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권이 바뀔 때마다 KT는 혼란에 휩싸인다. 민영화된 지 23년이 지났지만 정권 교체 시기마다 대표가 정치적 영향력에 휘둘려 새로 선임되는 경우가 일상이어서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2023년 취임한 김영섭 대표는 최근 해킹 사태 관련 자발적인 사퇴 의사를 밝혔으나 이로써 정권 교체기에 대표가 바뀌는 양상은 되풀이되는 셈이다.
새 대표 선임을 두고 낙하산 인사 우려 등이 가중되는 가운데 혁신에 관한 논의는 잠잠하다. 경쟁사가 AI 서비스 고도화에 속도를 내는 사이 KT는 기술 경쟁력이 점차 뒤처지고 있다.
정권 교체기마다 흔들린 KT 리더십
KT는 지난 2002년 민영화 이후 매 정권 교체기마다 CEO 거취 문제를 겪었다. 기업 거버넌스의 자율성이 확보되지 못한 채 정부·여권과의 관계가 CEO 임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쳐왔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09년 이석채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KT 회장으로 선임되자 정치권에서는 ‘통신과 관련 없는 사람이 수장에 오른 것은 정권 코드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전 회장은 이후 검찰 수사를 받으며 임기 중 중도 사퇴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취임한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황창규 전 회장은 6년 연임을 지낸 유일한 인물이지만 그 역시 위기는 있었다. 황 전 회장은 문재인 정부 초기 국회의원 후원금 쪼개기 의혹 등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으며 임기 후반부에 곤욕을 치렀다.
구현모 전 사장은 지난 2020년 취임해 연임을 꿈꿨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치자금법 재판 등에 발목이 잡혀 후보직에서 결국 사퇴했다. 결국 구 전 사장 사임 후 김영섭 사장이 선임될 때까지 KT는 약 5개월간 대표 공백을 메울 직무 대행 체제로 운영됐다.
권력 공백 앞두고 이사회 ‘경영 개입’ 논란
![KT. [그래픽=황민우 기자]](https://cdn.tleaves.co.kr/news/photo/202511/8466_15309_555.jpg)
지난 2023년 8월 취임한 김영섭 대표가 연임을 포기하며 KT는 또다시 정권 교체기에 CEO 공백 사태를 맞게 됐다. 김 대표는 최근 해킹 사태를 두고 사고 책임을 지겠다며 자진 퇴사 의사를 밝혔지만 정권 교체 영향을 배제하기 어렵다.
경영 공백이 우려되는 가운데 KT 이사회는 지난 4일 이사회 규정을 개정하면서 ‘경영 개입’ 논란을 야기했다. 개정안에는 대표이사가 부문장 인사나 조직 개편을 추진할 때 이사회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사실상 경영진을 과하게 견제하게 되는 셈이다.
인사권과 조직 운영은 본래 대표이사 권한으로 이사회가 직접 개입할 경우 경영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 특히 현재 사외이사 8명 중 7명이 윤 정부 시절 임명된 인사이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도 우려가 있다. 특정 세력에 치우친 인사로 구성된 이사회 권한이 강화되면 정치적 외풍에 보다 취약할 수 있어서다.
이와 관련 KT새노조 이호계 사무국장은 더리브스와 통화에서 “현재 KT 이사회는 해킹 사태 수습과 낙하산 논란 없는 새 CEO 선임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앞둔 상황”이라며 “그럼에도 반성과 책임 없이 오히려 이사회 규정 개정으로 권한만 강화해 내부 카르텔 구축 논란을 스스로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흔들리는 리더십 속 혁신 성과 미미
SK텔레콤이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구독형 서비스 등을 중심으로 빠르게 사업 구조를 재편하며 ‘AI 컴퍼니’로 변신을 꾀하는 동안 KT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혁신에 힘을 싣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김 대표는 AI 사업을 핵심 성장축으로 삼아왔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약 2조4000억원 규모로 공동 투자를 추진하며 클라우드·AI 인프라를 강화하고 미래 산업 분야 확장 의지를 보이면서다. LGCNS 대표 시절 경험을 살려 KT의 신성장 기반을 다지겠다는 게 김 대표의 포부였다.
하지만 김 대표가 추구해온 혁신 목표는 아직 성과로 이어지진 못한 상태다. KT가 지난 11일 공개한 ‘2025년 기업가치 제고 계획’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누적 AI·IT 매출은 약 9000억원으로 전체 매출 대비 7% 수준에 그쳤다. 지난 2023년 6%와 2024년 7%를 두고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다.
KT는 최근 정부가 추진한 대형 AI 프로젝트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도한 ‘독자 인공지능(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5개 기업 선정에서 통신 3사 중 유일하게 KT만 탈락했다.
KT는 오는 2028년까지 AI·IT 매출 비중을 18%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반복되는 CEO 교체와 정권 입김 속에서 경영 연속성이 흔들리고 있다. 결국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전문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기술 중심으로 장기 혁신 전략을 세우는 일이 KT의 생존 과제로 남아있다.
한편 KT 관계자는 최근 사퇴 의사를 밝힌 김 대표와 관련 정권 교체기에 고질적으로 반복돼온 정치적 외풍이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더리브스 질의에 “입장이 없다”라고 말했다. AI·IT 분야 매출 확대 목표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묻는 질문에는 “과거에 공개한 자료를 그대로 이행 중이며 새롭게 설정한 목표는 없다”라고 이 관계자는 답했다.
마선주 기자 msjx0@tleave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