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특이한 술이 소개되어 있다. 바로 쑥술인 애주(艾酒)다. 쑥 애(艾)자를 써서 애주(艾酒) 혹은 애엽주(艾葉酒)라고 한다.
‘한국술 고문헌 DB’를 통해 수운잡방에 소개된 애주를 볼 수 있다(수운잡방은 한문 필사본 조리서이다). 두 번 빚는 이양주로 소개된 애주는 4월 그믐에 밑술을 빚는다. 백미를 여러 번 씻어 고운 가루를 내고 죽을 쑨 다음 이 죽이 식으면 누룩을 섞어 단지에 담아 밀봉한 후 시원한 곳에서 발효시킨다. 덧술은 며칠 뒤에 한다. 단오 전날인 5월 4일에 참쑥 잎을 뜯어 쌀과 섞은 후 돗자리에 펴놓고 밤이슬을 맞게 한다. 다음날인 단오날엔 이를 밑술과 잘 섞어 손바닥 크기 정도로 떡을 만든다. 나무 발을 만들어 술 단지 중간에 걸쳐놓고 그 위에 떡을 놓은 다음 단지를 밀봉하고 찬 곳에 둔다.
이 술은 8월 15일 쯤 익는데 나무 발 아래의 맑은 즙을 떠서 마신다고 했다. 더불어 이 술을 하루에 세 번 마시면 백 가지 질병을 치료한다고도 했다.
수운잡방 외에 애주가 실려 있는 문헌은 요록(要錄)이다. 요록은 1680년경 조선 숙종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저자 미상의 조리서이다. 역시 ‘한국술 고문헌 DB’를 통해 요록에 수록된 애주를 볼 수 있다. 단양주로 소개된 애주는 단오 전날인 5월 4일 쌀을 씻어 불리고 쑥을 자리에 펴서 하룻밤 이슬을 맞힌 후 다음날 쑥을 달인 물을 밥, 누룩과 함께 섞어 발효를 시키는 방식이다. 이 술을 마시면 배탈을 치료한다고 적었다.
쑥은 요즘도 나물로 무쳐 먹거나 국을 끓여 먹고 떡 등의 재료로 쓰일 정도로 사람들에게 친숙하다. 특히 한방에서는 약재로 널리 쓰이고 있는 재료이기도 하다.
술을 빚을 때 사용하는 쑥은 앞서 수운잡방이나 요록의 기록에서 보듯 단오 바로 전에 채취한 것이다. 아마 이때 뜯은 쑥이 약효가 뛰어날 뿐 아니라 향도 좋은 것일 테다. 요록의 기록에서 보면 술을 빚을 땐 쑥을 달인 물을 사용한다. 쑥의 약성과 향을 술에 고스란히 담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애주를 빚기 위해 매년 5월이면 쑥을 채취해서 법제를 한 후 말려서 보관을 한다. 약으로서의 효과보다 술에 향을 담는 가향주로서의 애주를 빚기 위해서는 오히려 늦여름 무렵의 쑥이 더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5월에 채취한 어린 쑥으로 빚은 애주의 향이 더 나은 것 같다. 때론 5월에 채취해서 2~3년 묵혀 놓은 쑥을 쓰기도 한다. 오래된 쑥이 약성이 더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향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애주는 수운잡방에 기록된 걸로 봐서 우리나라에선 500년 전부터 빚어왔던 술이다. 발효를 끝내고 거르고 나면 은은한 녹색의 술색에다가 상상외로 부드럽고 달콤한 맛에 반하지 않을 수 없는 술이다. 누구나 흔하게 빚는 술이 아니라서 맛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아쉽다.
다만, 어린 쑥이든 다 자란 쑥이든 술을 빚을 땐 적당한 양을 사용하는 게 더 중요하다. 수운잡방의 기록에도 참쑥의 양은 임의로 하되 적당히 사용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애주 뿐 아니라 다른 술을 빚을 때도 반드시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당귀처럼 향이 강한 약재를 넣은 술을 빚을 땐 오히려 지나치게 적은 양이다 싶을 정도로 넣어야 실패하지 않는다. 향이 아니라 아무리 약성을 우려낸 술을 빚고 싶어도 일정 양 이상을 넣게 되면 오히려 마시기 거북해지기 때문이다.
애주를 빚을 때도 마찬가지다. 당귀와 마찬가지로 술에 들어가는 쑥의 양에 신경을 써야 한다. 향이 좋고 약효가 뛰어나다고 해서 아주 적은 양이라도 더 넣으면 오히려 맛과 향을 해친다. 봄이 눈앞까지 온 어느 날, 2년 전 채취해 놓았던 쑥으로 애주를 빚으며 욕심을 경계한다.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김광재 기자 kjk@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