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 생활이 일상이 된다면?

[ 환경일보 ] / 기사승인 : 2024-07-19 08:34:30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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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성 작가가 촬영한 인도 고지라말 섬. 해수면 상승과 침식으로 밀물이 들어오면 대지 모습이 사라진다.  
이대성 작가가 촬영한 인도 고지라말 섬. 해수면 상승과 침식으로 밀물이 들어오면 대지 모습이 사라진다.




[환경일보] 박선영 기자 = 바닷물 속에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다. 플라스틱 장난감 수십개가 검은 바탕에 놓여있다. 사진 설명을 읽기 전까지 작가 의도를 알기 어려운 전시회가 열렸다. 무표정으로 바닷물 속 의자에 앉은 사람은 피지섬 주민이다. 피지섬은 해수면 상승으로 빠르게 가라앉고 있다. 플라스틱 장난감은 전 세계 바닷가에서 맨디 파커가 모은 것이다.



바다 밖에서는 장난감이지만 바닷속에서는 조금씩 녹아 미세 플라스틱으로 분해되는 환경 오염 물질이다. 톰 헤겐의 작품은 사진만으로는 더 알 수 없다. 추상화 같은 이 작품은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 팔랑카 라야 인근 금 채굴장 모습이다. 한때 열대우림이었던 이곳은 지금은 버려진 채굴장이 됐다. 톰 헤겐이 제시한 전시 주제는 ‘인류가 빚어낸 추상’이다.



충무아트센터 20주년을 기념해 확장 개관한 갤러리 신당이 선보인 첫 번째 전시 프로젝트는 ‘기후환경 사진(CCPP, Climate Change Photo Project)’이다. 5명의 작가들이 바라본 지구 모습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들 작가들이 바라본 지구는 시한부다. 사진에서 작가들은 인류가 지구와 생태계를 망가뜨렸다는 것을 각자의 방식으로 고백한다. 그래서 사진전 부제목이 ‘지구를 향한 고백(Confession to the Earth)이다.



Confession은 사진을 보기에 따라 ’자백‘으로 읽힐 수도 있다. 해변가에서 14년간 주운 맨디 파커 작품 속 장난감 디자인은 익숙하다. 과연 내가 버리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죽은 새의 사인은 설명을 읽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사진 어디에도 비닐은 없지만 비닐이 보이지 않는다고 죄책감이 덜어지지는 않는다. 사진 설명처럼 새 사인은 한가지 위 속에 들어간 비닐이다.



“예술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제 작품이 해양 플라스틱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킴으로써 플라스틱 과소비와 기후변화의 더욱 광범위한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해양 플라스틱 오염이 초래할 위험한 결과에 대해 대중의 관심을 이끌 수 있는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온 맨디 파커의 말이다.



이슬비 충무아트센터 예술교육센터 과장은 “급격한 기후변화는 평균기온과 해수면 상승, 기후 난민을 만들고 있다. 세계적인 기후위기 심각성에 공감하며 사진을 매개로 환경변화에 직면한 인류에게 공감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후환경 사진 프로젝트(CCPP)는 기후환경을 주제로 한 사진 공모사업과 주제전시, 2개의 큰 틀로 구성된다. 중구문화재단 충무아트센터 조세현 사장은 사진작가다. 환경재단 이사이기도 하다. 환경관련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지구를 향한 고백’ 전시 이후 또 다른 환경 전시를 기획 중이다. 내년 4월 기후환경 주간과 지구의 날에 맞춰 국내외 작가들이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올해 전시는 9월8일까지 열린다.




닉 브랜트가 피지섬 바닷속에서 촬영한 원주민. 피지섬은 해수면 상승으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닉 브랜트가 피지섬 바닷속에서 촬영한 원주민. 피지섬은 해수면 상승으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닉 브랜트, ‘생존의 나날’



영국에서 태어난 닉 브랜트는 미국에서 주로 활동을 했다. 마이클 잭슨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유명하다. 뮤직비디오 촬영차 방문한 아프리카 자연과 동물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사진작가가 됐다.



닉 브랜트는 급격한 환경 변화로 변해가는 아프리카 모습을 담은 시리즈 작업을 해오고 있다. 재단을 설립해 환경운동을 하는 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기후붕괴로 생존 기회를 뺏긴 사람과 동물 사진을 선보였다.



피지섬은 해수면 상승으로 잠기고 있다. 작품은 해수면 상승을 직관적으로 표현했다. 이렇게 계속 섬이 조금씩 사라지다보면 집도 없어지고 수중에서 생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나타낸 것이다. 사진 속 사람들은 바닷속 촬영을 위해 짧은 시간 훈련을 받은 피지섬 원주민들이다.




맨디 파커가 전 세계 바닷가에서 모든 플라스틱 장난감. 해양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전하기 위해 수집을 시작했다. 
맨디 파커가 전 세계 바닷가에서 모든 플라스틱 장난감. 해양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전하기 위해 수집을 시작했다.




