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데일리 조남준 기자]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 등 글로벌 규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산업 부문의 저탄소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부상했다. 특히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기술 확보와 산업 전환 지원, 제도적 정비 등 전방위적 대응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발표한 산업부문 온실가스 감축정책 평가 보고서에서 정부의 관련 정책 추진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가 수립한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분야 기술혁신 전략 로드맵상 26개 핵심 기술 중 조기 상용화가 가능한 기술은 7개에 불과하며, 9개 기술은 여전히 큰 기술 격차가 존재한다. 특히 철강 분야에서는 8,145억 원 규모의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실증기술 개발이 진행 중이나, 기초설계 R&D 결과 없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재신청하는 등 신중한 예산 집행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석유화학과 시멘트 분야도 핵심 기술 연구개발 과제들이 지연되거나 예산 부족으로 실증 단계 진입이 불투명하다. 정부는 이러한 로드맵 일정 지연과 기술 상용화 장애에 대비한 유연한 조정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한 탄소중립 기술에 대한 세액공제 실적은 전체 신성장·원천기술의 20%를 차지하지만, 최근 3년간 실제 세액공제 대상 금액은 7%에 머물러 있다. 특히 세액공제 혜택이 수소 분야에 집중되어 있고, 대부분 시설투자에 낮은 공제율이 적용돼 실질적인 유인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산업부, 환경부, 중소벤처기업부가 각각 유사한 탄소중립 설비투자 지원사업을 운영하면서 지원 내용이 중복되고 비효율적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탄소중립 사업화지원’ 사례를 참고해 부처 간 통합 관리체계 도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탄소중립 전환 선도프로젝트 융자지원과 세액공제 간 연계가 미흡해 기업들이 이중 부담을 안고 있다. 이는 세액공제 대상 기술 범위가 지나치게 좁기 때문으로, 범위 재검토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배출권거래제의 핵심 과제로 시장 내 과잉 공급된 배출권 문제를 꼽았다. 정부는 제4차 배출권 할당계획 수립을 앞두고 있으나, 기존 잉여 배출권 회수를 위한 명확한 정책 수단은 부족한 실정이다. 누적된 이월량과 상쇄배출권을 반영한 총량 설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탄소누출 업종에 대한 보호 수준이 EU에 비해 과도하게 높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우리나라 탄소누출 지수 기준은 EU의 약 100배에 달해, 장기적으로 무역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2031년 이후 유상할당 전환을 염두에 둔 기준의 단계적 강화가 요구된다.
한편 배출량 통계의 신뢰성 확보를 위한 정부 대책은 현재 검증 절차 개선에만 치중되어 있다. 민간 사업자의 자료 누락 방지를 위한 기초통계 수집 강제 수단 마련 등 근본적 개선이 시급하다.
산업 부문의 저탄소 전환은 기술 개발뿐 아니라 정책 연계, 기업 유인, 통계 신뢰성 확보까지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대응이 필요한 과제다. 정부는 전략 로드맵 이행 관리 강화와 함께 중복 지원 해소, 국제 규제와의 정합성 확보 등을 통해 산업 전환의 실효성을 높여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