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터뷰] 건축은 산업이자 인문학이다

[ 비건뉴스 ] / 기사승인 : 2025-12-10 12:22:58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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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뉴스=김태연 기자] 건축가이자 부동산 개발기획자로 슬로우 아크 홀딩스를 맡고 있는 김선국 대표는 1997년 하버드대 건축대학원에서 공부했고 졸업 후 세계적인 건축회사에서 종합의료시설, 연구시설과 리츠칼튼호텔 등 대형 국제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경험을 쌓았다. 이후 포럼130플러스 대표를 맡아 액티브시니어 플랫폼과 시니어 모빌리티의 개념을 정립하고 노인복지건축에 온 힘을 쏟으며 초고령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하고 있다. 본지에서는 『2025 세상을 움직이는 리더십 ‘선한 영향력’ 12인 선정』의 올해 마지막 주자로 슬로우 아크 홀딩스 김선국 대표를 인터뷰했다.





Q. 김선국 대표님이 건축을 하게 된 이유와 누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화가였던 이모, 그리고 고(故) 장욱진 화백과의 인연으로 예술적 감수성을 물려받아서 '공학을 하며 예술을 할 수 있는 길'을 찾다 건축의 세계로 들어섰습니다. 어린 시절, 서교동 자택 공사 현장에서 느꼈던 ‘공간이 만들어지는 생생한 감동’이 저의 인생 방향을 결정지었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 처음 접한 건축가의 작품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로비 하우스였습니다. 건축뿐 아니라 가구, 조명, 디테일까지 아우르는 종합예술이었죠. 라이트의 르네상스적 접근은 어린 건축학도의 사고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이후 안도 다다오, 구마 겐고, 아라타 이소자키, 리처드 마이어, 장 누벨 등 감각적이고 미니멀한 작품을 구현했던 당대 건축가들에게 영향을 받으며 저만의 디자인 언어를 구축했습니다.



Q. 많은 건축 중에 특히 의료 건축을 시작하게 된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A. 대학원 시절, 종합병원 건축의 대부이시자 병원건축학회 창립 멤버이신 고(故) 김광문 교수님의 지도 아래에서 본격적으로 의료건축을 접했습니다. 그 시기에 삼성의료원, 아산병원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의료공간이 단순한 건축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다루는 분야라는 점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이후 삼우설계에 입사해 삼성공익재단의 20년 비전 중 하나였던 강북삼성병원 및 마산삼성병원 프로젝트를 담당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NBBJ, TRO, HDR 등 글로벌 의료건축 전문 회사들과 협업하며 선진 의료시스템과 병원 설계의 노하우를 배웠습니다.



그 시기에 뜻깊은 인연을 맺은 분이 바로 삼성생명의 이호갑 상무님과 삼우설계의 프로젝트팀입니다. 이분들을 통해 국내 최초의 고급 노인주거 커뮤니티 ‘삼성노블카운티’를 기획·설계·운영까지 성공적으로 완성한 경험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당시 삼성, 대우, 현대 등 주요 그룹들이 모두 노인복지와 주거를 위한 TF팀을 구성했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인해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중단되었습니다. 삼성만이 끝까지 노블카운티를 완성했죠. 그 후로 약 28년간, 국내 민간기업의 노인복지 관련 개발은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시설이 정부 주도의 요양원이나 공공기관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민간 주도 고령자 주거 프로젝트는 여전히 드뭅니다. 이러한 현실이야말로, 제가 지금도 시니어 리빙과 의료복지건축을 꾸준히 연구하고 실천하는 이유입니다.





