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일보] 박준영 기자 = 아시아 주요국이 기후정보 공시제도 정비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ISSB 기준에 기반한 공시 체계 구축이 역내 공통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각국은 상장기업 의무화 확대, 공급망까지 포함한 인증체계 정비 등 실행력 강화를 추진하는 반면, 한국은 로드맵 철회 이후 방향성이 불투명해 제도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1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아시아 기후금융 활성화 포럼’에서 싱가포르, 대만, 홍콩, 일본, 한국의 전문가들이 각국의 기후정보 공시제도 현황과 향후 정책 방향을 공유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국제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S1·S2 기준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며, 아시아 역내 공동 대응의 시급성을 역설했다.

포럼 개회에 앞서 축사를 맡은 강금실 경기도 기후대사는 “기후금융은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필수적 수단이지만, 아시아 지역은 아직까지 글로벌 기후금융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현 상황을 진단했다. 강 대사는 “특히 기후공시제도는 투명성과 신뢰를 담보하는 전제 조건이며, ESG 정보공개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세계 주요국들이 기후정보 공시를 법제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아직 기후금융과 관련한 법제도가 마련되지 못한 채 논의에만 머물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번 포럼이 아시아 국가들의 제도 경험을 공유하고, 향후 공동의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싱가포르, 2030년까지 비상장 대기업도 공시 대상

EY 아시아태평양의 줄리아 테이(Julia Tay) 공공정책 리더는 싱가포르의 공시제도 도입 경과를 설명하며 “2025년부터 상장기업의 스코프 1·2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가 의무화되며, 2030년까지 비상장 대기업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2022년 자문위원회가 출범했고, 금융당국과 거래소가 참여해 ‘CRD 로드맵’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는 “싱가포르는 ISSB 기준을 조기에 채택한 역내 대표 사례로, 외부 인증도 2029년부터 의무화할 예정”이라며 “신뢰 가능한 공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녹색금융 시장 신뢰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대만, 이미 90% 이상 온실가스 정보 공시

대만 회계기준연구재단 도리스 왕(Doris Wang) 대표는 “대만은 2013년 IFRS 기준을 도입했고, 현재는 2026년까지 상장기업의 S1·S2 공시를 의무화하는 로드맵을 이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22년에는 그린파이낸스 계획 3.0 버전을 발표해 공급망 기업까지 포함하는 생태계 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왕 대표는 “현재 대만 상장사의 90% 이상이 스코프 1·2 정보를 공시하고 있으며, 40% 이상은 스코프 3 정보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밝혔고, “정부와 증권거래소, 회계기준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인증체계도 정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콩, 시총 기준 대기업부터 의무화

PwC 중국·홍콩 회계기술팀 이본 캄(Yvonne Kam) 파트너는 “홍콩은 2025년부터 시가총액 상위 기업을 시작으로 스코프 1·2 공시를 의무화하고, 이후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기업을 중심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홍콩 증권거래소는 ESG 코드 강화를 통해 ISSB 기준과 정합성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도 60% 이상의 상장기업이 외부 인증을 받고 있지만, 의무화된 인증체계는 아직 부재하다”며 “향후 정부와 증권감독기구가 컨설테이션 보고서를 통해 인증 방식을 구체화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단일 중요성 원칙··· 점진적 도입 방식 채택

도쿄대학교 법학과 히데후사 이이다(Hidefusa Lida) 교수는 “일본의 기후공시는 환경법이 아닌 증권규제를 기반으로 하며, 현재는 단일 중요성 원칙에 따라 기업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만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27년부터 시가총액 3조엔 이상 기업부터 S1·S2 공시 의무를 적용하고, 이후 2028년·2029년으로 점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이다 교수는 “정보 공시는 제도화되고 있지만, 온실가스 검증이나 인증은 아직 의무화되지 않아 공시 신뢰도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며, “국제 기준과 정합성을 맞추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로드맵 철회 이후 방향성 불투명

서울대학교 환경법·에너지정책센터 지현영 변호사는 “한국은 2021년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를 대상으로 공시 의무화를 시작하는 로드맵을 제시했지만, 2023년 이를 철회하면서 현재 도입 시기조차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 변호사는 “국내 지속가능성 기준은 초안만 발표된 상태이며, 법정 공시 여부나 인증 체계 등 핵심 요소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는 투자자 보호라는 공시 본연의 목적보다 대외 대응에 집중해 왔고, 법제도적 기반이 여전히 미흡하다”며 “조속한 로드맵 확정과 법정 공시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포럼에서는 단순한 기준 채택을 넘어 실질적인 공시 이행력과 신뢰 기반 인증체계 마련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다섯 발제자는 모두 ISSB 기준의 글로벌 정합성에 동의하면서도, 각국의 법제 환경과 기업 현실을 반영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