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국제뉴스) 고정화 기자 =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에 대한 양형기준 마련을 또다시 무기한 연기했다.
이는 법적 안정성과 형평성을 해치는 것은 물론, 중대재해 예방이라는 입법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무책임한 사법행정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특히 국회 산업재해 관련 입법을 주도해온 이용우 의원은 “처벌기준 마련 방기는 무책임한 사법행정이자 솜방망이 처벌의 공범”이라며 강하게 규탄했다.
지난 6월 23일 열린 제10기 양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양형기준 설정·수정 대상 범죄군이 결정됐지만, 중처법 위반 범죄는 최종 목록에서 제외됐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양형위원회 내부 전문위원단 다수(찬성 6인, 반대 4인)가 중처법 양형기준 설정에 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위원회가 이를 외면했다는 점이다.
전문위원들은 업무보고서에서 “중처법 시행 이후 3년간 32건의 산업재해치사 판례가 축적되어 있어 양형인자 도출이 가능하다”며, “위헌 여부가 다퉈지는 조항을 제외하고도 양형기준 설정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또한 “양형기준 부재로 인한 양형편차가 지적되고 있으며, 국민적 요청이 매우 높은 범죄”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형위원회는 중처법을 설정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사실상 솜방망이 처벌을 방조하는 결정을 내린 셈이다.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이용우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중처법 시행 이후 형사입건된 사건은 995건에 달하지만, 1심 판결이 선고된 사건은 고작 32건(3.2%)에 불과하다.
이 중 30건이 유죄였지만, 그 중 24건이 집행유예에 그쳤다. 법은 존재하지만 실효성은 전무한 상황이다.
중처법은 단순한 형벌 규정이 아니다. 사업장 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경영책임자에게 명시적으로 요구함으로써, 구조적 안전불감증을 바로잡기 위한 법적 장치다.
그러나 양형기준이 부재한 상태에서는 판결의 일관성도, 예방 효과도 담보할 수 없다.
법적 안정성은커녕, 판사에 따라 형량이 천차만별이라는 불신만 키우고 있다.
이용우 의원은 “전문위원 다수의견과 국민적 요청까지 무시한 채 중처법을 외면한 양형위원회의 결정은, 법의 취지를 스스로 부정한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양형기준 마련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행정적 판단이 아니다. 이는 “종전의 솜방망이 처벌이 중대산업재해를 줄이지 못했다”는 입법 취지를 무력화하는 것이며, 사법부가 그 책임을 회피한 채 재판 지연과 처벌 회피의 길을 택한 것이다.
양형위원회는 더 이상 침묵으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생명과 안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실질적 조치로 응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