맨디 파커, ‘바다를 뒤덮은 존재’



영국 사진 작가 맨디 파커는 전시회에서 인류의 재앙이 된 해양 플라스틱 문제를 제기했다. 매년 800만 톤 이상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들어간다. 해양 환경, 생물 다양성, 인간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전시회 사진 속 장난감은 전 세계 바다에서 수집됐다. 플라스틱 조화들은 지난 3년간 홍콩 해변에서 회수했다.



해안가 마을에 살던 맨디 파커는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 조개 줍고 모래놀이하던 바닷가에 쓰레기가 밀려드는 것을 보게 됐고, 14년이 넘은 기간동안 바닷가 플라스틱을 수집했다. 해양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쓰레기를 아름답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맨디 파커는 그린피스 과학자들과 해류가 만든 쓰레기섬에서 수거도 한다. 죽어있는 새 시리즈는 그린피스 과학자들과 뉴질랜드와 호주 사이에 있는 섬에서 촬영했다. 그린피스 과학자들은 어미새가 플라스틱 비닐을 새끼새에게 줄 먹이로 착각해 죽게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톰 헤겐이 항공촬영한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 팔랑카 라야 인근 금 채굴장
톰 헤겐이 항공촬영한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 팔랑카 라야 인근 금 채굴장




톰 헤겐, ‘인류가 빚어낸 추상’



톰 헤겐은 지구 표면에 인간이 남긴 흔적을 항공에서 찍는다. 작품활동 처음부터 환경을 주제로 하지는 않았다. 따뜻한 집에서 샤워를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가 어디서 왔는지 의문을 가졌다. 이 에너지는 지구를 파괴하며 얻어낸다는 사실을 헬기를 타고 내려다본 지구 모습을 통해 알게 됐다.



톰 헤겐은 사진전 주제 의도를 밝히는 글에서 "탄광을 개발하고 지열발전소를 만드는 것은 지구에 상처를 내는 것으로 그곳에서 에너지를 다 가져다 쓴 후에도 복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원래대로 복원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구 상처는 방치된 채 또 다른 곳이 개발된다. 인간은 지구에 끊임없이 상처를 내고 에너지를 얻어내고 있다. 전시회에서 아름다운 추상화처럼 보이는 톰 헤겐의 사진 속 장소는 대부분 원시 자연이었다. 버려진 채굴장 등에는 자연에서 발생할 수 없는 퇴적물들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2023년 11월 뤼체라트 마을의 강제 퇴거 첫 날 한 기후환경운동가가 구조물에 매달려 진압 속도를 늦추는 동안 굴착기가 운동가들이 설치한 바리케이트를 제거하고 있다. 
2023년 11월 뤼체라트 마을의 강제 퇴거 첫 날 한 기후환경운동가가 구조물에 매달려 진압 속도를 늦추는 동안 굴착기가 운동가들이 설치한 바리케이트를 제거하고 있다.




앙마르 비욘 놀팅, '강제퇴거'



앙마르 비욘 놀팅이 전시회에서 선보인 사진 속 장소는 독일의 탄광마을 뤼체라트다. 2020년부터 환경운동가들이 마을 아래 매장된 갈탄을 추출하려는 에너지회사 RWE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였다.



2020년 독일 정부는 2038년까지는 석탄을 이용한 개발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가스 부족, 에너지 위기를 이유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갈탄을 캐내려는 회사에 환경운동가들이 맞서고 정부입장이 기업 쪽 의견에 좀더 가까워졌다. 앙마르 비욘 놀팅은 이 과정을 사진에 담았다.




이대성 작가는 사막화가 진행 중인 몽골의 환경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한국과 몽골을 오가며 사진을 촬영했다. 
이대성 작가는 사막화가 진행 중인 몽골의 환경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한국과 몽골을 오가며 사진을 촬영했다.




이대성, ‘미래의 고고학’



이대성 작가는 사막화가 진행 중인 몽골 초원, 해수면 상승으로 삶의 근간이 무너진 인도 섬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기후변화로 몽골 내 약 850개 호수와 2000개의 하천이 사라졌다. 물 손실은 몽골 사막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해 몽골을 방문한 이대성 작가는 사막화가 심각한 몽골의 환경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특별한 사진 기법을 사용했다.



푸른 풀이 있는 사진을 먼저 찍고 한국에서 출력해 그것을 몽골 풍경에 놓고 다시 촬영했다. 미래 초원이 사막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는 작가의 우려를 표현한 것이다.



고지마라 섬은 인도 동북부 서벵골 삼각주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해수면이 급격히 상승하고 침식 영향으로 섬의 50% 가량 잠겼다. 많은 주민들이 이 섬을 떠났다. 작가는 밀물이 이 섬에 들어올 때 섬이 사라지는 모습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고 밝혔다. 작가 사진 속 인물들은 이 섬을 떠나지 않고 있는 원주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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