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왜 지금 H2Hub인가: 미국 수소정책의 문제의식
미국은 수소를 더 이상 ‘미래 기술’이 아닌, 지금 당장 탈탄소를 실현해야 할 산업적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정찬 연구위원에 따르면 2023년 10월 DOE가 79개 제안서 가운데 7개 지역청정수소 허브(H2Hub)를 최종 선정하며 대규모 투자를 확정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허브당 평균 10억 달러의 연방 예산이 투입되고, 최소 50% 이상의 민간·주정부 매칭 자금이 결합되는 방식으로 H2Hub는 단순 실증 사업을 넘어 민관협력형 산업 플랫폼으로 설계됐다.
정책적 출발점도 명확하다. 미국은 수소 생산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생산.저장.운송.활용을 하나의 체계로 묶은 통합 생태계 구축을 중시한다. 소규모 기술 실증이 아니라 상업적 실행 가능성을 정책의 핵심 평가 기준으로 삼고, 탈탄소 효과와 경제성을 동시에 충족할 경우에만 다음 단계로 나아가도록 설계했다. 다시 말해 H2Hub는 ‘가능한 기술’을 나열하는 사업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산업만을 선별해 키우는 정책 실험이다.
■ 수소샷? IIJA.IRA: 전략·법·재정의 삼각편대
H2Hub는 단일 사업이 아니라 시간 순으로 정교하게 설계된 정책 패키지의 결과물이다. 미국은 목표 설정부터 재정 투입, 민간 참여 유인까지 단계별로 맞물린 구조를 통해 수소산업의 상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출발점은 2021년 발표된 Hydrogen Shot™이다. 미국은 2031년까지 청정수소 생산단가를 kg당 5달러에서 1달러로 80% 낮추는 ‘1-1-1 목표’를 제시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개발 목표를 넘어, 시장이 성립하기 위한 비용 조건을 정책적으로 못 박은 선언으로 평가된다.
같은 해 제정된 초당적 인프라법(IIJA)은 이 목표를 실행 단계로 끌어올렸다. IIJA는 청정수소 분야에 총 95억 달러를 배정하고, 이 가운데 80억 달러를 H2Hub 조성에 집중 투입하도록 법에 명시했다. 단순 연구개발(R&D)이 아닌, 지역 단위의 대형 실증·상용화 프로젝트에 재정을 집중한 점이 핵심이다.
이어 2022년 제정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민간 투자를 본격적으로 촉발했다. IRA는 청정수소 생산에 대해 kg당 최대 3달러의 생산세액공제(PTC) 또는 설비투자비의 30%에 달하는 투자세액공제(ITC)를 제공했다. 이로써 H2Hub는 더 이상 ‘정부 주도 실증 사업’이 아니라, 민간이 참여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는 시장으로 성격이 전환됐다.
■ H2Hub의 본질: ‘허브’라는 산업 설계
법률상 H2Hub는 “청정수소 생산자와 소비자, 이를 연결하는 인프라가 지리적으로 근접한 네트워크”로 정의된다. 이는 개별 설비나 단일 기술을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수소 생산부터 활용까지 전 과정을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묶겠다는 설계 철학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H2Hub에는 세 가지 핵심 요건이 의무적으로 적용된다. 우선 모든 허브는 청정수소 기준(CHPS)을 충족해야 한다. 탄소집약도가 기준을 넘을 경우 허브 자체가 성립하지 않도록 설계됐다.
두 번째는 규모의 요건이다. 허브는 하루 최소 50~100톤 이상의 수소를 생산하는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춰야 하며, 초기부터 상업 운영을 전제로 한 경제성을 확보하도록 했다. 세 번째는 활용의 다변화다. 산업·전력·난방·수송 가운데 최소 한 개 이상의 부문에서 실제 수요처를 확보하도록 요구한다.
