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의 즐거움

[ 대구일보 ] / 기사승인 : 2022-05-15 14:08:01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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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해질녁까지 식사 시간도 잊고 친구와 놀았던 기억, 잠자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뒤에 두고 좋아하는 책을 읽다가 새벽을 맞이한 경험 등 우리는 일상 속에서 소소하지만 다양한 몰입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미술 감상은 어떨까? K팝 열풍에 이은 K아트 열풍, MZ세대의 미술 투자, 그리고 유명인의 미술품 기증 등은 이전보다 많은 이들을 미술관으로 이끌고 있다. 하지만 미술 감상의 경험이 그리 많지 않다면 처음 마주하는 작품에 단숨에 몰입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이리저리 살펴도 작가의 생각을 읽어내기 힘들 때 관람객들은 작품 제목을 확인하거나 리플렛 설명을 읽으며 숨은 의도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최근 아카이브실과 미술정보센터가 있는 대구미술관 3층에서는 미술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디지털 가상공간을 운영 중이다. ‘몰입형 실감 콘텐츠 개발’이라는 IT 용어에서 착안한 조금은 낯선 공간 ‘몰입’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미술 체험의 장을 선사한다. 작년 2월부터 개발해 올해 3월 말 시범 운영, 4월 초 오픈한 이 공간은 대구미술관과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지역 미술 평론가, 스토리텔러 등이 머리를 맞대고 개발한 실감형 콘텐츠를 상영한다.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아닌 대구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실감 콘텐츠로 재탄생시킨 ‘몰입’은 소장품을 활용한 디지털 콘텐츠 개발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렇듯 대형 미디어아트 전시와 차별화된 ‘몰입’은 지역성과 역사성, 현대적 실험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이인성의 생애와 예술세계’, ‘대구 근대 풍경으로의 초대’, ‘실험과 상상, 그리고 미술하기’, ‘우주와 맞닿은 풍경’, ‘삶을 그리다, 놀이를 그리다’, ‘마음을 담은 풍경’ 등 6개 주제로 묶어 순차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작가 생애, 대구 미술 이야기 등 기존에 연구한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를 바탕으로 곽인식, 곽훈, 권부문, 김우조, 김종복, 김호득, 박현기, 서동진, 서병오, 이강소, 이명미, 이인성, 전선택, 정점식, 최병소 총 15명의 작가 47점을 소개하는 18평 남짓의 가상공간은 때로는 대구 근대의 저잣거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작업실이나 작가가 구현한 대자연의 풍경으로 바뀌어 관람객을 시공간을 초월한 곳으로 안내한다. 프로젝션 맵핑 등 최신기술을 입은 전시는 3D 홀로그램으로 재현된 작가가 생애와 작업 세계를 들려주기도 하고, 반응형 인터랙티브 영상이 4면 투사 돼 관객의 움직임과 손짓, 걸음이 작품에 반응하기도 하는 등 작품에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요소들을 여러 곳에 배치했다.

앞으로 이 공간은 온라인 플랫폼과 연계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풍부한 경험을 제공하는 콘텐츠로 확장할 예정이다. 이런 시도가 참신하고, 미술관의 소장품 콘텐츠가 작가와 작품을 중심으로 풍부하게 제공되는 장점이 돋보여 내용과 기술을 벤치마킹하려는 관련 기관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이후부터는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단체 관람객 문의와 방문이 이어져 상영 횟수를 배로 늘렸음에도 주말뿐만 아니라 주중에도 늘어선 대기줄을 흔히 볼 수 있다.

교육학, 심리학의 세계적 권위자 칙센트 미하이 박사는 저서 ‘몰입의 즐거움’에서 지금 하는 일에 몰입하는 순간 삶이 변화한다고 강조했다. 미술 감상 또한 마찬가지다. 미술관 경험에 몰입이 더해지면 관람객들이 작품에서 느끼는 감동이 훨씬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 “눈과 마음으로 작가의 의도를 느껴라”라는 고답적인 감상 방법에서 벗어나 디지털 세대에 걸맞은 콘텐츠를 기획해 작가와 작품의 메시지, 감동이라는 미술의 본질적인 목표에 좀 더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미술관은 노력 중이다. 그 첫걸음이 바로 가상공간 ‘몰입’이다. 이와 함께 하반기 전시 중 일부는 VR뿐만 아니라 메타버스에서도 감상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

최은주 대구미술관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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