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빨간 버스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중요한 상징이다. 짐가방을 싣고 광활한 풍경을 달리는 이 버스는 속도보다 여유와 자유를, 목적지보다 감성적 이동을 상징한다. 화면 속에서 관람자를 향해 다가오는 버스는 “여정이 나에게로 다가온다”는 감각을 일깨우며, 단순한 원근법 이상의 의미를 품는다.
허필석의 풍경은 설원, 황금빛 들판, 짙은 녹음의 산맥, 다채로운 대지를 넘나든다. 이는 실제 경험과 상상이 교차하는 자연의 이미지이자, 관람자의 내면에 깃든 ‘감정의 계절’을 비유한다. 작가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길”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각자의 기억과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내면의 여정이다. 그의 회화는 타인의 이야기를 주입하기보다, 관람자가 자신의 서사를 되새기도록 이끈다.

이번 전시 제목 〈Over There〉는 그의 철학을 응축한다. ‘저 너머’는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감각적으로 동경하고 언젠가 닿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시공간이다. 허필석의 회화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열망과 동경으로 가득하다.
오늘날 미술 감상은 과거 유럽 귀족의 ‘그랜드 투어’처럼 어디론가 떠나는 경험과 닮아 있다. 허필석의 작품은 관람자에게 과거의 기억을 환기시키고,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상상하게 하며 예술이 줄 수 있는 본질적 가치인 자유와 여유, 휴식, 감각의 회복을 선사한다.
허필석의 풍경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삶을 향한 따뜻한 응시이자, 또 다른 세계를 향한 희망의 시선이다. 관람자는 그의 그림 속 빨간 버스를 타고, 보이지 않는 길 너머의 세계로 천천히 나아가는 여행자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