여기에 DOE는 허브 선정 과정에서 원료의 다양성(재생에너지·원전·화석연료+CCS), 활용 분야의 다양성, 지리적 분산을 추가 기준으로 적용했다. 특정 기술이나 이념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탄소를 줄일 수 있는지, 그리고 실제로 실행 가능한지가 판단의 핵심 기준이 된 셈이다.

■ 7개 허브, 7개의 산업 전략과 단계별 Go/No-Go
H2Hub는 단일한 표준 모델이 아니라, 지역 여건과 산업 구조에 맞춰 설계된 7개의 서로 다른 산업 전략의 집합이다. 각 허브는 수소 생산 방식과 활용 분야, 산업 연계 방향에서 뚜렷한 차별성을 갖는다.
애팔라치안 허브(ARCH2)는 천연가스와 CCS를 결합한 블루수소를 중심으로 기존 파이프라인과 에너지 인프라를 전환해 저비용 대량 생산 체계를 구축한다. 캘리포니아 허브(ARCHES)는 항만과 중장비 운송을 중심으로 한 그린수소 모델로, 환경정의(Justice40) 원칙을 정책 전면에 반영했다. 걸프 연안 허브(HyVelocity)는 블루·그린수소를 혼합해 암모니아와 e-메탄올 등 수출형 수소경제를 지향한다.
하트랜드 허브(HH2H)는 농업 탈탄소와 저탄소 비료 생산을 연계했고, 중대서양 허브(MACH2)는 비추출형 수소를 기반으로 기존 석유·수소 파이프라인을 재활용해 비용을 낮췄다. 미드웨스트 허브(MachH2)는 원전수소를 활용해 중공업·정유 부문의 탈탄소화를 추진하며, 퍼시픽 노스웨스트 허브(PNWH2)는 100% 그린수소를 기반으로 서부 물류 회랑을 수소화하는 데 집중한다.
이들 허브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수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기존 산업의 탄소 구조를 바꾸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이다.
추진 방식 역시 차별적이다. H2Hub는 약 7~12년에 걸쳐 4단계로 추진되며, 각 단계 종료 시 Go/No-Go 평가를 통해 다음 단계로의 진입 여부를 결정한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지원 중단도 가능하다.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되, 성과 검증을 통해 정책의 긴장감과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한 구조다.

■ 한국 수소도시가 마주한 ‘3低의 벽’과 ‘수소도시 2.0’
미국 H2Hub 모델은 국내 수소도시 정책이 안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선명하게 비춘다. 핵심은 친환경성·경제성·수요성, 이른바 ‘3低의 벽’이다.
먼저 친환경성이다. 미국은 설계 단계부터 청정수소만을 허용했다. 반면 국내 수소도시는 여전히 부생·추출수소 의존도가 높다. 이 연구위원은 CHPS 인증을 충족한 청정수소만 사용하는 지자체에 선택적·집중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경제성 역시 관건이다. 미국 수소경제의 기동 버튼은 PTC와 ITC였다. 반면 국내는 ITC 수준이 낮고, PTC는 사실상 부재하다. 이로 인해 수소도시가 조성돼도 청정수소 생산과 공급이 본격화되지 않는 구조가 반복된다. 수소도시 대상 준(準) PTC 성격의 연료비·운영비 지원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수요성의 한계도 뚜렷하다. 국내 수소도시는 주거·교통 중심의 소규모 수요에 머물러 있지만, H2Hub는 산업·항만·비료·SAF·수출까지 고려한 대량 수요를 전제로 생산을 설계한다. 수요 확보 없이는 생산과 인프라 투자 역시 지속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이 연구위원은 결론적으로 미국 H2Hub의 원칙은 단순하다고 분석했다. 탈탄소 효과가 크고, 경제성이 있으며,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구조만 지원한다는 것이다. 한국 수소도시 정책 역시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게 이정찬 연구위원의 분석이다.
분산된 실증을 계속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집중된 허브를 통해 산업을 만들 것인가. 미국의 청정수소 허브는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이미 현실로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