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스만·기습사면·이임생·홍명보’ 한결같은 안목과 선택, 퍼거슨이 왔어도 불신·불만 가득했을까

[ MK스포츠 축구 ] / 기사승인 : 2024-07-09 14:55:03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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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12일. 위르겐 클린스만 헤르타 베를린 감독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라이브 방송에서 사임을 발표했다. 베를린 지휘봉을 잡은 지 76일 만이었다. 베를린 코치, 선수, 프런트, 팬 모든 구성원은 클린스만 감독의 라이브 방송에서 사임 소식을 접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이후 지도자 경력을 추가하지 못했었다. 세계 축구계는 안하무인(眼下無人)인 클린스만 감독이 더 이상 감독 경력을 이어가지 못할 것으로 봤다.

세계 최초 개인 SNS 라이브 방송 사임 때문만은 아니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독일 대표팀 감독 재임 시절인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재택근무 논란’을 일으켰다. 자택이 있는 미국으로의 잦은 출장으로 독일 축구계 안팎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국 감독 재임 시절(2011~2016)엔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MLS)를 경시했다. 당시 클린스만 감독은 MLS 현장에서 새 얼굴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클린스만 감독은 유럽 하부리그 후보 선수를 미국 MLS 주전 선수보다 우위에 두면서 미국 축구 연맹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대한축구협회(KFA)는 그런 클린스만 감독에게 2022 카타르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 대표팀 지휘봉을 맡겼다.

클린스만 감독은 독일 대표팀, 바이에른 뮌헨, 미국 대표팀, 베를린 등에서 그래왔듯이 하던 대로 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2024년 2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을 끝으로 경질됐다. 이후에도 클린스만 감독의 한결같은 모습은 외신을 통해 접하고 있다.



2023년 3월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우루과이의 평가전. KFA는 경기 시작을 1시간 앞두고 각종 비위 행위로 징계를 받은 전·현직 선수, 지도자, 심판 등 100명의 사면을 발표했다. 2011년 승부조작을 범했던 승부조작범 48명이 포함된 기습 사면이었다.

KFA는 당시 “월드컵 본선 10회 연속 진출 성과와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을 자축하고 축구계 화합·새 출발을 위해 사면을 건의한 일선 현장의 의견을 반영했다. 오랜 기간 자숙하며 충분히 반성했다고 판단되는 축구인들에게 다시 기회를 부여하는 취지도 있다”고 했다.

KFA는 3일 뒤인 같은 달 31일 임시 이사회를 열어 징계 사면 건을 전면 철회했다. 거센 반대 여론에 내린 결정이었다.







2024년 7월 7일. KFA는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홍명보 울산 HD FC 감독을 내정했음을 발표했다. 8일엔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을 알렸다.

KFA 전력강화위원회는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 97명을 추리고 새 감독 선임 작업을 진행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4월 28일.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사퇴했다. 전력강화위원들의 사퇴도 줄을 이었다.

전력강화위원 11명 중 절반 이상이 빠져나갔다. 5명만 남았다. 공정한 절차와 투명성을 강조하기 위해 신설한 전력강화위원회가 와해됐다.

KFA는 개의치 않았다. 정몽규 KFA 회장은 이임생 기술총괄이사에게 힘을 실어주며 감독 선임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 이사는 “정몽규 회장께서 저에게 모든 권한을 주셨다”며 “이번 감독 선임 결정은 투명하게 절차대로 저 스스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전력강회위원회의 역할이 제대로 작동했는지에 대한 질문엔 “(전력강화위원) 다섯 분만 동의했다고 해서 잘못됐다고 언급하긴 그렇다. KFA 법무팀의 조언을 받았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게 문제가 된다면 법무팀에 다시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울산 구단에 관해선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홍 감독은 2021시즌부터 울산을 이끌고 있다. 2023년 8월 2일엔 울산과 3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울산은 홍 감독에게 K리그 최고 대우를 해줬다.

울산은 장기적인 플랜을 세우고 더 좋은 구단을 만들어가고자 정진했다. 하지만, K리그1 3연패, 2024시즌 코리아컵, 2024-25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정상 도전을 앞두고 장기 플랜의 중심인 수장을 빼앗겼다.

이 이사는 “K리그, 울산 팬들에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울산 구단에서 홍 감독님을 보내주시기로 약속했기에 감사하고 죄송하다. 울산 팬들에겐 다시 한 번 죄송하다. 앞으로 울산을 응원하겠다”고 했다.



클린스만 감독에겐 막대한 위약금을 지급해야 했지만 울산엔 그럴 필요가 없다. 홍명보 감독이 울산과 K리그를 배려하지 않는 KFA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울산은 ‘동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국가대표팀 사령탑 선정을 위해서라면 울산, K리그, 팬, 계약 등은 중요하지 않다. 한국에서 K리그의 수장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시즌 중에라도 빼올 수 있는 사람이다. 구단과의 계약이 끝나지 않았더라도 위약금 없이 빼올 수 있다.

2007년 7월 18일. 박성화 전 U-20 대표팀 감독은 부산 아이파크 새 사령탑에 선임됐다.

17일 뒤. 박성화 감독은 한국 U-23 대표팀 사령탑으로 자릴 옮겼다. ‘17년, 17달’이 아니다. ‘17일’ 뒤였다. KFA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의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이유로 부산 감독으로 선임된 지 17일 된 감독을 빼왔다.

KFA가 한국 축구의 근간인 K리그를 바라보는 시선, 태도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KFA가 2024년 7월 7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홍 감독이 월드컵이란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물음표가 붙는다.

이 이사는 홍 감독 선임 이유 중 하나로 “울산이 K리그에서 빌드업 지표 1위, 기회 창출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했다.

홍 감독은 울산을 이끌고 K리그1 2연패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K리그에서 지도자들의 국제경쟁력을 확인하긴 어렵다.

K리그는 1부 12개 구단 모두 내국인 지도자가 이끈다. 2부 리그 13개 구단 사령탑도 하나같이 내국인이다.

K리그는 J1리그(일본), 슈퍼리그(중국) 등 다른 아시아 클럽과 달리 대단히 폐쇄적인 리그다. 유럽에서도 1, 2부 리그 모든 감독이 내국인인 경우는 보기 어렵다.

홍 감독은 ACL 우승컵을 들어 올린 적이 없다. 말레이시아 프로축구 1부 리그 조호루 다룰 탁짐과의 맞대결에서 3연패를 기록하는 등 국제무대에선 의문점만 더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선 유럽에서 경기에 나서지 못해 경기 감각이 심각하게 떨어진 선수를 K리그에서 빼어난 경기력을 펼친 이보다 우선하는 등 ‘의리 축구’ 논란에도 시달렸다. 이는 2014 브라질 월드컵 실패의 큰 원인 중 하나였다.



또 하나.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은 한국 축구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아주 큰 일이다.

이임생 이사는 그간 어떤 성과를 남겼기에 국가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는 데 앞장설 권한이 주어진 것일까.

이 이사는 국가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는 데 앞장설 만한 안목, 능력을 보여준 적이 있었나.

[이근승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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