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국제뉴스) 고정화 기자 = 산불 진화 현장에 투입되는 헬기 10대 중 7대가 기령 30년을 넘긴 노후 기체인 것으로 드러났다. 재난 대응의 최전선이 사실상 ‘퇴역 헬기’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조달청 자료를 공개하며, 산불 진화용 헬기 88대 중 59대(67%)가 기령 30년 이상, 이 중 40년 이상 28대, 50년 이상 9대, 60년 이상도 3대에 달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단순한 장비 노후화가 아니다.
2021년부터 올해까지 산불 헬기 관련 사고는 5건, 사망자 9명, 부상자 1명. 박 의원은 “사고 원인의 상당수가 노후 기체의 기계적 결함”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구조적으로 방치되고 있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핵심은 조달청의 ‘다수공급자계약제도’. 헬기 업체가 제품을 등록하면 조달청이 가격 기준을 정하고, 그 이하 가격을 제시한 업체가 낙찰받는 구조다.
결국 업체는 가격을 낮추기 위해 노후 기체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진다.
여기에 운영 현실은 더 심각하다.
헬기 운항에는 조종사 2명이 필요하지만, 현행 단가로는 1명의 인건비도 충당하기 어렵다. 수입 부품 의존도 높은 헬기 특성상 환율·유류비 부담까지 겹쳐 정비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리비도 확보되지 않아 적자 상태에서 운항을 포기해야 할 지경”이라고 밝혔다.
조달청은 2020년 민간헬기협회의 요청에 따라 평균 단가를 3% 인상했고, 2022년에는 유류비를 반영했지만 단 1년 만에 중단됐다.
단가 현실화는커녕, 생명 안전을 비용 절감 논리에 맡긴 셈이다.
박수영 의원은 “조달청은 헬기 단가 산정 시 ‘감항검사’ 등 안전성 평가 요소를 반영해, 기령에 따라 차등 단가를 적용하는 구조로 개편해야 한다”며, “신형 헬기에는 현실적인 단가를, 노후 헬기에는 현행 수준을 유지하는 합리적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예산 문제가 아닌, 재난 대응 체계의 구조적 결함이 국민 생명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조달 시스템 전면 재설계가 시급하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