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가 2025-26시즌 PBA 1차~8차 투어의 준결승 및 결승 데이터를 전수 분석한 결과, 12:00(11:00)에 열리는 '준결승 제1경기' 승자가 결승전에서 우승할 확률은 무려 87.5%(8회 중 7회)에 달했다. 반면 오후 3시 무렵에 열리는 '준결승 제2경기' 승자가 우승한 사례는 단 한 번(7차)에 불과했다.
# '3시간' vs '6시간'... 격차 만회 불가능한 출발선의 차이
문제의 핵심은 '휴식 시간의 불균형'이다. 데이터를 보면 제1경기 승자는 대게 오후 2시 30분 전후로 경기를 마친다. 밤 9시 무렵 열리는 결승전까지 최대 약 6시간 30분여의 상대적으로 넉넉한 휴식이 보장된다. 식사는 물론, 수면을 통해 근육을 이완하고 멘탈을 리셋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제2경기 승자의 사정은 가혹하다. 오후 3시 무렵에 시작해 풀세트 접전을 벌일 경우 오후 6시가 넘어서야 경기가 끝나기도 한다. 방송 인터뷰와 장비 정리를 마치면 남은 시간은 고작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저녁 식사를 소화시킬 틈도 없이 다시 테이블 앞에 서야 한다. 이미 준결승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상태에서, 회복 없이 나서는 결승전은 '기울어진 운동장'일 수밖에 없다.


# UMB와 다르다... PBA 세트제가 부르는 '극한의 피로'
일각에서는 "UMB(세계캐롬연맹) 월드컵도 준결승과 결승 사이에 2~3시간 정도 텀을 둔다"며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경기 방식의 차이를 간과한 주장이다.
UMB 월드컵은 50점(32강은 40점) 점수제다. 흐름이 빠르면 1시간 30분 내외로 경기가 종료된다. 반면 PBA는 세트제(15점, 마지막 세트 11점)다. 세트마다 흐름이 끊기고, 고도의 몰입과 긴장 그리고 이완을 반복해야 하므로 정신적 피로도가 매우 높다.
실제로 데이터를 보면 PBA 준결승이 7세트까지 갈 경우 소요 시간은 평균 2시간 40분(160분)에 달하며, 3시간을 넘기는 경우도 간혹 발생한다. 100미터 달리기 같은 UMB와 달리, PBA는 마라톤을 뛰고 돌아온 선수에게, 물 한컵 먹고 잠시 후 또 뛰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하루 14세트 혹사,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조재호와 산체스의 눈물
이 구조적 모순의 대표적 사례이자 최대 피해자는 5차 투어 조재호와 6차 투어의 산체스였다.
지난 5차 투어(크라운해태) 당시 조재호는 준결승 제2경기에서 김종원과 풀세트 접전(17:17분 종료)을 벌이고 결승에 올랐다. 그리고 밤 9시에 열린 레펀스와 결승에서 1,2세트를 먼저 따내고도 후반으로 갈수록 집중력이 하락하며 풀세트 혈투끝에 4:3 역전패를 당했다. 하루에만 무려 14세트를 소화하는 강행군속에 벌어진 뼈아픈 결과였다.
6차 투어(휴온스) 결승도 마찬가지다. 준결승 제2경기 승자였던 산체스는 결승에서 김영원을 상대로 세트스코어 3:1까지 앞서갔으나, 5세트 이후 급격한 체력 저하를 보이며 내리 3세트를 내주고 역전패했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3시간의 휴식으로는 바닥난 '연료'를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 [현장 육성] "밥 먹을 시간조차 없었다"... 조재호의 작심 발언
5차 투어 결승에서 레펀스에 패해 아쉽게 준우승에 머문 조재호는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뼈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그의 목소리에는 패배의 핑계가 아닌, 프로 선수로서의 고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준결승전이 끝나고 2시간 정도밖에 쉬지 못하고, 밥도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이 자리를 빌려 PBA 측에 말하고 싶은 것은 PBA 선수들도 LPBA 선수들처럼 결승전을 하루 쉬고 치르고 싶다는 점이다." 조재호는 멋쩍게 웃으며 "패배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라고 덧붙였지만, 핵심은 명확히 짚었다.
"4강전부터 결승전까지 하루에 2경기를 하는 게 쉽지 않다. 핑계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하루에 최대 14세트의 게임을 한다는 게 정말 어렵다. 모든 선수가 힘들다고 한다."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조차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고 토로하게 만드는 일정. 팬들은 '최고의 컨디션'으로 맞붙는 진검승부를 볼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셈이다.
# '공정성'을 위한 제언... LPBA의 길을 따르라
PBA 8차 투어까지의 데이터는 명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현재의 일정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프로 당구 PBA 출범 7시즌 째를 보내고 있다. 이제는 흥행과 중계 등을 위한 '원 데이 피날레(준결승+결승 하루 진행)' 방식에서 벗어나 '선수 보호'와 '공정성'을 생각해야 할 때다. 이는 선수는 물론 팬과 관객들에게도 경기결과를 납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자, 'PBA의 지속가능 성장을 담보하는 것'이 중론이다.
대안은 이미 가까운 곳에 있다. LPBA(여자부)는 준결승을 결승 전날 치르는 방식으로 운영해 선수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하루 휴식을 취한 선수들은 결승전에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PBA 역시 준결승 일정을 분산하거나, 최소한 준결승 두 경기를 모두 오전에 배치하여 결승 진출자들에게 동등한 휴식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1억 원의 상금이 걸린 최고의 무대가 '체력 테스트장'으로 변질되어서는 안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