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강요해선 안돼… 20~30대 ‘경험한 평화’ 바탕으로 결정해야”

[ 서울신문 ] / 기사승인 : 2021-04-21 18:08:03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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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미중 갈등 속에서 “중국과 척지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인지 잘 판단해야 한다”면서 “맹미우중(盟美友中)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 중 한 국가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과도 계속 친구로 지내야 한다는 의미다. 이 장관은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의 ‘초월적 외교론’에 공감한다며 “한미동맹의 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가치동맹적 성격을 평화동맹의 성격으로 확장하면 미중 간 패권 경쟁이 동북화 평화를 둘러싼 경쟁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초대 의장 출신으로 통일운동을 이끌어 온 이 장관은 “통일 체제에 대한 비전을 바로 제시하기보다 평화의 시간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가 더 중요해졌다”면서 “우리(세대)가 통일을 강요해선 안 된다. 지금의 20~30대가 평화의 시간을 잘 보내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통일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에 저자세로 일관한다”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 대해서는 “저자세니 하명이니 하는 것은 프레임 씌우기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다음은 이창구 정치부장과의 대담.●美와 동맹 유지하며 中과 친구로 지내야

-미국이 대북정책 발표를 앞두고 있는데, 어떤 내용이 담길 거라고 보나.

“나쁘지 않을 거라고 본다. 비핵화 해법에 있어서 단계적 접근을 하면서 비핵화 진척에 상응해 제재 문제도 유연성이 발휘될 가능성이 꽤 있다.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원칙적 입장을 강조하는 만큼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주의 협력 문제도 일관되게 추진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싱가포르 합의와 같은 명시적인 언급이 없더라도 실질적 해법에 접근할 가능성이 꽤 있을 것이다. 문제는 속도다. 관여 정책이나 외교적 해법 모색이 조기에 진행돼야 북미 간 실질적인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일본과 밀착하며, 대중 봉쇄 전략을 펼치는 건 우리로선 매우 안 좋은 상황 아닌가.

“미국 민주당 정부는 전통적으로 인권 문제를 중요하게 여겼다. 우리 예상을 벗어났다면 악화된 것이지만 예상 범위 안에 있었다. 바이든 정부는 인권 문제와 마찬가지로 인도주의 협력 문제에 대해서도 정치안보적 상황과 연계시키거나 속도조절하지는 않을 거다. 인도주의 협력 문제에 있어선 트럼프 행정부보다 좋아진 측면도 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미 의회에서 대북전단금지법 청문회까지 열었는데 예상했나.

“정직하게 말하면 그렇게까지 예상하진 않았다. 의사소통 과정에서 이 법을 반대하는 일부의 의견에 과대하게 의미부여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해석지침을 통해 접경 지역의 문제로 한정하고 있음에도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확대해석했는데, 표현의 자유나 제3국에서의 대북 활동 자유를 제한한 게 아니다. 최근 대북 라디오 방송조차 못하게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그건 법만 보더라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대북전단금지법이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있는데.

“북한 주민들의 알권리를 제약한다고 하는데, 대북전단이 아니라 평화가 인권의 전제 조건이며 더욱 실질적인 인권 증진을 이룰 수 있는 길이다. 교류하고 왕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를 통해 더 자연스럽게 북한의 인식 변화가 이뤄질 수 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나.

“코로나19 방역 등 보건의료 협력, 쌀과 비료 등 민생 협력 같은 인도주의 협력이 제재나 북미관계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남북 간 협력할 수 있는 지점이다. 비핵화 협상 진행에 따라 비상업용 공공 인프라 같은 건 유엔 제재 속에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더 나아가 비핵화 협상이 충분히 진행되면 제재의 본령인 금융·철강·석탄·섬유·노동력·정제유 등 6가지 분야에도 단계적 해제를 검토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북한은 우리의 인도주의 협력을 ‘비본질’이라고 얘기했다.

“인도주의 협력 문제를 비본질이라고 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북한은 적대관계 청산을 부각시키기 위해 인도주의 협력을 비본질이라고 표현했겠지만, 그렇게 격하될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북한이 고난의 행군으로 표현했던 엄혹한 시기부터 민간에 의해 자발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이념이나 정치·군사·안보 문제와 별개로 일관되게 진행돼야 한다.”

●동북아 질서, 평화적 관계로 재편이 美도 이익

-그러나 북한이 계속 거부하고 우리도 실익이 없는데, 그걸 이상적으로만 끌고 나가야 할까.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굉장히 인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우리의 자존심까지 다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우리 사회와 역사에 대한 자존감 속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지, 저자세니 하명이니 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북미 대화는 그것대로 지지하고, 동시에 남북 대화는 이것대로 일관되게 얘기하는 것도 우리의 신념이고 의지다.”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평화동맹으로 확장하는 것은 실현 가능한가.

“우리가 미중 간 극단적으로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하나만 선택하는 건 손쉬운 선택이고 잃을 게 많다. 미국도 동맹에 어느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최선을 다해 동북아 질서가 평화적 관계로 재편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취임 후 9개월이 지났다. 성과와 아쉬운 점은.

“성과라고 얘기할 수 없지만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게 내 역할이었다. 처음부터 한 방에 남북관계를 호전시킬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았다. 대화 복원을 위해 노둣돌 하나라도 놓겠다는 심정으로 일했고, 고민 끝에 내놓은 게 작은 교역이나 ‘먹아죽’(먹는 것·아픈 것·죽기 전에 보고 싶은 것) 인도주의 문제, 그리고 서울·평양 상주대표부 등을 구상한 거다.”

-통일론이 아닌 평화론을 얘기했는데, 그렇다면 통일은 포기한 것인가.

“이제는 1민족 2국가 2체제 1시장 이렇게 접근해야 한다. 경쟁적인 두 시장이 아니라 협력적인 하나의 시장을 지향해 나간다면 ‘삶에서의 통일’이 시작될 수 있다. 지금의 20~30대는 남북문제가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남북이 경제적으로 연합하거나 협력하면 남쪽 경제적 성장에 0.5~1.0%의 추가 성장 효과가 있을 거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후배들이 우리 세대 이겨 내면 세대교체 될 것

-다음주면 4·27 판문점선언 3주년이다.

“종전선언은 평화 정착의 입구이자 비핵화의 촉진제로서 중요하다. 여기에 더해 제재를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도 비핵화의 촉진제가 될 수 있다. 판문점선언 비준안의 국회 동의를 다시 추진하려고 하는데, 국민의 공감대와 남북관계, 야당과의 협력 등 전략적으로 판단할 부분들이 있다.”

4선 국회의원에 여당 원내대표를 지낸 이 장관은 정치 현안에 대한 질문에는 거리를 두면서도 소신을 밝혔다. 정권 재창출에 대한 질문에는 “평화 정책을 추진하는 동력을 유지하는 데 어떤 상황이 더 바람직한지에 대한 판단은 분명하다”고 답했다.

-4·7 재보궐선거에 대한 평가와 586 퇴진론에 대한 생각은.

“코로나19, 부동산, 검찰개혁 등 세 가지 상황 때문에 어려웠는데 진심으로 겸손했어야 했고, 좀더 전략적으로 대응했어야 했다. 세대 교체에서 제일 멋있는 건 후배들이 우리 세대를 이겨 내는 것이다. 자리를 안 내주려는 완고한 선배의 얘기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미련 없이 자리를 내주고 떠날 준비가 돼 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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