Q. 세계무대로의 진출은 어떤 계기가 있었으며 가장 자랑스러운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A. 1997년, 하버드대 건축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보스턴의 퍼킨스앤윌(Perkins & Will)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고, 2003년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HDR 및 SB Architects에서 종합의료시설, 연구시설 및 리츠칼튼호텔 등 대형 국제프로젝트 경험을 쌓았습니다. 2011년부터는 글로벌 설계회사 RTKL 어소시에이츠의 베이징 지사장을 맡으며 중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의 종합병원 및 의료관광(medical tourism) 및 실버타운 복합단지 설계에 참여했습니다. 대표작 중 하나는 클리블랜드 클리닉 아부다비(Cleveland Clinic Abu Dhabi)입니다. 건축설계비만 500억 원이 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진과 로열패밀리를 위한 종합병원이자, 6성급 호텔 수준의 어메니티를 갖춘 의료시설이었죠.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의료시설이 곧 ‘도시 속의 치유 생태계’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이후 미국 내 부동산개발사로 이직해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산호세 일대에서 총 10억 달러 규모인 다수의 복합개발사업을 총괄하며, 총 4,000여 세대와 3만 제곱피트 규모 사무공간 등의 복합상업공간을 개발계획, 건축허가 및 완공했습니다. 이 단계에 저는 건축가에서 개발자로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 결국 제 커리어는 ‘창조’에서 ‘실행’으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의료관광 및 노인복지건축에 관심 갖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A. 의료관광(Medical Tourism)은 지난 20여 년간 도시개발과 부동산산업의 핵심 동력이자 주목받는 분야 중 하나였습니다. 2009년 대한병원협회 총회에서 대전 선의료재단의 오너를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의료관광 분야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세종시 선병원 국제검진센터의 설계를 맡았고, 이 프로젝트는 국내 최고급 검진센터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며 중동·중국·몽골 등 아시아 각국의 환자들이 찾는 대표적 의료관광시설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국내 의료시설의 고급화와 국제화를 선도하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중국 시장에서 의료복지시설 프로젝트들을 직접 수행하면서, 빠르게 팽창하는 자본시장과 함께 고령화에 대응한 노인주거시설의 수요가 급증하는 현장을 경험했습니다. 특히 중국의 주요 보험사들이 실버타운 상품 개발을 위해 삼성 노블카운티를 벤치마킹하고, 제가 기획 단계부터 완공·운영까지 함께한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노인복지 관련 컨설팅 프로젝트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Q. 액티브시니어 플랫폼과 시니어 모빌리티를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요?



A. 노화의 가장 큰 특징은 활동성이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근력이 줄어들고 노쇠함에 따라 운신의 폭이 좁아짐을 육체적 물리적으로 경험하기 때문에 노인의 생활반경이 줄어들고 사회적 활동범위도 작아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반면 베이비부머의 노인들은 기존 노년 세대와 다르게 노년을 인생의 새로운 시작으로 보기 때문에 그에 알맞은 경제력과 소비력을 갖추려 합니다. 오늘날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이전의 노년층과 달리 노년을 ‘인생의 마무리’가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활발한 사회 참여와 자아실현을 추구하며, 이를 뒷받침할 경제력과 소비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곧 ‘액티브시니어(Active Senior)’ 세대의 등장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시니어의 이동성과 자립성을 지원하는‘시니어 모빌리티(Senior Mobility)’의 개념은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고령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적 연결성을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동의 자유는 곧 삶의 자유이며, 이는 의료·복지·문화·레저·주거 등 다양한 생활영역을 통합하는 플랫폼의 핵심 요소가 됩니다.



노년의 삶을 시설 중심이 아닌, 공감과 교류가 살아있는 생활 문화로 확장해 가는 과정에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고, 세대 간 공감대를 넓혀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흙집, 컨테이너 하우스, 아파트 내 공유주거, 혹은 세컨드 하우스를 통한 ‘마지막 삶의 준비’ 등 다양한 주거 형태가 모두 액티브시니어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실험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다양한 공간 실험을 통해 시니어들이 기존의 정주(定住) 공동체 틀에서 벗어나, 이동성과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커뮤니티를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곧 실버 모빌리티의 본질을 극대화하고, 나아가 노년기의 삶의 질을 높이는 핵심이 됩니다. 슬로우아크는 이러한 실험적 거주 형태들을 중·대규모 공동체로 발전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해외의 성공 사례와 연계된 전략적 모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부동산 개발자, 건축가, 의사, 사회복지사, 영양사, 노인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협력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이익 창출이 아니라 사회적 담론의 창출입니다. 초고령사회가 요구하는 진정한 혁신은 건물이나 기술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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