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사 루안(박지훈)은 자신의 현재 감정 상태를 ‘보물찾기’라고 표현한다. 이미 답을 알고 꺼내 보이는 일이 아니라, 어딘가에 존재할 자신의 감정과 모습을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는 이 인터뷰를 통해 과거의 성취보다, 지금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나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봐주길 바란다고 말한다.

말수가 줄어든 아이
기억나지 않는 아주 어린 시절, 그는 호기심이 많고 발표회 같은 자리에서 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던 아이였다. 하지만 또렷이 기억하는 시절의 그는 사람을 마주하거나 이야기하는 일을 피하던 아이에 가까웠다.
잦은 이사는 그의 성격을 바꿔놓았다. 낯선 지역의 어린이집, 한글도 떼지 못한 채 영어로만 진행되던 수업, 부산 사투리로 인한 놀림과 왕따. 그 경험 이후 말수는 급격히 줄었고, 성격도 소심해졌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겪은 사건은 결정적이었다. 장염으로 인한 실수 이후 돌아온 조롱과 냉대는, “무슨 말을 해도 환영받지 않는다”는 인식을 남겼다. 결국 전학을 선택했고, 새로운 학교에서는 비교적 잘 적응했지만 미묘한 거리감은 계속됐다. 도움을 주려 한 말에 “어쩌라고”라는 반응이 돌아온 몇 번의 경험 이후, 그는 먼저 다가가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됐다.
“세상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당시의 감정을 정확히 기억하진 못한다. 다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는 세상이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느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들, 도움을 주고자 한 행동들조차 원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감각은 자존감을 낮추고 사람과의 거리감을 키웠다.
그 영향은 마술이라는 세계를 선택하는 과정에도 간접적으로 작용했다. 무대 위에 서기보다, 타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는 일이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트릭을 알았을 때, 오히려 매혹됐다
루안이 마술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4~5학년 무렵이다. 야후 ‘꾸러기’ 페이지에서 우연히 클릭한 ‘고무줄 크로스’라는 제목의 콘텐츠였다. 두 개의 고무줄이 손가락 사이를 순식간에 빠져나오는 마술이었다.
복잡해 보였지만, 따라 해보니 의외로 손에 익었다. “왜 되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트릭을 이해했을 때, 그는 실망보다 강한 매력을 느꼈다. 불가능해 보이던 현상이 어떤 과정으로 가능해지는지, 그 구조 자체가 마법처럼 다가왔다.
이후 싸이월드 클럽과 다음, 네이버 카페를 거치며 마술을 배웠다. 그가 가장 갖고 싶었던 첫 마술 도구는 ‘바이시클 카드’였다. 문구점에서 파는 카드와는 다른, 더 정교하고 고급스러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처럼 느껴졌다.

긴장 속의 첫 무대
정식 무대에 처음 선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본인의 동의도 없이 축제 공연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고, 그는 급하게 스테이지 마술을 준비해야 했다. 무대에 오른 순간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지나친 긴장 탓에 시작만 기억날 뿐, 그 이후는 공백에 가깝다.
결과는 1등이었다. 하지만 성공보다 더 오래 남은 것은 긴장이었다. 이후 몇 년간 그는 초등학생 앞에서 마술을 보여줄 때조차 손이 떨릴 정도로 긴장에 시달렸다.
공연자에서 교육자로
마술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과정에서도 가장 큰 두려움은 ‘말’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공연보다 누군가에게 마술을 알려주는 순간에 더 큰 즐거움을 느꼈다. 유니크매직(아티스 크리에이티브 컴퍼니) 최현빈 대표를 만나며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된 것도 그 연장선이었다.
교육자가 된 이후, 그는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말 한마디에 책임이 생겼기 때문이다. 무심코 던진 말 하나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그를 끊임없이 공부하게 만들었다.
단점과 정면으로 마주하기
루안이 꼽는 자신의 가장 큰 단점은 ‘말’이다.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부터 발성, 발음, 진행력까지 모두 포함된다. 그는 이를 회피하지 않는다. 발성 연습을 하고, 말을 걸기 위한 대본을 쓰고, 두렵지만 시도한다.
고등학교 3학년 무렵, 그는 처음으로 “성격을 바꿔보고 싶다”고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시점부터 주변의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기 시작했고, 변화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게 됐다.
“문제가 뭔지 몰랐을 뿐이다.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면 개선할 수 있다.”
지금 그가 붙잡고 있는 기준이다.
현실을 조각하는 예술
루안에게 마술은 친구이자 선생님이다. 사람을 만나게 해주었고,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고칠 기회를 주었다. 그는 마술을 ‘현실을 조각하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같은 마술이라도 누가, 어떤 시선으로 보여주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한 단어로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시각적인 의미가 아니라, ‘아름’이 ‘나’를 뜻한다는 어원에서다. 나답게 표현하고, 나답게 보여주는 것.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향후 5년, 그는 ‘교육자상’을 목표로 삼고 있다. 상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관객이든 제자든, 그의 마술을 지나간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으로 남고 싶다는 바람도 분명하다.
그는 자신을 ‘히키코모리’라고 부른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이 자신에게 휴식이자 보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의 자신에게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고 한다.
“숨고 회피하지만 말고, 나 자신을 더 들여다보고 적극적으로 살아봐라.”
보물찾기처럼 자신을 찾아가는 중인 마술사 루안. 그의 이야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완성보다, 계속해서 나아가는 쪽을 선택한 사람의 기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