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배터리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 모빌리티를 지배한다”

[ 에너지데일리 ] / 기사승인 : 2026-01-01 00:35:00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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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데일리 최일관 기자] 전 세계 전기차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산업 패러다임이 ‘배터리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차전지는 더 이상 자동차의 한 부품이 아니라, 한국 제조업의 미래 경쟁력, 산업안보, 자원안보를 좌우하는 국가 전략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5강 가운데 3개가 한국 기업일 만큼 기술 우위는 확고하지만, 중국의 공급망 장악, 미국·EU의 규제 강화, 차세대 배터리 개발 경쟁 심화 등 국내 기업을 둘러싼 환경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한국 산업계는 지금, 기술 경쟁 → 공급망 경쟁 → 정책 경쟁 → 자원순환 경쟁으로 이어지는 전주기 전장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전환 흐름을 정확히 읽고, 고에너지 밀도 NCM·NCA 기술과 안전성이 높은 파우치형·각형 설계를 앞세워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에서 독보적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 2030년 3,670GWh… 폭발적 성장 속 한국 기업의 기회와 과제



세계 배터리 출하량은 2020년 221GWh에서 2030년 3,670GWh로 16배 성장할 전망이다. 전기차 배터리가 이 가운데 90% 가까이를 차지하며 성장세를 주도한다.

현재 글로벌 시장의 77%는 한국·중국·일본 기업이 장악하고 있으며, 중국을 제외한 시장에서는 한국 3사가 1·3·4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 기업은 고성능·고안전성 기반의 프리미엄 전략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IRA와 EU 배터리 규제 강화, LFP 중심 중국 기업의 저가 공세, 원재료 공급 70~90% 중국 의존 등의 리스크는 여전히 존재한다.

따라서 기술 초격차 유지와 공급망 자립화는 향후 한국 기업의 생존 전략이 될 전망이다.



또한 리튬·니켈·코발트·흑연 등 핵심 광물은 특정 국가에 편중돼 있다. ▲ 리튬: 호주·칠레 생산, 정제는 중국 중심 ▲코발트: DRC 생산 70% ▲니켈: 인도네시아 중심 ▲흑연: 정제의 90%가 중국 등이다.



한국 기업은 이러한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해 북미·EU 광산 지분 투자, 인도네시아·호주·칠레와의 공급망 협력, 미국 내 정제·전구체 합작법인 설립, 리사이클링 기반의 ‘자원 내재화 전략’ 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광물 확보 경쟁은 단순 조달을 넘어 한국 배터리 산업의 산업안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함께 전고체·리튬황·나트륨이온 등 차세대 전지는 기존 리튬이온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잠재력을 지닌 기술로 평가된다. 국내 기업들은 특정 기술에 집중하기보다 복수의 기술을 동시에 육성하는 ‘다층형 포트폴리오 전략’을 기반으로 미래시장에 대응하고 있다.



우선 전고체 배터리에서는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이 2027년 전고체 파일럿 양산을 목표로 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다. 두 회사는 고체전해질의 낮은 이온전도도, 계면저항 등 상용화의 장애요인을 해소하기 위한 소재 기술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리튬황·리튬공기 전지는 항공·우주 등 초고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선제 연구가 이뤄지고 있으며, 글로벌 경쟁사 대비 초기 시장을 조기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가 늘고 있다.



나트륨이온 전지는 리튬 대비 가격 경쟁력과 자원 접근성이 강점으로 꼽힌다. 중국 기업의 빠른 상용화 움직임에 대응해, 국내 기업들은 ESS와 보급형 전기차를 중심으로 적용 영역을 넓히고 있으며,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소재 수급 다변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전략은 “미래 배터리 시장을 단일 기술이 장악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판단에서 출발한다. 분야별로 최적화된 기술 체계를 구축해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산업 구조를 조성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 글로벌 규제 전쟁… 한국 기업의 필수 과제는 ‘배터리 여권 대응’



전기차 보급 확대와 함께 폐배터리 배출량이 급증하면서, 국내 기업들은 이를 자원 확보와 신산업 창출을 동시에 실현할 기회로 보고 있다.



성일하이텍, 포스코HY클린메탈 등 국내 리사이클링 기업들은 글로벌 주목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블랙파우더의 금속 회수율을 높이기 위한 기술 투자가 확대되는 가운데, 재사용 ESS 시장에서도 한국 기업들이 주도권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지자체와 협력해 회수·선별센터 구축이 진행되면서 폐배터리 관리 체계가 더욱 고도화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폐배터리 리사이클링을 “광물 확보를 위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지속가능한 공급망 전략”으로 평가한다. 폐자원이 곧 핵심 광물이 되는 ‘도시광산(Urban Mine)’ 개념이 본격적으로 산업 구조에 자리 잡는 분위기다.



전 세계적으로 배터리 전주기를 디지털로 추적하는 규제가 강화되면서, 기업들의 대응 역량이 수출 경쟁력과 직결되는 상황이 됐다.



중국은 2018년 세계 최초로 EVMAM 플랫폼을 도입해 모든 배터리의 생산·운행·폐기 이력을 의무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EU는 2026년부터 배터리 여권(Battery Passport) 제도를 시행해 탄소발자국, 원산지, 재활용 함량 등 정보를 공개해야 시장 진입이 가능한 구조를 만든다.

미국은 공급망 사전 인증을 강화하고 있으며, 일본도 제조·정비·회수 체계를 정비하며 대응 속도를 높이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2027년까지 배터리 전주기 이력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국제 기준과의 정합성을 확보할 계획이다. 이는 규제 대응을 넘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한 사실상의 ‘입장권’이 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탄소발자국 산정, 원산지 추적, 재활용 비율 인증 등 글로벌 기준에 맞춘 관리체계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지적된다.









■ 한국 배터리 산업의 다음 10년은 ‘전주기 전략’이 승부 가른다



한국 배터리 산업은 셀 기술에서 출발했지만, 앞으로의 경쟁은 공급망·정책·재활용·이력관리까지 포함한 전주기(value chain) 경쟁력이 승패를 좌우하게 될 전망이다.

산업계를 중심으로 제시되는 핵심 전략은 ▲기술 초격차 유지 ▲광물·정제 공급망 자립화 ▲배터리 여권 등 글로벌 규제 선제 대응 ▲재사용·재활용 생태계 고도화 ▲전고체·리튬황·나트륨이온 등 차세대 기술 다변화 등을 갖춰야 한다.



전문가들은 “배터리를 지배하는 국가는 미래 제조업의 표준을 지배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 산업계의 향후 10년은 배터리 기술, 정책, 공급망, 재활용을 둘러싼 다층적인 경쟁 속에서 새로운 산업 질서를 다시 쓰는 시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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