잡히면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다. 그래서였을까. 홍 감독이 화면에 잡히면 곧바로 다른 화면으로 바뀌었다.
홍 감독은 “그런 장면들이 쉽진 않았다”면서 “팬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앞으로 견뎌 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한국은 김민재를 비롯해 손흥민, 이강인, 이재성, 황희찬 등 유럽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를 내세우고도 팔레스타인과 득점 없이 비겼다.
한국은 아시아 최초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도전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3위다. 팔레스타인은 월드컵 본선에 오른 적이 한 번도 없는 FIFA 랭킹 96위의 약체다.
홍 감독은 “첫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해 죄송하다”며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전체적으로 전·후반이 다른 양상이었다. 전반전이 우리 생각보다 안 좋았다. 후반전에 개선이 됐지만 몇 번의 득점 기회가 왔을 때 살리지 못했다. 전반전에 반대 전환이나 볼 스피드가 빨라야 했다. 상대가 내려서서 있는 점을 공략하고 득점하려면 좌·우 전환이 중요한데 그러하지 못했다”고 했다.
홍 감독은 또 “후반전에 전술적인 변화를 줬다. 이강인의 창의적인 패스 등이 몇 번 나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가 준비한 부분이었다. 앞으로 이강인, 손흥민, 황희찬 등의 활용이 중요하다. 어떻게 더 잘 활용할지가 코치진의 숙제다. 우리가 방법을 잘 찾도록 하겠다”고 했다.
한국의 후방을 책임진 김민재는 이날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울려 퍼진 야유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팬들이 선수들을 향해서 야유했던 건 아니다. 이날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선수들에겐 아낌없는 박수와 응원을 보냈다.
김민재의 생각은 달랐다.
어두운 표정으로 공동취재구역에 들어선 김민재는 “다들 심각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팬들에게 ‘그냥 선수들에게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전했다.
김민재는 이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사실 우리가 시작부터 못하진 않았다. 사실을 왜곡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찾아와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우린 시작부터 못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못하길 바라며 응원해 주시는 부분이 있었다. 그게 너무 아쉬워서 그렇게 말씀을 드린 거다. 전혀 심각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그렇게 받아들이실 분들은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시면 될 것 같다.”
이날 서울월드컵경기장엔 5만 9천579명의 관중이 찾았다. 4천598석이 팔리지 않았다.
작년 10월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튀니지와의 평가전 이후 11개월 만에 매진에 실패했다.
김민재는 ‘선수단이 아닌 홍 감독과 대한축구협회(KFA)를 향한 규탄이었는데도 마음이 불편했느냐’는 질문엔 “경기장에서 우리가 딱 시작하기 전에 그런 게 들리니까, 그게 아쉬워서 말씀드린 것”이라고만 답했다.
한국은 9월 10일 오만 원정을 치른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B조 2차전이다. 한국은 홈에서 펼쳐진 팔레스타인전에서 무득점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오만 원정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
김민재는 “분위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팬들이 와서 응원해 주셨다”며 “선수들도 그렇고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팬들을 찾아간 것에 대해서 좋지 않게 생각하실 분들은 그렇게 하셔도 된다. 그런데 나는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다. 공격적으로 한다거나 실제로 그런 건 없었다. 좋지 못한 경기력을 보여 죄송하다. 선수들이 더 잘해야 했다. 다음 경기에선 꼭 이기도록 하겠다”고 했다.
[상암=이근승 MK스포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