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참사' 야구계 최고 어른이 할 말이 고작 '정신력' 타령인가

[ MK스포츠 야구 ] / 기사승인 : 2021-08-09 10:48:10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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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용 전 대한야구협회장은 한국 야구 최고 어른이다.

그 보다 화려하고 성공적인 발자취를 남긴 인물은 찾기 힘들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 아마야구의 수장 역할을 했었다. 야구 현장은 물론 실무와 운영 부문에서도 노하우가 깊은 인물이다. 그 정도 커리어를 지닌 야구인은 없다.

그런 야구 원로이기에 이번 도쿄 올림픽 참사에 대해 따끔한 지적이 나와주길 바랐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의 입을 통해 나온 말들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굳이 최고 야구 원로가 하지 않아도 될 말들만 반복됐을 뿐이다. 일개 야구팬이나 식견이 크게 다른 것이 없었다.

김 전 회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과거 야구대표팀은 국제대회에서 죽기 살기로 했다. 이번에는 그런 모습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대회에선 일본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진이 다 빠진 느낌이었다"라며 "마지막 두 경기(미국과 패자 준결승, 도미니카공화국과 동메달 결정전)를 보면서 팬들은 많은 실망을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대회 개막전 불거진 일부 선수들의 방역 수칙 위반과 관련, "요즘엔 초등학생들도 훈련할 때 모두 마스크를 쓴다. 어린아이들도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방역수칙을 지키는데, 프로선수들은 단단히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꾸짖었다. 이어 "KBO도 중심을 잡고 재발 방지를 위해 엄한 징계를 내려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 전 회장은 "그런 상황에서 올림픽에 나갔으니 선수들에 제대로 뛰었겠나. 배에 기름이 찬 상태에서 뛴 것이나 다름없다"며 "KBO도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구성원 중에 잘못한 이가 있으면 재발 방지를 위해 엄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뭔가 그럴듯한 말을 한 듯 보이지만 야구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준의 꾸짖음 밖에 안 됐다.

김 전 회장의 입에서라면 수십년간 미국과 일본을 따라잡지 못하고 여전히 수준차가 나는 것에 대한 원인 분석과 그에 대한 처방이 나왔어야 한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의 지적은 당연히 우리는 미국과 일본에 뒤져 있고 그 부족한 부분을 정신력으로 메워야 한다는 소리 밖에 안 됐다.

시대가 변하고 야구도 변했건만 결국 야구 선진국들을 잡을 방법은 실체도 모호한 '정신력' 뿐이라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배에 기름이 껴서 야구를 못했다"는 말은 야구 대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할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좀 더 좋은 조건에서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이 먼저 나왔어야 한다. 야구 대 선배로서 지금 후배들이 어떤 환경에서 야구를 하고 있는지 제대로 분석하고 해법을 찾아 줬어야 한다.

자신이 야구 할 때보다 훨씬 환경이 좋아졌다고 해서 우리 야구 인프라가 야구 선진국과 맞먹을 수준이 된 것은 아니다. 팬이라면 그런 상황에서도 비난할 자격이 있다.

하지만 야구 대 선배라면 사과가 먼저 나왔어야 했다. 수십년간 이어져 온 '정신력 타령'은 김 전 회장 같은 진짜 야구 원로가 할 말은 아니었다.

야구 감독으로 10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고 구단 사장, 대한야구협회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그런 인물의 한 마디는 좀 더 무게감이 있고 비전이 담겨 있어야 했다.

한국 야구가 좀 더 강해질 수 있는 묘안이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그 역시 정신력을 탓하는데 그쳤다. 상처가 심하게 남았을 새카만 후배들에게 더 큰 아픔만 남기는 말을 했을 뿐이다.

김 전 회장이라면 달랐어야 했다. 다른 얼치기 원로들이 쓴 소리를 가장해 하나 마나 한 잔소리를 내놓을 때 한국 야구의 비전과 내일을 위한 발전 방향을 제시했어야 했다.

한국 야구가 최악의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배에 기름이 찼다"는 하나 마나 한 지적은 김 전 히장 레벨에서 나올 이야기는 아니었다.

한국 야구가 이렇게 망가지게 된 데에는 김 전 회장 같은 원로들의 잘못도 분명히 있다. 이기는 것이 전부인 야구 환경을 만드는데 분명 일조를 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후배들을 탓하기 전에 고해성사부터 했어야 하지 않을까.

김 전 회장의 쓴 소리는 그래서 더욱 실망스러웠다.

[정철우 MK스포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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