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회장 중 첫 사례다. 반복된 금융사고로 책임사퇴론까지 거론되던 우리금융지주 임종룡 회장이 국정감사장에 섰다.
임 회장의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사직 의향을 알린 것으로도 알려진 그가 적극적으로 개선 다짐을 피력한 점을 감안하면 사퇴론을 불식하려던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올 법하다.
개선 다짐은 그간에도 그가 거듭해 온 행보다. 다만 실천이 문제인 상황에서 업계 시선은 회의적이다. 수년간 쌓여온 구태와 악습이 단시간 개선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임종룡 회장 “책임질 일 있으면 충분히 책임질 것”…사퇴엔 ‘모호’
우리금융 임 회장은 지난 10일 국회 정무위원회가 개최한 금융위원회 대상 국정감사에 일반 증인으로 출석했다. 4대 금융지주 회장이 국감장에 선 건 처음이다.
이날 정무위 의원들은 임 회장에게 사퇴 의사가 있는지 물었으나 직접적인 답변은 듣지 못했다. 임 회장은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 부적정 대출에 대한 묵인 의혹은 부인했지만 사퇴에 대해서는 분명한 답을 하지 않았다.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강일 의원의 “조만간 사퇴하실 건가요?”라는 질문에 임 회장은 “부당대출에 대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그러나) 지금은 조직의 안정과 내부통제 강화, 기업문화 혁신을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답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임 회장의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는 이 의원의 언급에도 임 회장은 “결코 전임 회장을 비호하거나 사건을 은폐, 축소하지 않았다”며 “정확한 사건의 실체와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성실하게 협조하겠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은 “만약 횡령과 배임이 또다시 발생한다면 거취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었는데 이에 대해선 임 회장은 “책임질 일이 있으면 충분히 책임지겠다”라고 언급했다.
그간 업계에서는 임 회장이 지주사에 사직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난 10일로 사퇴론은 무색해졌다. 국감장은 임 회장에게 부당대출의 경위를 묻는 자리인 동시에 사퇴론을 부정한 자리가 된 셈이다.
내부통제 강화, 기업문화 혁신 위한 대책은?
실제로 임 회장은 사퇴론을 잠재우기라도 하듯 국감 자리에서 향후 내부통제를 쇄신할 여러 방안들을 약속했다. 임 회장은 이번 금융사고의 발생 원인으로 부실한 내부통제와 윤리의식이 부족한 기업문화를 꼽았다.
임 회장은 “우리은행은 통합은행의 성격과 오랫동안 민영화되지 못한 문제에서 분파적이고 소극적인 문화가 있는 건 사실”이라며 “이런 음지의 문화를 없애지 않으면 우리금융이 바로 설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올바른 기업문화 정립을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덧붙였다.
기업문화 혁신을 목표로 임 회장이 국감장에서 약속한 과제는 다양했다. 자회사 임원 사전합의제 폐지와 전임원 친인척 신용정보등록제도 시행, 여신심사 관리 프로세스 개편 등이다.
임 회장은 “이번 사건의 한 원인이기도 한 회장 권한과 기능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그룹 전체 개혁을 위해 자회사 임원 선임과 관련된 사전합의제를 폐지하고 자회사의 자율 경영을 보장하겠다”라고 말했다.
경영진 견제와 관련해서는 임 회장은 “사외이사만으로 구성된 윤리내부통제위원회를 신설할 것”이라며 “위원회 직속으로 윤리경영실을 만들어 외부 전문가가 수장이 되는 감시 기능과 내부자신고제도를 통합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들겠다”고 언급했다.
이밖에도 임 회장은 “그룹사 전임원의 동의를 받아서 친인척에 대한 신용정보를 등록시키겠다”며 “대출 출급 시 처리 지침도 마련하고 사후 적정성 검토 등 엄격한 관리 프로세스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여신 감리조직을 격상시키고 부적정 여신에 내부자신고채널을 강화하고 전산적으로 이상거래를 감지할 수 있도록 FDA 시스템도 구축해 내년부터 시행하겠다”며 “전 계열사의 부적정 여신은 정보 교류를 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겠다”고 임 회장은 강조했다.
금융권 관계자 “회장 승인에 의한 계열사 인사…일반적이지 않아”
임 회장이 국감에 나서서 향후 계획까지 발표하긴 했지만 신뢰를 되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내부통제 시스템은 앞으로 개선될 수는 있겠지만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에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앞서 묵인할 수 있다는 여지를 꾸준히 보여왔기 때문이다.
임 회장은 이번 국감에서 은폐는 없었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이 올해 초 해당 사고를 발견하고도 금융당국의 조사와 공시가 진행된 후에서야 뒤늦게 공시했다는 점에서 의도적으로 묵인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게다가 업계에서는 임 회장이 내건 계획들이 혁신적인 대안이라기보다 우리금융을 정상화하는 과정일 뿐이라는 시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더리브스 질의에 “계열사 임원의 인사권은 (통상) 계열사 대표한테 있다”며 “지주 임원이 계열사 임원으로 이동한다면 사전에 주무부서와 얘기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도 회장(CEO)의 승인을 받는 절차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더리브스와 통화에서 “과거 우리금융은 특수한 상황”이라며 “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다투는 상황에서 회장이 은행장을 컨트롤하려면 사실상 사람을 컨트롤할 수밖에 없다”라고도 했다.
이어 “손 전 회장과 관련한 비위에 가장 연관 있는 퇴직한 임원도 본부장 정도의 직급이었다”며 “부행장보다도 아래였으니 사실상 그분도 손 회장의 어떤 영향력 아래 있었다고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이번 금융사고가 회장이 경영진급 임원의 인사를 좌지우지해 온 사실을 방증한 것이라고도 봤다. 이 관계자는 “그런 것들이 구태로 남아있었고 그게 이번 사건의 원인이 됐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자회사 임원 사전합의제 폐지로) 회장의 권한이 줄어든다기보다 구태가 좀 줄어드는 형태가 될 것”이라며 “당연히 그래야 되는 거였고 이제 정상화의 수준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지민 기자 hjm@tleav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